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난의 대물림

가난한 부모와 가난한 자신

by 키수킴
빈부격차 1.jpg

군대를 막 전역했을 때, 호텔에서 잠깐 일을 하게 됐었다. 오래전 동네 태권도장에서 취득한 태권도 자격증 덕분에, 비록 내 안위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나, security팀(보안 팀)에서 일을 하게 됐었다. 사실 팀이 맡는 업무의 중요도는 꽤나 높았었지만 전문성을 가진 이는 없었다. 그나마 전문성이라고 한다면, 검은 양복을 입었을 때 폼이 좀 나오는 게 다였다.

신입인 내가 가장 먼저 하게 된 일은 주차장 보안이었다. 지하 주차장 부스에 앉아 드나드는 차량을 파악하는 일이었다. 하루에도 수백 대의 차량을 보며, 나는 서울에 수많은 외제 차가 있다는 것을 새삼 다시 느끼게 됐었다.


호텔을 찾는 사람 중에서 투숙이 목적인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보다 많은 사람들이 골프나, 휘트니스 혹은 수영장 같은 부대시설을 이용하기 위해 방문했다. 주차장 한편에 앉아 있던 나를 스쳐 가는 외제 차들은 부대시설을 이용하는 이들의 발이 되어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있었다. 외국에서 건너온 그 차들의 핸들은 대부분 굵은 알반지를 낀 귀부인의 고운 손이나 번쩍거리는 시계를 손목에 걸친 중년 또는 그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은 노신사의 손에 이끌리고 있었다.


차에서 내린 그들은 ‘또각또각’ 구두 굽 소리를 귀티 나게 내며 그들의 문화 속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그들의 부티 나는 구두 굽 소리가 사라진 자리에는, 흙먼지만이 남을 뿐이었다. 이 흙먼지들은 그들과 비슷한 연배지만, 얼굴에 세월이 더욱 진하게 새겨진 어느 중년들에 의하여 닦여졌었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모두가 평등하다고 하지만, 발자국을 낸 사람과 발자국을 닦은 사람을 같은 계층의 사람이라고 묶어버린다면, 두 부류의 사람들 모두 탐탁지 않아 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빈부격차 2.jpg

이 광경을 지켜보며 나는 그들의 자녀들이 살아갈 세상을 생각하곤 했었다. 한쪽의 부모들은 본인들이 살아온 방법 혹은 한 층 더 개선된, 그것이 금전이 되었건, 인맥이 되었든 간에 더 나아진 환경과 선택지를 과육이 뚝뚝 떨어지는 수박처럼 자식들에게 물리도록 물려줄 것이다. 그들의 자녀들은 자연히 부모가 찍어 놓은 발자국에 사뿐사뿐 발을 올려놓으며, 다른 것에는 신경 쓸 필요 없이 오로지 앞으로 걸어 나가는 데 힘을 쏟는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어느 쪽으로 가는 것이 최선의 목적지인지, 어떻게 가는 길이 가장 빠른 길인지 배우게 된다.


그 반대편의 부모들은 그들의 자식들에게 자신의 겪어야 했던 그리고 겪고 있는 고난과 역경들을 푸념 조로 내뱉으며 한 마디 내뱉는다. “아들아, 딸아 너는 절대로 나처럼 살지 말아라.” 세월의 폭풍우를 우산 없이 맨몸으로 맞서 온 이들은, 못 배우고 못 가진 서러움을 자신의 피붙이에게만큼은 겪게 하지 않으려, 추운 줄도, 더운 줄도, 힘든 줄도 모르고 사방으로 팔방으로 휘젓고 다닌다. 자신의 인생에서 당연히 주인공이 되어야 할 그들은, 스스로 거름이 되기를 자처한다. 그러면서도 늘 다른 부모들만큼 해주지 못한 것에 바보처럼 미안해한다. 그들의 자녀들은 맨손으로 삶을 시작한다. 원하는 삶의 방향으로 걸어 나가는 데 힘을 쏟는 것이 아니라, 어디로 가야 할 지, 어떻게 가야 할 지 그리고 나는 정말 갈 수 있는지를 스스로 터득하며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부모처럼 살지 말아야 한다는 처절한 외침 속에서, 외롭게 걸어 나가야 한다.

빈부격차 3.jpg


이 서로 다른 배경에서 시작한 그들의 자녀들은 사회라는 달리기 트랙에서 맞닥뜨린다. 그들의 목표는 같다. 저 멀리 보이는 결승선에 먼저 머리를 짓이겨 넣는 것이다. 하지만 결승선을 통과할 수 있는 인원에는 제한이 있다. 이 제한은 시간이 갈수록 엄격해진다. 우물쭈물하다가는 영영 통과하지 못할 수도 있다.


출발선에서 서로의 눈치를 보며 자세를 가다듬는다. 시작을 알리는 총소리가 울리고, 모두 다 기세등등하게 달려나간다. 하지만 이 달리기 시합은 아주 이상한 규칙이 있는데, 규칙이 없다는 게 이 달리기의 규칙이다.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기만 한다면, 그가 어떤 식으로 그곳에 닿았는지 따위는 저 하늘나라의 이야기일 뿐 논외이다. 결과와 순위만이 있을 뿐 과정이라는 것은 존재치 않는다. 누군가는 맨발로 달려야 하고, 누군가는 황금으로 덧칠한 운동화를 신고 달린다. 정말 잘난 놈들은 관우의 적토마를 탈 수도 있다. 누군가는 우사인 볼트를 대신 고용해 뛰게 할 수도 있다. 여기에는 반칙이라는 것이 없으니깐 말이다.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결과는 불 보듯 뻔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속단도 아닌 듯하다.


빈부격차 10.jpg

개천은 말라버렸다. 용은 더 이상 개천에서 날아오르지 못한다. 끽해야 잉어 정도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더럽고 치사해서 모두 다 그만두고 싶지만,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내 부모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내 부모의 희생이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을.


호텔 주차장 한 편에 앉아서 줄지어 들어오는 외제차들과 그 외제차들 사이사이를 걸어 다니며 걸레질을 하는 중년을 번갈아 본다. 이 적나라한 광경이 어른이 된 내 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학창 시절 연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