울릉도 3일차, 독도 접안 성공 시그널에 관하여
* 이 글은 지난 4월 말, 한국에선 코로나가 종식되는 줄로만 알았던 그 시기의 여행입니다.
* 사회적 거리두기, 개인 방역을 매우 철저히 준수합니다.
처음 독도에 들어갈 때에는 1층에 티켓을 예매했었으나, 엄마의 내일 너 들어갈것 같아서 그래 라는 말에 티켓을 예매하려 찾아보니 2층 한 자리만 남아있어 2층을 예매했다. 사람들이 선회관광을 한다면 1층보다는 2층이 더 보기 좋다 했으니 또 선회 관광을 하게 된다면 이번엔 색다른 풍경을 보겠지 라며 마음을 다독였다. 하지만 이미 한번 실패 하고 두번째로 도전하는데 당연히 들어가고싶은 것은 인지상정. 전날 독도에 들어가는 배를 탔을 때에는 타자마자 약을 먹고 잠이 들었지만 이번엔 잠이 오질 않았다. 하지만 배가 출발한지 30분 정도 되었을까, 파도가 거세지기 시작하는것을 몸으로 느끼고 그냥 눈을 질끈 감았다. 난 어차피 못들어갈것 같아.
눈을 감고 오늘도 못들어가는구나 하고 있는데 배에서 계속 “독도 수비대 위문품은 매점에서 판매중입니다” 라는 방송이 나왔다. 누굴 놀리나 진짜. 독도 수비대는 무슨 수비대야 독도에 내려보지도 못하겠는데. 라고 생각하며 미간을 한껏 찡그린채 눈을 감고 있자니 잠이 다시 눈꺼풀을 가렸다. 잠이 들면서 “독도 수비대 위문품은 매점에서 판매중입니다” 라는 방송을 계속 들어서 욕을 하며 잠이 들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땐 독도는 우리땅 노래와 함께 접안시도를 하겠다는 방송이 나올때였다.
내가 잠들면서 느꼈던 울릉도와 독도 사이의 파도가 거셌기에 당연히 못들어갈거라고 생각하고 있을때,
“독도 접안을 시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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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접안에 성공하였습니다. 배를 세우는 동안 앉아서 기다려주십시오”
파도가 거셌기에 기대도 안했는데 갑자기 성공했다고 하자 누군가 내 목구멍에 손을 넣어 심장을 꺼낸 후 회를 뜨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살면서 이렇게 긴장 해 본적이 없는데. 고소공포증을 비롯한 온갖 공포증이 없어 살면서 무서운 것도 없고 긴장도 잘 안하는 내가 갑자기 몸이 덜덜 떨렸다. 독도 접안성공이라뇨.
떨리는 손으로 가방을 마구 뒤져 이날을 위해 준비한 대형 태극기를 집어들고는 너무 떨려 주체할 수 없는 심장을 억누르려고 하였으나 배가 독도 선착장-방파제고 뭐고 아무것도 없어서 왜 파도가 좀만 있어도 못들어간다 하는지 알 것 같은-에 도착하여 다리 내리는 것을 바라보고있는 시간이 하염없이 길게 느껴졌다.
배가 연결 되었다는 방송이 나오자마자 태극기만 집어들고 당장 1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튀어나갔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질서 유지때문에 한참 지연되고 있는동안, 가족들에게 전화통화도 하며 온갖난리를 다 쳤던것 같다. 엄마가 “거봐 내가 뭐랬어-“ 라는 다소 점쟁이, 엄청 잘 맞춘다고 용하다고 전국에 소문 난 것 같은 점쟁이 같은 말을 하는 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엄마에게 외쳤다. “엄마 나 올해 처음 독도 들어간 사람이야!” 그러자 엄마는 엄청 웃었다. “그래, 너를 위해 조상들이 다 덕을 쌓았나보다.”
그래요 내 조상, 최소 3대 이상이 나를 위해 덕을 쌓았나봅니다. 아니다 1차는 실패했으니 3대는 아니고 2대정도인건가. 그래서 힘빨이 부족했나. 라는 쓰잘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배가 열렸고, 사람들이 우루루 나가 독도를 밟았다.
그리고 나 역시도.
