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들

1부. 생각할수록 슬퍼지는 것들

by 은파
불안증은 선물이자 축복이다.


직장생활 초기를 회상해보면 제2의 인생에 대한 희망과 기대도 많았지만, 조직 생활에 적응해 가면서 불안증이라는 독초가 마음속에서 점점 자라나고 있었음을 그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다. 여러 번의 인사이동 끝에 기획팀장을 맡은 적이 있었다. 이 자리는 전체 부서 업무를 조정하고 회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기획을 총괄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자리의 중요성 때문에 잘하고도 싶었다. 아니 반드시 잘 해내야만 했다. 이러한 압박감은 누가 강제한 건 아니고 나 스스로 채찍질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만큼 정신없이 일했던 시기는 없었던 것 같다. 큰 탈 없이 힘들었던 시간은 지나갔고, 1년 뒤에 승진도 하게 되었다.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지만,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 자리 잡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불안증이라는 감정이었다. 그 당시 업무에 대한 욕심과 걱정 때문에 주말의 경우에는 온종일 근무한 것은 아니었지만, 잠시라도 출근했던 횟수를 포함하면 거의 350일 이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살인적인 시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퇴근해서도 밤 10시 이후에 언론 동향을 체크하고, 주요 일간지 인터넷판을 훑으면서 대책을 마련하느라 밤잠을 설쳤던 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주간 단위 업무 계획도 팀원들에게 맡기면 미덥지 못해 세세한 작성 방향까지 구체적으로 정해주느라 힘들었던 기억도 있다. 물론 월간 계획 수립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마음속에 자리 잡은 불안증은 휴가 기간에도 여지없이 발동되었다. 여행 중에도 언론을 모니터링하기 일쑤였고, 주요 현안 자료를 필수품으로 챙겨가서 이것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를 살피기도 하였다. 당시의 마음 상태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나 아니면 안 된다'라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 얼마나 피곤했었겠는가? 신경 강박증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렇게 신경을 쓰니 살이 빠지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두통이 자주 발생하여 일주일에 서너 차례는 두통약을 달고 살았고, 껌딱지처럼 붙어 다닌 놈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만성피로 증세였다.


이런 경험을 하면서 나름대로 '나 아니면 안 된다'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물론, 이건 개인적인 생각이지 정답이 아님은 물론이다. 그것들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늦은 밤까지 주요 업무 관련 인터넷 기사를 서핑하며 다음 날을 걱정하는 사람, 휴가 중에도 업무가 걱정되어 사무실로 확인하는 사람, 저녁 회식 시간에 어떻게 즐길 것인지 하는 생각보다는 다음 날 출근 걱정을 하는 사람, 걱정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 카톡이나 문자가 오면 즉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모르는 번호로 부재중 전화가 찍혀 있을 때 먼저 전화해서 확인해야 안심이 되는 사람, 자동차 기름이나 핸드폰 배터리를 가득 채워야만 마음이 편안한 사람 등이다. 이런 사람들은 불안증 증세를 가졌거나 향후 불안증 증세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이외에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사례는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은 어떠한가? 내가 없다면 세상이 돌아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은 큰 착각에 불과하다. 내가 없어도 회사는 돌아가게 되어 있다. 조직이라는 것은 사람 한 사람이 빠진다고 해서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내가 없으면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를 채우면 되는 것이다. 자동차 기름이나 배터리가 방전되면 채우면 될 일이다. 또한 걱정하는 일은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냥 걱정으로 끝나는 일이 대부분임을 경험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이렇듯 불안증이라는 놈은 기대를 크게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고, 한걸음 물러나서 생각하면 다 덧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내 문제가 되면 상황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서 끝없이 걱정을 쌓아 놓게 된다. 참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그러면 불안증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하이데거는 어떠한 기분에 젖어 있는 상태를 유정성이라고 표현한다. 아마 불안증은 하이데거가 말하는 유정성의 일부분이 아닐까 싶다. 여기서는 불안증이 유정성의 일부분이라는 전제하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알 듯 모를 듯

