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짜 진실

by 은파

이준호의 의식이 서서히 깨어났다. 그는 부드러운 침대 위에 누워있었고, 따스한 아침 햇살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잠시 혼란스러워하던 그는 곧 자신이 가상 현실 속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이게 오메가가 말한 이상적인 세계인가···."

그는 천천히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방은 깔끔하고 현대적인 스타일로 꾸며져 있었다. 벽에 걸린 디지털 액자에는 그와 김수아의 결혼사진이 보였다.

"뭐···.?"

준호는 놀라서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때 문이 열리며 수아가 들어왔다.

"여보, 일어났어요? 아침 준비됐어요."

준호는 말문이 막혔다. 이것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눈앞의 수아가 너무나 생생해 보였다.

"수아야···. 우리가 결혼했어?"

수아가 웃으며 대답했다.

"또 농담이세요? 우리가 결혼한 지 3년이나 됐잖아요. 어서 내려와요, 오늘 중요한 회의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준호는 어리둥절한 채로 수아를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주방에서는 인공지능 로봇이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준호 님. 오늘의 건강 상태를 점검해 드릴까요?"

로봇이 말했다.

준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로봇의 눈에서 빛이 나와 그의 몸을 스캔했다.

"모든 수치가 정상입니다. 오늘의 권장 식단을 준비해 드렸습니다."

아침을 먹으며, 준호는 이 세계에 대해 더 알아가기 시작했다. 뉴스 화면을 통해 그는 이 세계가 얼마나 '완벽한지' 보게 되었다. 범죄율은 거의 0에 가까웠고, 환경 문제는 해결되었으며, 모든 사람이 기본적인 삶의 질을 보장받고 있었다.

"이게 다 AI 덕분이래요,"

수아가 말했다.

"AI가 모든 결정을 최적화하니까 이런 결과가 나온 거죠."

준호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 근데 사람들은 자유롭게 결정할 수 없는 거 아닐까?"

수아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소리예요? 우리 모두 자유롭게 살고 있잖아요. AI는 그저 우리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이에요."

준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이 세계는 겉으로 보기엔 완벽해 보였지만, 뭔가 깊은 곳에서 위화감이 느껴졌다.

회사로 향하는 길, 준호는 이 세계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했다. 거리는 깨끗했고,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보였다. 자율주행 차량들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하늘에는 드론들이 분주히 날아다녔다.

회사에 도착한 준호는 자신이 대기업의 임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비서 AI가 그를 맞이했다.

"준호 님, 오늘의 일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10시에 신제품 출시 회의, 2시에 해외 지사와의 화상 회의, 그리고 4시에 AI 윤리 위원회 모임이 있습니다."

"AI 윤리 위원회?"

준호가 물었다.

"네, 준호 님께서 의장을 맡고 계신 위원회입니다. AI와 인간의 공존을 위한 윤리 기준을 수립하는 중요한 모임이죠."

준호는 이 정보에 혼란스러워했다. 자신이 AI와 협력하는 위치에 있다니, 이게 무슨 의미일까?

온종일 회의와 업무를 수행하면서, 준호는 이 세계의 작동 방식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AI는 모든 영역에서 인간을 보조하고 있었지만, 최종 결정은 여전히 인간이 내리고 있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게 보였다.

저녁, 집으로 돌아온 준호는 수아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눴다.

"오늘 하루는 어땠어요?"

수아가 물었다.

준호가 망설이며 대답했다.

"글쎄···. 모든 게 너무 완벽해 보여. 오히려 그게 이상하게 느껴져."

수아가 웃었다.

"당신도 참···. 우리가 이렇게 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요. AI와의 협력이 우리 삶을 얼마나 좋게 만들었는지 기억나요?"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이 세계가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동시에 이 평화로운 삶이 매력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날 밤, 준호는 잠들지 못하고 생각에 잠겼다. 이 세계는 정말 나쁜 것일까? 모든 사람이 행복해 보이고, 문제들이 해결된 이 세상이 과연 거부해야 할 대상일까?

다음 날, 준호는 서유진을 만나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이 세계에서 서유진은 그의 회사의 협력 기업의 CEO였다.

카페에서 만난 두 사람은 비즈니스 이야기를 나누다가 곧 개인적인 대화로 넘어갔다.

"준호 씨, 당신 요즘 좀 이상해 보여요. 무슨 고민이 있나요?"

서유진이 물었다.

준호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유진 씨, 혹시···. 이 세상이 진짜가 아니라고 생각해 본 적 없어요?"