2020년 첫 독도에 들어간 소감은, 바람이 장난아니었다. 전날 밤 별을 보러 갔을때 내 장기를 한쪽으로 밀어버릴듯 나를 온몸으로 쥐어짜던 바람이 울릉도에서 독도로 왔는지 정신없이 바람이 불었다. 날씨도 그다지 좋지않아 몸이 덜덜 떨렸다. 떨리는게 독도에 들어와서 떨리는건지, 추워서 떨리는지 알 수 없었다. 독도에 내린 사람들 모두가 감탄하는 소리만 들렸다. 경치가 좋아서가 아닌 내가 독도에 들어왔다. 대한민국 동쪽 땅끝, 독도에 내가 들어왔다는 감탄사. 그리고 어마무시하게 부는 바람. 그 모든게 나를 떨리게 만드는 것 같았다.
선착장에 서서 몸을 돌려 독도 주변을 한바퀴 보았다. 그리고 나니 정신이 들었다. 사진! 이곳에 와서 남는건 사진이다! 그런데 서로 같이 찍어주자던 게스트하우스 일행들이 안보여 조금 조급한 마음으로 찾아보고 있을 무렵, 수원에서 온 동생이 먼저 보였다. 약간 얼빠진듯 멍하니 서있는게 웃겨서 다가가서 “저기요, 저 사진좀 찍어주세요 저도 찍어드림!” 이라고 말하자 얼음땡 하듯이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는 알겠다고 서보라고 했고, 드디어 독도에서의 인증샷을 남겼다.
내가 울릉도, 독도 여행을 계획했을 때 부터 내 머릿속엔 이 장면만 생각했다. 바로 독도에 들어와서 대형 태극기를 머리위로 휘날리는 장면, 펄럭이는 태극기를 들고 찍은 사진. 이 사진을 위해 집에서부터 대형 태극기를 구입해서 들고왔다면, 나의 관종력이 느껴질까.
하지만 어젯밤 느꼈던 바람에 버금가는 바람이 정신없이 불고 있어 아쉽게도 태극기가 예쁘게 펼쳐진 사진은 못찍은것이 가장 큰 흠이었지만 어쩌겠는가. 독도에 들어온것과 2020년도 첫 독도 입도 성공자라는 타이틀이면 난 두고두고 뽕에 차있을텐데. 울릉도에 들어오면서 이미 치사량만큼 채웠던 “애국뽕”을.
독도에 내려서는 사실 20분 정도의 관광시간만. 가지고 다시 울릉도로 돌아간다. 독도는 울릉도보다도 더 바위섬이기 때문에 갈 곳이 없거니와, 국경수호를 위한 독도수비대가 있어 군사지역이기 때문인것도 이유인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 20분이 그렇게 소중하게 느껴졌다. 내 인생 가장 짧으면서 가장 가치있고 벅찬 순간이 아닌가 싶다.
선착장 저 안쪽으로 들어가니 대한민국 동쪽 땅끝이라는 표지석이 보였고 인증샷을 찍기 위한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있었다. 그 표지석의 뒤로는 더 갈 곳도 없기 때문이었을까. 기다리면서 독도를 천천히 두 눈을 통해 꼼꼼이 담았다. 살면서 내가 또 언제 독도에 들어올꺼야. 이제까지 해외여행을 멀리가서 내가 살면서 언제 또 여길 올꺼야 라고 했을 땐 사실 시간과 금전이 허락한다면 갈 수 있는 여행지가 대부분이었다. 대표적으로 쿠바라거나,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바이칼 호수에 놀러가기와 같은. 살면서 언제 또 와볼꺼야 라고 말은 하지만 시간과 금전이 허락한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경험. 하지만 독도에 들어오는 것은 정말 문자 그대로 “살면서 또 언제 여길 올꺼야” 였다. 이름도 “SUN”이기 때문에 날씨요정, 날씨가 사랑하는 여행자라 자부했던 나 역시도 한번은 실패해서 두번째로 들어온 섬인데. 가능한 모든 풍경을, 모든 감상을 담아가고싶었다.
그리고 인증샷을 많이 찍고싶었지만 어쩌다보니 대형태극기가 휘날리는 독도는 잘 찍은것 같다.
대한민국 동쪽 땅끝 표지석을 찍고 나니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날씨가 좋지않아서인지 안개가 슬금슬금 독도를 향해 다가오는게 보였다. 하지만 안개낀 독도는 또 그 나름대로의 신비함으로 가득찼다. 쉽게 출입을 허락하지 않는 도도함을 가지고 2020년 들어 처음으로 출입을 허락하고는 흥! 하니 안개를 이불삼아 뒤돌아 눕는 모양새 같아보였다. 내가 정말 살면서 이렇게 들어오기 힘든곳은 또 처음이다.
