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중학생 시절까지는 나 자신을 꽤나 싫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키는 컸으나 많이 마른 편이라 왜소하게 보여 싫었고, 내성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 남들 앞에 나서길 꺼리는 나 자신이 너무도 싫었다. 하체보다 상체가 빈약하여 어떤 옷을 입어도 잘 어울리지 않았던 점도 싫었었다.
남들보다 잘하는 분야가 없었다는 점은 특히 고민거리였다. 운동을 포함하여 예체능 분야는 젬병에 가까웠고, 그렇다고 문학 등 인문 분야에서도 남들보다 잘하는 것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특별한 것이 하나도 없었던 그 평범함이 싫었던 것 같다. 이렇듯 중학교 때까지는 한 마디로 지독한 열등감의 터널 속에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간이 지나 성인이 된 이후 생각해보니 단점이라 생각했던 그 모든 것들이 오늘날의 나를 있게 해 준 소중한 역사였다.
빈약한 신체 탓에 감기를 달고 살았지만, 그것이 싫어 국선도나 근력 운동을 꾸준히 해왔고 지금은 보통 이상의 체격을 가지게 되었다. 내성적인 성격을 고치기 위해서는 책을 소리 내어 읽는 연습을 꾸준히 해왔다. 책을 소리 내어 읽으면 발음과 운율이 뚜렷해질 뿐만 아니라 책 속의 지식이 밑반찬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관계를 주도적으로 끌고 갈 힘도 키울 수 있었다.
예체능 분야에서는 '직접 잘하기'를 포기하고 관람하는 능력을 키우는 쪽으로 관심을 돌렸다. 그 결과 지금은 스포츠뿐만 아니라 미술 분야 등 예술 분야에서도 어느 정도 즐길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가장 크게 변화시킨 것은 독서에 관한 관심이 아니었나 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책에 빠져 살았는데, 특히 철학책을 통해 다양한 철학자들을 만나게 되면서 사색하는 힘과 논리적인 생각을 키울 수 있었다. 또한 철학적인 사유 경험은 사회생활에서 발생하는 각종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감도 높여 주었다.
시간은 속임수를 앞세워
현재에 집중하라 재촉한다
지금은 다시 오지 않고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이니
미래는 어찌 될지 모르니
걱정은 미뤄 놓을 수 있으니
그냥 지금 최선을 다하라 한다
하지만 이 순간
얼마나 많은 이들이
나의 과거를 위해
나의 현재를 위해
나의 미래를 위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을까
현재는 과거의 되새김이고
미래는 현재의 거울임을
절대 눈치채지 못하게
시간은 늘 그렇게 속삭여온다.
하이데거는 역사란 이미 지나간 것이 아니라, 실존하는 인간의 生起(일어남)라고 말한다. 그는 과거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가 도래하는 과정 전체를 역사로 본다.다시 말해 한 개인에게 있어 역사는 이미 지나간 것이 아니라 매 순간 개개인의 결단에 따라서 지속해서 변화할 수 있으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분리해서 보지 말고 통합적으로 보라고 주문한다.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지만, 과거와 미래가 없는 현재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역사를 이렇게 이해한다면 과거 때문에 고통스러워할 필요는 없다. 나의 역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쉴 새 없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 또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내가 살아온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에 집중한다면, 미래는 자연스럽게 따라오기 때문이다.
생로병사가 인간의 운명이긴 하지만, 그 과정을 얼마나 풍요롭게 보낼 수 있느냐는 자신의 선택에 달렸다. 지금까지 나름대로 매 순간 자신만의 역사를 써왔지만, 또 다른 역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만들어져 가고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지나간 날이 힘들었다 하여 무조건 잊으려 하지 말고, 소중한 역사의 한편으로 고이 간직하자. 그렇게 하다 보면 지독히도 싫었던 과거 모습조차 사랑스럽게 다가올 것이라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