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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마살아임더 Sep 23. 2020

7. 울릉도에서 깔끔한 일출을 볼 확률은 50/365

울릉도 4일차, 일출 구경

* 이 글은 지난 4월 말, 한국에선 코로나가 종식되는 줄로만 알았던 그 시기의 여행입니다.

* 사회적 거리두기, 개인 방역을 매우 철저히 준수합니다.




전날 밤 누군가가 일출을 보고싶다고 한 말을 시작으로 어디가 일출 보기가 좋은지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내수전이다, 행남 해안산책로다, 사장님이 말한곳은 이곳이다 등등 얘기를 나누더니 정말로 일출을 보러가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 얘기가 나온게 대충 새벽 한시. 내일 아침에 해가 언제 뜨는지를 찾아보고 자리에 누워 가물가물한 잠의 끝자락을 붙잡고 잠의 세계로 떠난게 새벽 두시. 다섯시 반쯤 해가 뜬다 하니 숙소에서 네시 반 쯤에는 출발하자고 했는데 진짜로 떠날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두시에 잠들어서 네시 반에 일어나서 나가는게 가능한건가. 내가 아무리 광고대행사에서 극한의 스케줄 강행을 연이어 경험 해 봤었어도 이렇게 술을 진탕 먹은 다음엔 어려운법이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일출에 감흥이 없는 편이다. 오히려 모든것이 마무리되는 일몰을 더 좋아하는 편.


대학 시절 연합 등산 동아리에서 만난 본투비 등산애호가인 나의 부모님들은 매년 새해 첫날이 되면 산에서 일출을 봐야한다며 끌고 가셨다. 졸려죽겠는데 설산을 오르는건 정말 고역이었다. 폭설이 쏟아져 산길에 넘어진적도, 넘어지며 쭈욱 미끄러져 여기서 죽는구나 생각을 한 적도, 오르기 싫다고 눈물을 줄줄 흘리며 오른 경험도 있고 정말 어렸을 땐 해가 뜨는 것을 보고 내려오는 길에 너무 힘들어서 기절했던 경험도 있다. 그래서인지 난 일출은 큰 감흥이 없었다. 물론 새해의 첫 해는 의미있지만그 일출을 보기 위해 나에게 요구됐던 것은 고문에 가까운 것이었으니. 그만큼 나에게 일출은 큰 감흥 없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울릉도에서는 깔끔한 일출을 볼 확률이 일년에 50일 정도라는 사장님의 말이 흥미를 불러일으켰지만, 새벽 두시에 잠들었는데 네시 반에 일어나는 스케쥴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거라곤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물론 이사람들은 할 수도 있을것 같아 라는 생각을 잠들며 설핏 했던것 같다.





근데 정말로 네시반에 같은 방을 쓰는 언니들이 깨웠다.

네시 십오분이 되자 누군가의 알람이 조용히 울렸고, 잠귀가 더럽게 밝은 나는 알람의 주인보다 눈은 먼저 떴지만 모른척 하고 싶은 마음이 강해 다시 눈을 감고 돌아누웠는데 어둠속에서 한 언니가 내 이름을 조용히 불렀다.


 “ㅇㅇ아…안나가니..?”


이 무슨 어둠속에서 부르는 소리 있도다 같은 구절의 재현인지.


그렇지만 이미 눈이 한번 떠진 이상 나는 잠을 못 잘것을 알기에 별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5월초이지만 울릉도의 아침은 유독 추웠다. 동해를 지나가는 바람들이 지나가는 길목이라 그런걸까. 잠시 바깥 날씨를 보고는 가져간 옷가지를 전부 껴입고는 졸린 눈을 부비며 공용 휴게실로 나오니 오늘의 운전을 담당한 수원에서 온 동생이 비척비척 거리며 나와 시동을 걸었다.


이걸 진짜가네…라는 생각을 하며 차에 올라탔다.


울릉도가 작은 섬인것에 비해 어디서 일출을 볼 것인지에 대해 의견이 갈렸기에 일단 모든 일출스팟을 다 가보기로 하고는 여기저기 차를 운전해서 최적의 장소를 찾아 헤맸다. 그리고 결국 우리에게 선택된 곳은 도동항 이었다.