그리고 전날 독도 선회관광을 할 때도 느꼈지만 독도에는 새가 정말 많았다. 울릉도도 만만치 않았지만 독도는 연신 새들이 날아다녔다. “독도는 우리땅” 노래는 정말 엄청난 고증을 거친 노래였다 라는게 가슴 진하게 느껴졌다. 안개가 끼고 있는 와중에도 새들이 계속 사람들의 머리위를 날아다녔다. 울릉도에서 동남쪽으로 뱃길따라 이백리. 외로운 섬하나, 새들의 고향. 그래 정말 새들의 고향다운 모습이었다.
독도를 한바퀴 돌아보고, 이곳 저곳을 걸어다니다 보니 매서운 바람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다시 배로 들어가서 조금은 선착장 주변에도 여유가 찾아왔다. 그 사이에 여기저기 눈과 고개를 돌리며 무엇을 볼지 생각하고 있자니 독도의 또 다른 사진 스팟인 독도 이사부길 표지판이 보였다. 여기서 사진 또 찍어야지 하며 게스트하우스에서 온 사람들과 줄을 섰다. 다들 얼마나 독도에 들어와 설레는지 얘기하다 독도에 들어오는 시그널이 독도 수비대 위문품 사라는 방송인것 같다고 말하자 당진에서 온 언니가 사실 자기가 배에 탔을 때 해군 복장을 한 사람이 함께 탔다고 했다. 그리고 배에서 내려 독도 수비대 쪽으로 갔다고. 아마도 교대하는건 아니었을까? 라는 많은 추측들을 했다. 그 사이에, 이사부길에서 사진 찍을 차례가 되었다.
이사부, 이사부 어디서 들어봤을까 입안에서 이사부라는 발음을 굴려보았다. 그러자 독도는 우리땅 가사가 저절로 생각났다.
러일 전쟁 직후에 러일전쟁 직후에 임자 없는 섬이라고 억지로 우기면 정말 곤란해
신라장군 이사부 지하에서 웃는다
독도는 우리 땅
울릉도와 독도, 당시엔 우산국이었던 그 영토를 신라의 장군인 이사부가 정벌하면서부터 우리나라 땅이 되었던 그 시작인 이사부 장군. 그 장군의 이름을 딴 독도 이사부길에서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으니, 배가 이제는 돌아갈 시간이라며 경적을 울려댔다. 저 멀리서부터 사람들이 배로 다가오는게 보였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아직 배로 오는 중이니 시간이 있겠지 하고 늑장을 부리며 독도를 계속 하염없이 바라봤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고 사진을 좋아하고 내 사진의 대부분은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이다. 하지만 내가 유독 자신없어하는 것은 자연을 찍은 사진이다. 너무 광활해 프레임에 담을수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잘라서 찍어볼까 싶어도 내 시야에 담기는 만큼은 당연히 찍기가 어렵고, 어느 한 부분만 잘라내어 강조하여 찍자니 자연이라는 존재가 과연 내가 임의로 자를 수 있는 것인가. 내가 느낀 이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 하고싶은데 자연을 대상으로 한 사진을 찍을땐 그걸 도저히 할 수가 없다. 물론 엄청난 광각 렌즈를 가져온다면 할 수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생기는 왜곡으로 내가 보는 이 풍경을 왜곡하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다. 자연재해가 가장 대응하기 어려운 재난이라고 한다. 자연이라는 거대한 존재가 일으키는 것 이기 때문에. 그런 자연을 내가 뭐라고 카메라로 담으려는 시도를 할까. 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독도 역시 인증샷을 남긴 것 외에는 경치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사실 배에서 내리며 카메라를 까먹고 온 것도 한몫한다.
어느새 섬 저 안쪽에 있던 사람들도 배에 도착하여 배에 오르기 시작했다. 선착장에 남는 사람들이 없는 것을 보고는 우리도 배에 오르기로 하고는 배쪽으로 가는데 발이 안떨어지고 고개는 자꾸만 뒤로 돌아갔다. 이곳에 더 있고싶다, 하룻밤 자고싶다 라는 것 보다는 정말 이제 보면 언제 다시보나라는 감정이었다. 배에 타며 보니 독도 수비대에게 줄 위문품이 케이블에 매달려 올라갈 준비를 하는게 보였다. 케이블 끝은 독도의 꼭대기까지 이어져있었다. 저 꼭대기까지 이 기구는 어떻게 설치했을까. 독도 위문품이 독도에 들어갈 수 있다는 시그널임을 알고나니 독도 위문품을 하나도 못보탰다는것이 새삼미안했다. 미안하니, 다음번에 올 때는 보탤 수 있도록 해야지. 그리고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떼어 배에 들어갔다.
