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꿈은 문학 소년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생계를 위해
취업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나름 직장에서 인정받으며
안정된 생활을 오랫동안 이어갔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뭔가 모르는 갈증이 계속되었다.
회사에서 계속 성장하며
안정된 생활을 이어가면서도
마음 깊게 자리한 갈증은 오히려 더욱 커졌다.
오랜 시간 동안 갈증의 원인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더 혼란스러웠다.
회사와 가정에서 안정될수록 갈증은
오히려 더 커갔으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1년간 장기교육 기회를 얻어
모처럼 좋아하는 책을 원 없이 읽을 기회가 생겼다.
하루에 다섯 여섯 시간 정도의 수업 시간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시간을 거의 도서관에서 보냈다.
이때처럼 많은 책을 읽었던 때는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운명처럼 하이데거와 만났다.
처음에는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었다.
시간이 가면서 분야를 좁히기 시작했고,
우연히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이 손에 잡혔다.
하이데거 철학은 원래부터 어려운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읽어보니 그 난해함 때문에 무척 당혹스러웠다.
하이데거의 철학 용어는 너무도 생소하였고,
반복해서 읽고 또 읽어보았지만 거의
암호해독 수준이었다.
태어나서 이토록 어려운 책은
처음이었던 것 같았다.
그럴수록 오기가 생겼다.
이때부터 5년 동안은 오로지
하이데거 책만 읽었다.
물론 국내에 있는 모든 논문까지 독파했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쉽게 곁을 내주지 않았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다.
하이데거가 없더라도 사는 데 아무 문제가 없으니
포기하는 게 어떻겠냐고 마음속에서도
속삭여 왔다.
그렇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한 번 포기하면 두 번 포기하게 되고,
그렇게 계속 포기하다 보면 모든 일에 있어서
쉽게 포기하고 마는 사람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바보가 되기로 하였다.
아무리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빼고
계속 읽어나가기로 했다.
그러다가 5년이 넘어 6년이 된 어느 순간이었다.
어렴풋하게 잡히던 하이데거 사상이
머릿속에 조그만 지도를 그리는 것 아닌가.
그렇게 점점 지도가 그려지더니 7년 차에 이르러
결국에는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이해할 수 있었다.
참으로 소중한 경험이었다.
하이데거 사상을 100% 이해한 것은 아니었지만,
하이데거라는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는
눈을 얻은 것은
분명 내 인생의 커다란 소득이었다.
이때부터 뭔지 모르게 그동안 내 마음을 억눌렀던
지독한 갈증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늦었지만 나도 하이데거의 눈으로 글을 써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하이데거를 통해 접하게 된
독일 시인 횔더린은
내 마음에 불을 붙여주었다.
하이데거는 ‘시인의 언어’야 말로
우리 삶의 방식을 충실하게 기술해 준다고 말했다.
또한, 시인은 존재에 대한 일반인들의 잡담에서
벗어나 있고,
일상의 선입견으로 환원되지 않는
존재의 생기에 주목하며,
자신에게 고유하게 주어진 존재에
응답하는 방식으로
말을 하고자 하는 자이기 때문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여기서 하이데거가 말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예술작품은 참된 진리를 드러나게 하는
소중한 존재인데,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으로 존재의 진리를
드러나게 하는 것은
시인의 언어다.’라고 하이데거는 말한 것이다.
한편, 하이데거는 ‘시인 중의 시인이다.’라며
횔더린을 극찬하면서, 그의 시 안에 담겨있는
존재의 진리를 분석하기도 하였다.
노란 배와 거친
장미들이 가득 매달린,
호수로 향한 땅,
너희, 고상한 백조들,
성스럽게 담백한 물속에
머리를 담근다.
슬프도다. 겨울이면,
나는 어디서 꽃을 얻게 될까?
또한, 어디서 햇빛과
지상의 그림자를?
장벽은 말없이 냉혹하게
그냥 서 있고, 바람결에
풍향기 소리만 찢긴다.
위의 글은 [삶의 절반]이라는 횔더린의 시다.