슬슬 뜨려던 그날의 일출



이곳 저곳에 들르느라 처음엔 암흑장막이 덮여있던 울릉도의 바다가 어느새 새로운 날을 힘껏 뿜어내려 준비하고 있었다. 약간 조급해진 일행들이 차를 세우고 일출을 보기 위해 냅다 뛰었다. 그리고 자리를 잡고 보니 일출이 꽤 깔끔하게 보였다. 해도 동그랗게 잘 보일 것 같았다. 깔끔하게 일출을 볼 수 있는 날은 일년 중 50일 정도라고 하더니 상당히 쉽게 볼 수 있는걸? 하는 생각과 함께 새로운 날이 올라오는 것을 지켜봤다.


그날의 일출, 타임랩스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다시는 새해 첫날 산행을 하지 않겠다고 부모님에게 드러누워 떼를 쓰고 자유(?) 를 얻은지도 어느새 10년이 다 되어간다. 하지만 해를 보지 않은 날 보다는 뜨는 해를 보는 날이 더 많은 내가 내린 감상평은 울릉도에서 본 일출은 볼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보통 일출을 보러 가려면 산을 올라가야한다. 그래서 산에서 일출을 보려면 해가 그 산 위까지 끌어올려져야하기 때문에 산 사이로 햇빛이 비추는 것도 예쁘긴 했지만 대한민국의 동쪽 땅 끝과 가까운 울릉도에서 보는 일출은, 아마 우리가 그날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새 날을 보는 것이기에 예쁘다 라는 감상에 감동이라는 감상이 덧대어졌다.



때마침 날아가던 비행기와 해


한국 망망대해의 중앙에서 떠오르는 해라서 그런지 지구가 하루동안 열심히 해 주변에서 한바퀴 돌아 전세계를 돌아 이제 해가 우리에게 비추는거라는게 더 직접 와닿는 순간이었다. 어디를 비추고 왔니? 이번엔 한국을 비출 차례란다.


아, 일출 예쁘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물론 잠을 못자서 여전히 일출은 눈꺼풀을 찌르는 날카로운 졸림이 함께 하는 순간이지만 그 날카로움을 덮을만큼 예쁜 일출을 봤으니 오늘의 잠은 이걸로 다 보상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같이 밝아오던 도동항


일출을 보고 기지개를 켜며 몸을 돌렸는데 햇빛이 도동항을 비추기 시작했다. 어촌 마을에 아침이 찾아오고 있었다. 어촌 마을에 아침이 찾아오는 순간은 처음 본 것이라 잠시 멈칫했다. 대부분의 항구가 그렇겠지만 울릉도는 워낙에 파도가 많이 치는 곳이라 항구가 열려있기 보다는 등대 등으로 방파제를 만들어 바다를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도록 설계 되어있는 곳들이 많은 것 같았다. 그래서 일출이 토해낸 해가 바로 햇살을 항구로 비추기보다는 조금 해가 떠올라야지 항구에 빛이 고루 퍼져나갔다. 그걸 볼 수 있는 건 상당한 행운이었다.



영화에서 보면, 특히 미이라나 내셔널트레져, 인디애나 존스 등 보물을 찾아 떠나는 어드벤쳐물에서 보면 영화 결말 쯔음에 가서 숨겨져있던 보물을 주인공이 찾아내며 빛이 보물에 들어오는 장면이 항상 들어간다. 어촌 마을에 햇살이 고루 퍼지는 장면은 마치 그 보물에 빛이 들어오는 장면 같았다. 모두가 잠들어 고요한 어촌에 비추는 햇살, 빛을 받아 밝은 빛을 반사하는 고기잡이 배와 건물 들이 퍽 예뻤다.



그걸 바라보며 역시 자연광이 사물에 가장 예쁘게 맺히는 빛이다 하며 끄덕끄덕 하고 있는데 일행들이 도동 옛길, 행남 해안 산책로도 한번 걸어보러 가겠냐 하여 다들 행남 해안산책로로 향하는 길로 걸어갔다. 전에 이곳에 와본 한 언니가 밤중에 여길 걸어가니 엄청 무서워서 덜덜 떨었다는 말을 했다. 울릉도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이 온 나는 그냥 아 그렇구나 하면서 걸어갔는데, 상당히 무서울만 했다.