안녕, 독도
다행히 내 자리는 2층 창가여서 그런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독도를 떠나면서까지 한눈에 들어오게 구경 할 수 있었다. 오는길에 거센 파도를 지나 오느라 배에 탄 사람들이 연신 멀미봉투를 찾는 소리, 화장실에 가는 소리 등으로 가득했으나 독도에 한번 내리고 난 후에는 독도가 어땠는지에 대해서 얘기하느라 배안이 매우 소란했다.
배가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전날 독도 접안 실패 후 배가 다시 출발하자마자 자리에 앉아 잠에 들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엔 창밖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하도 독도 들어가기 힘들다 힘들다 해서 생기는 마음과 한국인으로써 독도에 가지는 웅장함(?) 때문인지 자꾸만 독도에게 질척거리는 마음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는 출발했다. 매우 거센 파도를 헤치며
나는 살면서 멀미를 해 본 적도 잘 없다. 태어나서 처음 해외여행을 할 때 귀국행 비행기에 올랐을 때 별 생각없이 입에 물고 있던 사탕이 비행기가 이륙하며 갑자기 목에 걸렸을 때 느낀 공포감이 유일한 멀미의 경험이라면 경험. 정신없이 파도가 치던 중국의 한 호수를 건너가던 배 안에서도 오~ 배 흔들리는데~ 정도에서 그쳤었고 자동차며 뭐며 멀미를 하는 일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독도에서 울릉도로 다시 돌아가던 이날, 멀미약을 안먹었으면 나도 지금 배안에서 토하고 난리치는 사람들과 운명을 함께 하고 있었겠다는 생각이 진하게 들었다. 왜냐하면 파도가 너무 심해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마냥 갑자기 부웅 하고 날았다가 배가 내려앉는 느낌이 나는 것은 예사요, 2층에 앉아있는 내 창문 까지 파도가 정신없이 쳤기 때문.
2층이 이런데 1층은 오죽하겠는가. 1층에 자리가 있는 수원에서 온 동생은 1층은 그냥 세차장에서 세차 기계 안에 앉아있는 느낌이라고 했다. 바깥은 하나도 안보이고 정신없이 바닷물이 창문을 씻어주고 있다고. 이 거친 항해에 딱히 먹은것도 없던 내 위에서 뭔가가 식도를 타고 넘어오려하는데 멀미약의 효과인지 그들이 차마 목구멍까진 넘어오지 않는 신기한 느낌까지 들었다. 멀미약을 안먹었음 지금 나는 어떤 상태였을까.
과연 이 항해의 끝이 있긴 할까, 1시간 30분의 항해가 이렇게 긴 시간이었던건가. 독도에 들어갈 수 있도록 덕을 쌓아주셨으면 가는 길까지 안전하게 가게 해 주셔야지 배가 뒤집힐 것 같은 파도를 보내주시면 어떡합니까 조상님들. 이라는 누구를 향하는 것인지 모를 절규를 외치고 있자, 어느새 울릉도에 잠시 후 도착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창밖에 드디어 울릉도가 보였다.
살았다. 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다시 사동항에 내려 독도 명예 주민증을 발급 받기 위해 사동항 인근에 있는 독도관리소로 향했다. 독도 접안 여부에 상관 없이 독도행 티켓이 있으면 얼마든지 발급 가능하다지만, 독도에 접안 성공 한 후 발급 받는 것이 더 간지 아니겠는가. 일행 모두가 모여 독도관리소로 향했다.
간단하게 생년월일, 성별, 독도 티켓과 주민증에 쓰일 사진을 골라 메일로 전송한 후 약 20분 가량을 기다리면 발급이 완료 되며, 기념품으로 렌티큘러 독도 엽서까지 받은 후 신나는 발걸음으로 관리소를 나왔다.
