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보고 이 글을 눌렀는가? 섹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단어 중 가장 즉각적이면서 자극적인 단어이다. 더불어 당신이 이 글을 누르게 만든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어떤 콘텐츠가 펼쳐질 것을 예상하고 이 글을 눌렀는가? 체위? 야한 썰? 섹스에 관한 과학적인 사실? 무엇이 됐든 원초적이면서 강력한 자극을 위해 이 글을 누르지 않았을까 싶다.
전업 작가는 아니지만, 꽤 오랜 기간 취미로 글을 썼다. 주로 블로그에 글을 많이 썼는데, 세상에 일어나는 다양한 이슈들에 대한 내 생각을 정제된 언어로 표현하는 일을 즐겼다. 쓰고 싶은 대로 쓰다 보니 보통 철학, 인생, 문화와 같은 고리타분한 이야기들을 많이 쓰게 됐다. 그러니 자연스레 블로그를 찾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고, 오랜 기간 블로그를 꾸준히 운영했음에도 하루 방문자는 내가 당일 날 회사에서 거래처 사람들과 통화한 수보다 적을 때도 많았다.
그간 쓴 이야기들을 모아 출간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원고를 수정하고 출간 기획서를 열심히 보냈으나, 큰 반응은 없다. 글이 맘에 들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저런 고리타분한 주제로 아무리 글을 잘 섰다고 한들 이름 없는 작가의 책을 내줄까 싶다. 그보다는 글 같지 않더라도 SNS에서 수많은 좋아요를 받는 그들의 끄적거림을 내주고 싶을 거다.
그래도 일단 마케팅 능력을 높여 원고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블로그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방문자 수를 늘려야 하니 가장 원초적이며 즉각적인 것들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 않던 맛집 리뷰를 시작했고, 그 순간에 가장 핫한 키워드를 일부로 골라 억지로 글을 짜냈고, 선정적인 주제를 잡아 글을 썼다.
결과는 놀라웠다. 평상시 고귀한 주제들을 선정해 가장 좋은 표현을 고르고 골라 썼던 글로는 도무지 예상할 수 없는 방문자가 찾아왔다. 불과 일주일 만에 말이다. 내가 쓴 글 중 개인적으로는 가장 수작이라고 생각하는, 몇 시간을 꼬박 고치고 쓰기를 반복한 글보다 10분 만에 쓴 맛집 리뷰의 조회수가 높았다. 내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며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어 쓴 글보다는 역시 선정적인 주제로 쓴 글의 조회수가 훨씬 높았다. 그때 알았다. 사람들이 무엇에 반응하고 어떻게 해야 많은 사람들이 찾아드는지.
이름 모르는 애송이의 글을 심도 있게 읽어주고 난해한 표현 뒤에 숨긴 의도를 파악해주려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보다는 즉각적인 자극을 줄 수 있는 것에 반응할 것이다. 그 제작자가 모르는 사람이라도.
지나가는 당신을 불러들이기 위해 미친놈처럼, 그냥 섹스라고 말해봤다. 실망시켰다면 미안하다. 헐벗은 여인네나 우락부락한 근육남이 아닌 남루한 내가 당신들을 마주하고 있어 미안하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당신과 마주할 수 있어 기쁘다.
사회가 인정하는 방법으로 첫 창작물을 내놓고 싶은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고민을 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실제로 만들고 싶은 창작물과 손쉽게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는 창작물의 괴리에서 고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으면, 말도 안되는 선정적인 얘기를 하며 조회수를 올리는 유투버들과 아주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제목으로만 기사를 쓰는 기자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오늘도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나의 창작물이 어떻게 빛을 볼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출판사의 문들 두드린다. 동시에 블로그에는 일차원적이고 순간적이며 자극적인 요소들을 키워드로 한 게시물을 올리면서 말이다. 부디 내가 그 사이 어딘가에서 작가라는 이름을 얻어낼 수 있길 진심으로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