해안 산책로라고 하더니 산책로가 바다와 너무 가까웠다. 파도가 연신 바위를 씻어내리는 것이 보였고 심지어 그 파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슬로우모션으로 보일 정도로 생생하게 내 눈앞에서 바다가 넘실거렸다. 파도가 과연 무생물이 맞을까. 저렇게 액체가 바위를 부드럽고 단호하게 씻어내리는데 저건 분명 감정 있는 생물 처럼 만지는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을 하며 바다를 가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까지 바다를 본 것은 해수욕장에서 바라본 것 혹은 어딘가 높은 곳에서 바다 색깔을 본 것이 전부였으나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고 있으니 분명 내가 이제까지 본 바다가 맞건만 왠지 훨씬 더 날것의 바다라고 느껴졌다.


그 낯설음에 한참을 파도를 들여다 보고 있는데 일행들이 한참 앞서가는 것이 보여 얼른 따라가는데 왜 한 언니가 여길 밤에 와본 후 무섭다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다들 새벽부터 기운찼다.



파도가 거센 바람을 잡아 타고 함께 절벽이 높은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바위에 부딪히고 있었다. 마치 생명을 가진 존재처럼 더욱 높이 닿으려는 듯이. 지금은 해가 떠 있으니 바다가 청량한 푸른빛과 하늘을 똑닮은 색을 띄고 있어 부딪히는 파도가 예뻤으나 해가 진 후 검은 색을 잔뜩 머금은 바다가 이렇게 절벽 높은 줄도 모르고 부딪히며 연신 바위를 쓸어내린다면 상당히 무서울만 했다.


여기 상당히 높은 곳 이다.


그렇게 바다를 바로 옆에 끼고 산책로를 계속 걸어가자 산책로 중간에 놓인 다리를 만났다. 이 다리가 무서운 소리를 내며 흔들거리고 있는걸 보고 가도 되는거야? 하며 웅성거리고 있자 안그래도 여기 들어가지 말라 그랬어 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그렇다면 해안산책로는 여기가 끝이지 하고는 다들 미련없이 몸을 돌려 다시 항구로 향했다. 다시 항구로 돌아가는 우리 옆에선 바다가 연신 우리 발목을 잡아챌 기회를 노리는 양 파도가 높이 치고 있었다. 만약 독도에 들어갈 배가 오늘 뜬다면 오늘도 글렀겠구먼. 하는 당찬 자신감 (?)과 함께 걸었다. 어제 가봤으니 망정이지.



일출과 함께하는 모습, 그리고 거센 바다




차를 타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데 도동항에 세워진 오징어배가 눈길을 잡았다. 이제까지 오징어배를 본 것도 처음이지만 오징어 배에서 오징어를 끌어모으기 위해 달아둔 오징어 등마다 햇빛이 예쁘게 고여있었다. 아까 어촌마을에 해가 비추는 것을 보고 이미 한차례 감탄한 마당인데 당연히 그것도 자리에 가만 서서 바라보게 되었다. 잠이 덜깨서 그런건지 아니면 진짜 내 눈에 비치는 이 풍경이 예쁜건진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내 눈엔 어촌마을의 삶의 한 순간으로 보였다.




이걸 찍으려고 잠시 내려도 되냐는 내 말에 운전대를 잡고 있던 수원에서 온 동생은 얼마든지 마음대로 하라며 차를 세워줬다. 상당히 매너있는걸? 하며 감사인사를 표하고 다시 차에 올라탔는데 차안에서 기다리던 일행들은 나와 그 동생을 제외하곤 모두 오늘 육지로 떠난다고 얘기하는 중 이었다. 어디 항구에서 떠나는지, 몇시 배인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그 동생이 그럼 일행들을 항구에 맞춰 데려다 주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렇구나 하고 있는데 같이 가자는 말을 했다. 이미 울릉도에서 전동퀵보드를 타고 여행하겠다며 호언장담을 했다가 첫날 와장창했던 나로써는 거절 이유가 없었다.




이렇게 가다가 사진 찍고싶다 하면 얼마든지 찍으라며 시간을 내어주는 좋은 일행을 만났는데 거절 할 이유가 없었다. 울릉도의 마지막을 알차게 즐길 수 있겠군! 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차에 타고 있던 일행들 중 대전에서 온 언니가 게스트 하우스 근처에 있는 관광지 하나만 가면 울릉도의 볼거리 대부분을 본거라는 말을 했다.


모두 그 언니의 소원 성취(?)를 위해 그 곳을 가기로 했다. 덕분에 아무것도 울릉도에 대한 정보 없이 온 것 치고 꽤 많은 관광지를 둘러볼 기회가 생겼다.



바람도 거센데 차가 있다면 나야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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