하이데거를 통해 궁핍한 시대의 천재 시인 횔더린의 [삶의 절반]이라는 시를 읽고,
삶의 절반을 넘긴
나의 현재를 돌아볼 수 있었다.
삶의 절반, 내 풍향기는 어떤 소리를 내고 있을까?
풍성하고 윤택한 소리?
맑고 깨끗한 풍경 소리?
메마르고 가난한 소리?
아무리 생각해도 가난한 소리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독한 갈증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하이데거와 횔더린의 영향을 받아
이때부터 직장생활 틈틈이 시를 쓰기 시작했다.
시를 선택한 이유는 어렸을 때 시 공모전에서
여러 번 당선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또한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나이가 들면서 어렸을 적 감수성은
사라진 지 오래되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감수성마저
메말라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형편없는 시였지만 1년간 내 마음을 담은 시를
계속 써나갔다.
이때 썼던 시는 아마 평생 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1년이 지나고 몇 차례 시 공모전에 응모하였으나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도전하고 또 도전해보았으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하이데거와 횔더린으로
가득 찬 내 가슴은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계속 속삭였다.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방향을 새로 잡았다.
좋아하는 시를 쓰는 일에
꼭 공모전 당선이라는 절차가 필요한지
생각해보았다.
결국, 공모전에 매달리지 않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시를 계속 써나가기만 한다면,
어떤 형식이든 상관없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렇게 SNS 생활이 시작되었다.
내가 쓴 시를 SNS에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SNS를 통해 시를 발표하면서
팔로워들과 소통하는 시간은 무척이나
소중한 시간이었다.
비록 인플루언서까지는 아니더라도
많은 팔로워의 응원 덕에
첫 시집을 발간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지금도 내 이름으로 된 첫 시집을 받았을 때의
그 감격을 잊지 못하고 있다.
글이라는 것은 묘한 구석이 있었다.
시로 시작했지만,
쓰다 보니 점점 영역이 넓어져 가는 것이 아닌가.
시집을 낸 이후로 철학과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고,
완성된 원고로 출판사에 계속 투고를 넣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맞았다.
두 개의 원고를 순서대로 출판사에 투고하였는데,
둘 다 채택되어 내 이름으로 두 권의 책이
출간되었다.
이때부터 자신감이 붙어 아직 발표하기는 이르지만,
소설도 두 편 완성해 놓았다.
글 쓰는 직장인은 이렇게 탄생하였다.
비록 아직은 베스트셀러 작가는 아니지만,
출판사 투고에 채택되어 탄생한 책을 보면서
더 큰 꿈을 꿀 수 있게 된 것이다.
글 쓰는 일에 대한 내 오래된 욕망은
그냥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우연히 하이데거와 횔더린을 만나
이루어진 일이지만,
글쓰기에 대한 간절함이 없었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직장과 글쓰기를 병행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근무시간 동안은 본연의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퇴근 시간이나 주말을 이용하여 글쓰기를 이어갔다.
그 과정은 너무도 힘들었다.
남들이 쉴 때 쉬지 못했고,
남들이 즐길 때 즐기지 못했고,
늦은 밤 졸음을 참아가며 창작활동을 계속했다.
아마 욕망의 불꽃이 조금이라도 약했다면,
지치고 힘들 때 잠시라도 포기했다면,
글 쓰는 직장인이라는 내 존재는
지금 없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글쓰기에 대한 간절한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서
묵묵히 걸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다는
나만의 고집과 자존심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앞으로도
두 가지 일을 병행하는 고통은 계속될 것임은
확실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좌충우돌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힘겹게 쌓아온 글 쓰는 직장인이라는
내 캐릭터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종류는 다르지만,
나와 같은 도전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가슴속에서 불타는 열망이 있다면
반드시 시도해 보시라.
그러한 열망은 우연히 지나갈 수도 있으니
주변을 잘 살펴보시라.
그러다 보면 그러한 열망의 한 조각이
반드시 당신의 손바닥 위에 놓여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올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당신이기에 당신이니깐
반드시 해낼 것이다.
그게 당신이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는 당신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