독도주민번호가 00059987번인것으로 보아 이 주민증을 받은 사람이 대충 6만명 미만이라는 것이, 내가 6만명 안에 선착순(?)으로 들었다는 것이 약간 벅차면서도 조상신이 도운 사람이 6만명이나 되는군. 하는 동질감도 느껴졌다. 이들도 주민증을 보고 그런 생각을 했을까.
관리소를 나온 후 당진에서 온 언니는 오늘이 일정의 마지막이라 다시 배를 타고 육지로 돌아간다고 하였고, 나와 수원에서 온 동생은 독도새우를 먹기 위해 다른 일행들을 기다렸다. 독도에 성공하고 나서 먹는 독도새우라니. 한껏 배에서 거센 파도에 시달린 위장이 독도새우라는 말에 반응했다. 육지에서는 한마리에 만원이라는 독도새우. 원산지 (?) 에서도 값이 비싼 편이라 엄두도 못 냈었는데 게스트하우스를 통해 사람들을 모집하여 먹게 된다니. 이런게 여행의 묘미지 하는 생각과 갑각류 여신이라 스스로를 부를 만큼 갑각류에 환장하는 나로썬 너무 기분이 좋았다.
당시 우리가 골랐던 음식점은 독도 새우 세 종류를 다 파는 곳이었다. 나는 독도새우라 하면 그냥 새우의 한 종류인 줄 알았는데 독도에서 잡히는 세 종류의 새우들을 일컬어 독도새우라고 부르는 것 이었나보다. 그 세 종류를 다 파는 곳이라 하여 고른 곳이었고, 혼자라면 고려도 하지 않았을 독도새우를 여럿이 함께 모이자 울릉도 까지 왔는데 먹어봐야지! 할 수 있을정도가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와서 먹어봤다던 독도새우는 과연 어떤 맛일까 어떻게 요리되어나올까 했는데 생새우회였다. 한그릇 가득한 독도새우를 생으로 까서 먹는 방식으로, 세 종류의 독도새우인 도하새우, 닭새우, 꽃새우 세가지를 까먹으면 됐다. 그 맛은 세 종류가 각각 맛이 엄청 다르다! 는 아니지만 적어도 세 종류 모두 엄청 살이 탱글탱글하여 입 안에서 톡톡 그 살들이 터지는 식감이 매우 좋았다. 게다가 육지에선 한마리에 만원이라는데 원산지라고 양껏 먹을 수 있기까지 한다면 그것으로 만족이었다.
트럼프 대통령도 독도새우는 먹어봤지만 독도에 들어갔다 온 후 독도새우를 먹어보진 않았을테지. 그런 생각을 하자 독도새우가 매우 더 맛있게 느껴졌었다.
독도 새우까지 먹은 후 수원에서 온 동생이 빌린 차를 타고 숙소에 들어가 다시 파티가 벌어졌다. 전날 독도에 들어가겠다고 했다가 취소했던 사람들이 아쉬워 죽으려고 하는 소리와 갔다온 일행들이 보여주는 사진과 독도 명예주민증 사진에 다들 부러워 하며 독도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힘든건지 얘기를 하다 보니 울릉도에서 또 보기 힘든게 있다고, 일출 보기가 힘들다는 말을 누군가가 꺼냈다. 울릉도의 날씨가 워낙에 변화무쌍한 탓에 깔끔한 일출 보기가 어려운 편이라고, 대충 1년 중 50일 정도 밖에 안된다는 게하 사장님의 말도 더해지고 나자 일출에 감흥이 없으나 괜히 한번 보고싶어졌다. 그래서 일출 보러 가지 않겠냐, 어디서 봐야하냐 등의 말을 하더니 다음날 일출을 보러 가자고 다들 의기투합하였다.
하지만 우린 잊었다, 그 의기투합한 시간이 새벽 1시라는 것을.
독도 접안 성공 시그널(?) 에 대해서
첫날은 실패하고 둘째날엔 성공한 사람의 후기로써 이후 저의 의견을 듣고 독도 접안 성공한 사람도 역시 같은 말을 한 것을 보면 꽤나 신빙성 있는 말 같습니다
독도 수비대 위문품을 판매하고 있다
방송이 독도에 가는 내내 나온다면 성공이다
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
처음 시도 했을 땐 확실히 그렇게 많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계속 갈 수록 독도 수비대에게 줄 위문품 판매 관련 방송이 나온다면 시그널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같이 간 일행의 말로 해군이 한명 배에 타고 있는 것도 시그널로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합니다!
확실히 독도 관람 후 돌아가는 배에는 해군이 없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