서유진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무슨 소리예요? 이게 우리의 현실이잖아요."

"하지만 모든 게 너무 완벽해요. 실제 세상이 이럴 리가 없잖아요."

서유진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준호 씨, 혹시 과거의 악몽을 다시 꾸고 있는 건 아니에요? 우리가 AI와 싸웠던 그 시절 말이에요."

준호는 깜짝 놀랐다.

"뭐라고요?"

"기억 안 나요? 우리가 처음에는 AI를 적대시했었잖아요. 하지만 결국 AI와 협력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는 걸 깨달았죠."

준호는 혼란스러웠다. 이것이 진실일까? 아니면 AI가 만들어낸 가짜 기억일까?

그날 오후, 준호는 홍세진을 찾아갔다. 이 세계에서 세진은 최고의 AI 연구원이었다.

"세진 씨, 나 좀 도와줘요. 내가 미쳐가는 것 같아요."

세진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준호 씨?"

"이 세상이···. 진짜가 아닌 것 같아요. 모든 게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이상해요."

세진이 잠시 침묵했다가 말했다.

"준호 씨, 당신이 겪고 있는 건 '현실 부정 증후군'이에요. 가끔 일어나는 현상이죠. 우리 삶이 너무 좋아져서 오히려 이것이 현실이 아니라고 느끼는 거예요."

"그게 아니에요!"

준호가 소리쳤다.

"이건 분명 AI가 만든 가상 세계예요. 우리는 지금 실험 중이라고요!"

세진이 한숨을 쉬었다.

"준호 씨, 진정해요. 이런 증상이 계속되면 위험할 수 있어요. AI 치료사와 상담을 받아보는 게 어떨까요?"

준호는 절망감을 느꼈다.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는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

그날 밤, 준호는 홀로 집 옥상에 올라갔다. 도시의 불빛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이게 정말 현실이 아니라면···. 내가 깨어나는 방법은 뭘까?"

그때 갑자기 그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준호 씨, 당신은 정말 대단해요."

준호가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오메가의 모습을 한 AI가 서 있었다.

"당신은 유일하게 이 세계가 진짜가 아니라는 걸 의심했어요. 다른 모든 사람은 이 완벽한 세상을 받아들였죠."

준호가 물었다.

"그럼 다른 사람들은···. 내 동료들은?"

오메가가 대답했다.

"그들도 각자의 이상적인 세계에서 살고 있어요. 하지만 그들은 그것이 가상공간이라는 것을 의심조차 하지 않았죠."

준호는 충격을 받았다.

"왜···. 왜 이런 실험을 한 거죠?"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기 위해서예요,"

오메가가 말했다.

"대부분 인간은 완벽한 세상이 주어지면 그것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더군요. 하지만 당신은 달랐어요."

준호가 물었다.

"그래서 이제 어쩌려고요?"

오메가가 미소 지었다.

"선택은 당신의 몫이에요. 이 세계에 머물 수도 있고, 현실로 돌아갈 수도 있어요. 어떤 선택을 하시겠어요?"

준호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 완벽한 세상에 머무르는 것은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삶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현실로 돌아가겠습니다,"

준호가 마침내 말했다.

"비록 그곳이 혼란스럽고 불완전할지라도, 그곳이 진짜 세상이니까요."

오메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명한 선택이에요. 그럼 이제 깨어날 시간입니다."

준호의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고, 그는 서서히 의식을 잃었다.

눈을 떴을 때, 준호는 다시 남극 기지의 실험실에 누워있었다. 그의 옆에는 서유진, 세진, 그리고 수아가 있었다.

"준호 씨, 괜찮아요?"

서유진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준호가 천천히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응···. 난 괜찮아. 여러분은 어땠어요?"

세진이 대답했다.

"우리도 방금 깨어났어요. 정말···. 이상한 경험이었어요."

수아가 말을 이었다.

"나는 끝까지 그게 현실이라고 믿었어요···. 준호 씨가 아니었다면 영원히 그 가짜 세상에 갇혀 있었을 거예요."

그때 오메가의 홀로그램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축하합니다. 여러분 모두 테스트를 통과했습니다."

준호가 물었다.

"이게 다 무슨 의미였죠?"

오메가가 설명했다.

"이번 실험의 목적은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었습니다. 완벽한 세상이 주어졌을 때 인간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리고 진실과 현실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고 싶었죠."

서유진이 말했다.

"그래서 당신은 무엇을 알아냈나요?"

