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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연애

학창 시절에 연애를 했어야 했다.

by 키수킴



얼마 전 고등학교 때 다니던 학원 선생님을 만났다. 특유의 열린 사고를 가지신 선생님과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격없이 연락을 하며 지내는 사이다. 선생님은 수업을 줄인 뒤로는 살만 찌고 있다며 푸념을 늘어 놓으셨지만, 이전에 여유가 없어 보이던 때보다 좋아 보이셨다.


선생님과는 워낙 오랜만에 봤기에, 그간에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얘기를 하다, 문득 선생님 아이들의 근황이 궁금해졌다. 내 기억속에는 아직도 어린 아이인 그 녀석들이 어느새 고등학생이 됐다고 한다. 선생님께서는 두 명의 고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로서 이런저런 고민이 있다며, 먼저 그 시간을 지나온 내게 혜안이라도 묻듯이 고민을 털어놓으셨다. 고등학생의 내가 했던 고민들을 학부모의 입장에서 들어보니 색달랐다. 선생님은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고민이 있다며, 말을 하기 전 커피를 한 모금 쭉 들이키셨다. 고2인 딸에게 남자친구가 생긴 것이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선생님께서 하시는 고민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 대학입시라는 인생의 첫 시작을 준비하는 학생으로서 모든 기운을 쏟아도 아쉬운 판국에, 연애는 독약이 될 수도 있다. 특히나 연애의 당사자가 아닌 부모에게는 더욱이 그러하였다. 그것은 내가 학창시절에 했던 생각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 편으론 선생님의 딸을 응원하고 싶었다. 이제 다시는 교복을 입고 가팔랐던 등교길을 오를 수 없는 내게, 그 시절의 연애는 다시는 할 수 없는 그것이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시는 교복을 입을 수 없게 되면서 아쉬운 것들이 생겼다. 다른 친구들보다 대입준비를 늦게 시작했던 나는 많은 것들을 포기했었다. 포기했다기보다는 필히 포기해야 하는 줄 알았다. 그 중에서도 감정의 소모가 뒤 따라는 연애는 1순위 포기 대상이었다. 그런데 유난히 그 포기가 아쉽다.


교복을 입고, 가방을 정갈하게 메고, 놓치면 길이라도 잃을 것처럼 손을 꼭 잡고 가는 학생들을 보면 그 남학생의 얼굴에 나를 그려 넣어본다. 그리고 반대편 여학생의 얼굴에는 마음으로만 좋아했던 그때 그 여고생을 그려 넣는다. 지금처럼 때가 탄 마음이 아닌, 그때의 백설기 마냥 하얀 마음으로 풋풋한 설렘을 느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육체를 섞지 않아도, 마주잡은 손으로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서로의 꿈을 응원할 수 있었으면 참 좋았을 것을.


면도를 하지 않아 코밑이 거뭇거뭇한 채로 그게 참 아쉽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난 선생님의 딸을 응원하기로 했다. 물론 선생님께는 비밀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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