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남겨짐

by 은파
인간은 필연적으로 홀로 남겨진 존재다.


도시의 깊은 밤하늘에 별들이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할 때, 나는 작고 아늑한 서재의 차가운 창가에 몸을 기대고 조용히 서 있다. 번잡한 거리의 소음과 현란한 네온 불빛이 멀리서 은은하게 다가오지만, 방 안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기만 하다. 이 고요한 순간, 갑자기 깊고 진한 고독감에 완전히 휩싸였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의 날카로운 말이 불현듯 내 머릿속을 예리하게 스쳐 지나갔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존재다." 이 심오한 말이 주는 중압감에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이 막혀오기도 한다.

분주한 아침부터 지친 밤까지 쉴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우리는 종종 이 냉혹한 진리를 잠시 망각하고 살아간다. 직장 동료들과 함께 웃고 떠들다가 퇴근 후 오랜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담소를 나누는 그런 순간에는 마치 내가 누군가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달콤한 착각에 빠져든다. 하지만 이렇게 홀로 적막한 밤을 고요히 맞이할 때면, 그 모든 것이 얼마나 허망하고 일시적인 위안에 불과했는지 처절하게 깨닫게 된다.

나는 전지전능한 신에 의해 특별히 창조되지 않았다. 또한 미리 존재하는 본질이나 절대적인 가치 체계에 따라 만들어진 존재도 아니다. 그저 아무런 이유 없이 이 광활한 세상에 우연히 내던져진 존재일 뿐이다. 이 냉혹한 사실을 온전히 인식할 때마다, 나는 한편으로는 무거운 실존적 책임감을 강하게 느낀다. 내 삶의 모든 선택과 그로 인한 결과는 오롯이 나의 몫이기 때문이다.

북적이는 출근길 버스에 지친 몸을 싣고 있을 때도, 긴장감 넘치는 회의실에서 동료들과 열띤 토론을 진지하게 벌일 때도, 짧은 점심시간에 주변 사람들과 가벼운 담소를 나눌 때도, 사실 나는 철저히 혼자만의 고독한 섬에 갇혀 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닫힌 의식 세계 안에 완전히 갇혀 있으며, 이 세상 그 누구도 내면의 가장 깊고 어두운 곳을 완벽하게는 이해할 수는 없다. 이것이야말로 사르트르가 강조했던 인간의 근원적 '홀로 남겨짐'의 가장 본질적인 의미일 것이다.

때로는 이런 실존적 고독감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끊임없이 SNS에 열중하거나, 쉴 새 없이 누군가를 만나려 안간힘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은 마치 바닷가에서 어린아이가 모래성을 정성껏 쌓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잠시 일시적인 위안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은 거대한 파도에 쉽게 쓸려 사라질 뿐이다. 진정한 해답은 이 피할 수 없는 홀로 남겨짐의 실존적 조건을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그 깊은 고독 속에서 나만의 고유한 의미를 끊임없이 찾아가는 길뿐이다.

차가운 사무실의 밝은 형광등 아래에서, 끝없이 업데이트되는 컴퓨터 화면을 집중해서 응시하며 복잡한 일에 완전히 몰두할 때, 나는 종종 이런 근본적인 생각의 늪에 깊이 빠져든다. 내가 매일 반복해서 하고 있는 이 모든 일들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회사나 사회가 정해준 목표를 향해 맹목적으로 달리고 있지만, 그 목표 자체가 과연 나의 것인가? 이러한 무거운 의문들은 마치 예고 없이 닥쳐오는 거대한 파도처럼 때때로 나를 덮치곤 한다.

하지만 바로 그 혼란스러운 순간, 문득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런 깊은 의문을 품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역설적으로 나의 절대적 자유를 명확하게 증명하는 것이라고. 내가 기존의 가치에 의문을 품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설 수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내가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고독한 존재로서 가진 특별한 특권이자 동시에 무거운 책임이다.

퇴근 후 사람들로 붐비는 혼잡한 버스 안에서, 문득 주위의 무표정한 얼굴들을 천천히 둘러본다. 모든 사람이 각자만의 닫힌 세계에 깊이 빠져 있다. 작은 스마트폰 화면을 집중해서 들여다보거나, 의미 없이 먼 허공을 멍하니 응시하거나, 혹은 두꺼운 책에 몰입해 있거나. 겉으로는 모두가 같은 공간에 함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우리는 모두가 철저히 각자의 고독 속에 갇혀 있다. 이러한 깨달음은 때로는 감당하기 힘든 고통으로 다가오지만, 동시에 이상하게도 묘한 위안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모두 같은 실존적 조건 아래 놓여 있다는 사실이.

사르트르가 평생을 통해 강조했던 것처럼, 나는 결국 내가 스스로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 냉철한 사실은 때로는 두렵고 부담스럽게 다가오지만, 동시에 무한한 가능성과 자유를 의미하기도 한다. 앞으로 나는 어떤 존재가 되어갈 것인가? 그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은 오직 나만이 알 수 있고, 나만이 주체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

밤이 점점 더 깊어질수록, 이 피할 수 없는 실존적 고독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조용히 껴안는다. 이것이 바로 나의 가장 본질적인 조건이며, 절대적 자유이자 동시에 무거운 책임이다. 내일 아침이 밝으면,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복잡한 세상을 향해 한 걸음 내디딜 것이다. 비록 근본적으로 홀로 남겨진 고독한 존재로서, 하지만 동시에 무한한 가능성과 창조적 자유를 품은 채로. 그리고 그 험난한 여정 속에서, 끊임없이 나 자신을 새롭게 만들어갈 것이다.

고요한 밤, 창밖의 별빛이 조금 더 선명해지는 듯하다. 이제 편안한 마음으로 침대에 몸을 맡긴다. 홀로 남겨진 실존의 무게를 온전히 받아들이며, 내일을 위한 새로운 힘을 모으기 위해. 사르트르의 말이 마지막으로 내 귓가에 맴돌았다. "인간은 자신이 만들어가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의 무게와 함께 고요한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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