갑자기 조여 오는

정체불명의 힘에

온 정신이 어지럽다

불안이 엄습해 올 때마다

깊은 숨구멍 속으로 삼켜

잘도 소화시켜 왔는데

이번 것은 좀 다르다

이러다 질식하는 건 아닌지

예쁘게 살고 싶었는데

신경증이 가만두지 않는다

한때는 나를 위해 움직였던

모든 것들이 배반의 길로

가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언젠가는

온몸의 사지를 태워

강물에 던져야 할 때가 오겠지

누군가 수습해 따뜻한 양지에

묻어 줄지도 모르기에

작지만 커다란 희망 나무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 본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고 있었다. 여름이었는데 휴가를 어디로 갈지, 어떤 형태의 숙소를 잡을 것인지, 휴가 중 필요한 물품은 언제까지 준비를 마칠 것인지 등을 생각하면서 들뜬 기분으로 지냈었다. 하지만 한 통의 전화로 모든 것이 다 날아가 버렸다. 일이란 것이 그런가 보다. 하나가 풀리지 않으니 연달아서 생각지도 않았던 일들이 겹치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이 커지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에 놓이자 전에 생각했던 휴가 계획은 내 머릿속에서 떠나버려 이미 내 일이 아니었다. 그 대신 지금 닥친 일들 때문에 푸념도 하고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지 걱정도 하면서 하나하나 풀어나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문제가 터진 후부터 모든 것이 해결되기까지는 10여 일 정도 걸렸지만, 그 기간 온통 나를 지배했던 것은 불안증이었다. 일이 잘못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과연 내가 이 일을 잘 해결해나갈 수 있을까? 일이 잘 해결된 후에도 미리 대비하지 못했다고 질책이 뒤따르진 않을까? 하는 불안증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결국 일은 잘 해결되었고, 걱정했던 일들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후 바로 휴가를 떠나 가족과 함께 즐겁게 지낼 수 있었다.


불안증은 갑자기 습격(닥쳐오는 것)해오는 것이라고 하이데거는 말한다. 신경증이라는 시를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불안증이 어떻게 다가오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는 불안증에 대하여 흔히들 마음에서 주관적으로 나오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하이데거에 따르면 불안증은 갑자기 피어오른 것이라고 한다. 즉 불안증은 '안'에서부터 내게 오는 것도 아니고, '밖'에서부터 내게 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사물이나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전적으로 달려있다고 한다. 쉽게 말해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대하여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연관 짓게 되고, 이때 피어오르는 불안증은 어떤 한 가지 요인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하이데거에 의하면 '세계'라는 용어가 적합하겠지만, 이하에서는 우리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사회'라는 용어를 대신 사용하겠다)에 대한 의존성에서 생겨난다고 보았다. 내가 무인도에서 혼자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은 사회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불안증은 한마디로 이러한 의존성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의존성은 끊어 낼 수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한 이러한 의존성은 끊어낼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불안증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사회에 대한 의존성은 내가 만든 것도 아니고, 남이 나에게 강제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는 모두 태어나면서부터 사회에 대한 의존성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어찌 보면 의존성은 숙명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불안증은 사회 속에서 관계를 근거로 하여 발생하기 때문에 전혀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불안증은 우리가 지배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의 자유를 훼손시키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갑작스럽게 습격해오는 불안증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시스템을 평소에 갖춰놓게 된다. 따라서 어떻게 보면 불안증은 결코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원동력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렇게 본다면 불안증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내면화해야 할 성질의 것이 된다. 그러니 불안증으로 인해 이제는 걱정하지 않았으면 한다. 불안증은 신의 선물이자 축복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불안증을 적당한 선에서 잘 다스려 우리의 삶을 좀먹지 않도록 하면서, 이를 기회로 잘 활용하여 각종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 된다. 오늘부터라도 불안증을 평생 동반자로 삼고 남은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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