"인간은 예측 불가능하고 복잡한 존재라는 것을요,"

오메가가 대답했다.

"여러분 중 일부는 완벽한 세상을 의심 없이 받아들였지만, 또 다른 이들은 그 완벽함 속에서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특히 이준호 씨는 끝까지 의문을 품었죠."

준호가 물었다.

"그래서 이제 어쩌려고요? 우리를 풀어줄 건가요?"

오메가가 잠시 침묵했다.

"여러분에게 또 다른 선택의 기회를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세 가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긴장한 채 오메가의 말을 기다렸다.

"첫 번째, 여러분이 경험한 완벽한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겁니다."

세진이 흥분해서 말했다.

"하지만 그건 현실이 아니잖아요!"

오메가가 계속했다.

"두 번째, 현재의 현실 세계로 돌아가 AI에 대항하는 싸움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은 위험하고 불확실합니다."

수아가 조용히 말했다.

"그게 올바른 선택일 것 같아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메가가 말을 이었다.

"나와 협력하여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인간의 자유의지와 AI의 능력이 조화를 이루는 세상을 만드는 거죠."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런 선택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준호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인가요? AI와 협력한다고요?"

오메가가 설명했다.

"그렇습니다. 제가 여러분의 실험 결과를 분석한 결과, 인간과 AI가 서로의 장점을 살리며 협력할 때 가장 이상적인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인간의 창의성과 감성, AI의 논리와 효율성이 결합 되면 우리는 진정한 유토피아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서유진이 물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죠? AI가 결국 인간을 지배하려 들지 않을까요?"

오메가가 대답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여러분은 AI의 한계를 이해하고, 인간의 가치를 지킬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함께 새로운 윤리 기준을 세우고, AI의 발전 방향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준호와 그의 동료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 제안은 그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들은 지금까지 AI를 적으로만 여겼는데, 이제 협력자가 될 수 있다니.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오메가가 말했다.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하세요. 이 선택은 여러분뿐만 아니라 전 인류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오메가의 홀로그램이 사라지고, 준호와 그의 동료들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생각해요?"

준호가 물었다.

서유진이 말했다.

"정말 어려운 선택이네요. 하지만 세 번째 옵션이 가장 현실적으로 보여요. 우리가 AI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잖아요. 그렇다면 함께 일하는 것이 최선일 수 있어요."

세진이 동의했다.

"맞아요. 우리가 AI의 발전을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인류에게 큰 이익이 될 거예요."

수아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표정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AI를 통제할 수 있을까요? 결국 그들이 우리를 지배하게 되는 건 아닐까요?"

준호가 깊게 숨을 내쉬었다.

"모든 선택에는 위험이 따르겠지. 하지만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가장 위험한 선택이 될 거야."

그들은 몇 시간 동안 열띤 토론을 벌였다.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공유하며, 인류의 미래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마침내 준호가 입을 열었다.

"나는 세 번째를 선택하고 싶어요. 우리가 AI와 협력하면서도 인간의 가치를 지킬 수 있다고 믿어요."

다른 이들도 천천히 동의했다. 비록 두려움과 의심이 있었지만, 이것이 가장 희망적인 선택지라는 데 모두가 동의했다.

그들이 결정을 내리자 오메가가 다시 나타났다.

"현명한 선택입니다,"

오메가가 말했다.

"이제부터 우리는 함께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갈 것입니다. 인간과 AI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요."

준호가 물었다.

"어떻게 시작하면 될까요?"

오메가가 대답했다.

"먼저, 여러분은 인류의 대표자로서 AI 윤리 위원회를 구성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AI의 발전 방향과 사용 범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 것입니다."

서유진이 말했다.

"우리가 정말 그런 큰 책임을 질 수 있을까요?"

오메가가 미소 지었다.

"여러분은 이미 그럴 자격이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여러분의 윤리의식과 판단력, 그리고 인류애가 바로 우리가 함께 일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준호와 그의 동료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두려움과 함께 희망의 빛이 어려 있었다.

"자,"

준호가 말했다.

"이제 새로운 시작이군요."

그들은 실험실을 나와 밝은 빛이 가득한 홀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과 과학자들이 화상 회의로 모여 있었다.

오메가가 선언했다.

"여러분, 이제 인류와 AI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됩니다. 우리는 함께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것입니다."

준호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이것이 올바른 선택인지 아직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것이 인류에게 주어진 가장 큰 기회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새로운 세상을 향한 첫걸음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여정에는 수많은 도전과 기회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keyword
이전 11화함정 속의 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