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지 않을 줄 알았다

1부. 생각할수록 슬퍼지는 것들

by 은파
죽음은 가장 확실한 가능성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오늘은 이 빗줄기를 타고 한없이 올라가고 싶다. 비록 그 끝이 어디인지 모르지만, 무작정 오르고 싶은 날이다.


어린 시절, 세상 곳곳을 누비는 상상 여행을 떠나곤 했다. 마음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펴다 보면 가지 못할 곳이 없었다. 어느 날인가는 미국 Portland Head Light(등대)에 올라 지나가는 배들을 인도하였고, 다음 날에는 고비사막에서 유목민들과 함께 일몰을 즐기기도 하였다. 참으로 행복한 시절이었고, 지금도 가끔 그때의 기억들이 꿈에 나타나곤 한다. 이러한 꿈을 꾸던 시절에는 못할 것이 없었고, 그 시간도 영원할 줄 알았다.


중학교 때쯤으로 기억한다. 며칠간 몸에 열이 나고, 목이 아파서 종합감기약을 먹으며 버텼다. 몸살이겠지 하면서 학교를 계속 나갔는데, 하루는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지더니 정신을 잃고야 말았다. 깨어나 보니 집이었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친구가 부축해서 집에까지 왔단다. 나중에 몸살이 아니라 급성 편도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고열과 힘든 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너무도 힘이 들어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런 일이 있기 전까지는 건강에 특별히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질병이나 죽음은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나도 병이 들고, 늙어 가면서 언젠가는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슬프고도 평범한 진리를 그때쯤 새삼 알게 되었다. 이때부터 삶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것인지 등에 대해 고민을 하며 살게 되었다.




죽음은

늘 곁에서 잠자고 있다

가끔씩 깨워달라고

죽음은 쉼 없이 속삭여 왔건만

옆에서 자고 있는 것조차

잊은 지 오래

죽음을 생각지 않고 살아왔기에

다른 이들의 삶을 갉아먹었고

한때 명징했던 혈관 속에는

저주의 액체만이 가득 차올라

온 세상을 지독한 고통으로

전염시키고 말았다

죽음은 나를 비추는 거울

가끔은 그 거울에 직면해 보자

비록 반사된 얼굴이 꾸짖을지라도

거울과의 대화를 게을리하지 말자

죽음은 늘 열려있는 가능성

죽음이 밀려온다

나를 비추는 거울이 밀려온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흔히들 죽음은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하이데거에 따르면 죽음은 우리 인간에게 있어 가장 독자적이고 확실한 가능성이라고 한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죽음에로의 선구' 즉 '죽음에로의 미리 가봄'이 필요하다고 한다.


혹자는 하이데거가 말하는 '죽음에로의 선구'가 왜 중요하냐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죽음은 내일이라도 바로 닥칠 수도 있는 가장 확실한 가능성이라는 점을 인식하면서 사는 사람과 죽음을 남의 일로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는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은 '본래적 삶'과 '비본래적 삶'을 구별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전자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사는 삶이라면, 후자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 없이 살아가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비본래적 삶'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은 물질만능주의적 세상에 동화하면서, 순간의 쾌락과 즐거움에 초점을 두고 살고 있다. 물론 그러한 삶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상 물질과 쾌락에 관심을 두고 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는 물질과 쾌락만으로 충족시킬 수 없는 그 무엇도 있다는 점을 우리는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다.


'죽음에로의 선구'가 있다면 우리의 삶은 과연 달라질까?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가장 확실한 가능성을 내면 깊이 인식한다면 우리는 현재의 삶을 되돌아보게 될 것이다. 지금의 삶의 방식이 가치가 있는 것인지, 그래서 이대로의 삶을 죽을 때까지 이어가도 되는지에 대해 생각을 다시 해볼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그동안 애써 외면했던 중요한 무언가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삶을 부정하라는 말은 아니다. 단지, 현재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그동안 잊고 살았던 그 무엇인가를 찾아보라는 말이다.


지금부터라도 삶이 허전하거나 답답해질 때마다 앞으로 닥칠 죽음의 모습에 대해서 상상해보자. 그러면 분명 가치 있는 그 무엇인가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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