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심연

by 은파
인간은 절망 속에서도 자유롭다.


나는 회사 옥상에 올라왔다. 도심의 빽빽하게 들어선 빌딩 숲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내 인생의 깊은 좌절을 되새겨보았다. 직장 생활 내내 공들여 쌓아온 내 평판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렸다. 그동안 온 마음을 다해 쏟아부었던 시간과 열정, 그리고 소중히 품어왔던 꿈들. 이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처음에는 뼈저린 억울함이 앞섰다. 나는 정말로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지독한 오해가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처음에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가 온몸을 뒤덮었다. 그리고 깊은 슬픔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하지만 지금 가슴 깊이 느끼는 이 감정은 그 어떤 단어로도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더욱 깊고 본질적인 무언가다. 사르트르가 말했던 '절망'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문득 머릿속에 사르트르의 명언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인간은 홀로 남겨졌고, 따라서 인간에게는 그가 의지하고 기댈 그 어떤 본질이나 가치도 주어져 있지 않다." 이 문장이 지금의 나를 정확히 꿰뚫어 설명하고 있는 것만 같다. 정말로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느낌이다. 의지할 곳도, 기댈 곳도 없이 완전한 고독 속에 던져진 것 같다.

하늘을 천천히 올려다본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하늘과 무심하게 흘러가는 하얀 구름. 그들은 아무런 의미도 목적도 없이 그저 거기에 존재할 뿐이다. 마치 나의 공허한 존재처럼. 문득 이 모든 인생살이가 근본적으로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도대체 왜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왔을까? 어떤 숭고한 목적을 위해? 어떤 영원한 가치를 위해? "절망은 우리를 무위로 이끄는 것이 아니다"라는 구절을 철학책에서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심오한 말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절망. 그것은 단순한 일시적 감정이 아니다. 사르트르가 역설했듯, 그것은 인간 실존에 구조적으로 깊이 연관된 것이다. 우리가 이 무심한 세상에 내던져진 그 순간부터 우리는 이미 절망 속에 던져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미리 정해진 본질이나 절대적 가치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깊은 절망은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는 걸까?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옥상의 가장자리에 조심스럽게 서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수많은 사람들이 개미처럼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저들도 과연 나와 같은 이 깊은 절망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을까? 아니면 그들은 이 근본적인 진실을 전혀 모른 채 무의미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걸까?

그때 번개처럼 깨달음이 찾아왔다. 우리에게 미리 주어진 본질이나 가치가 없다는 사실은, 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스스로 그것을 선택하고 창조해 나갈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이 깨달음은 마치 어둠에 잠긴 깊은 터널 끝에서 보이는 한 줄기 희망의 빛과도 같았다. 나는 잠시 인간관계에서 쓰라린 실패를 맛보았다. 물론 실패라기보다는 지독하고 억울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내 인생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나는 여전히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고, 그 진정한 선택을 통해 나 자신을 새롭게 정의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실존적 자유가 아닐까?

사르트르의 깊은 통찰이 다시 한번 내 마음속에 울려 퍼진다. "인간은 오로지 인간 자신의 의지에 좌우되는 것에만 기댈 수 있다." 그렇다. 나는 오직 나의 선택과 의지에만 기댈 수 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천천히 옥상에서 내려왔다. 내 안의 절망은 여전히 짙게 남아 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족쇄가 아니라, 오히려 나를 행동하게 만드는 강력한 원동력이 될 것이다.

사무실로 돌아와 익숙한 책상에 앉았다. 동료들은 여전히 바쁘게 각자의 일에 몰두하고 있다. 그들도 분명 각자의 절망과 고통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고 있겠지. 하지만 우리는 그 깊은 절망 속에서도 계속해서 선택하고, 행동하고, 의미를 만들며 살아간다. 나는 이 지독한 오해를 풀기 위해 물러서지 않고 당당하게 직접 맞서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물론 완전히 실패할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뜻밖에 성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내가 스스로 선택했다는 것, 그리고 그 주체적인 선택을 통해 나 자신을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퇴근 후 상념의 밤이 점점 더 깊어질수록, 나는 이 새로운 실존적 깨달음에 점점 더 익숙해졌다. 절망은 여전히 나와 함께 내 곁에 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나를 두렵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나를 더 강인하게 만들어 주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반짝이는 도시의 불빛들을 바라보며, 나는 깊이 생각했다. 만약 모든 사람이 이 역설적인 절망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살아간다면, 우리는 과연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을까?

내일이 밝아오면, 나는 다시 한번 이 절망과 자유가 공존하는 세계로 용기 있게 나아갈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분명히 알고 있다. 이 절망이야말로 내 자유의 근원이며, 나를 진정한 나로 만들어 주는 강력한 힘이라는 것을. 밤이 점점 더 깊어지면서, 새롭게 태어난 나를 차분히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절망 속에서 조용히 피어나는 희망. 그것은 두려움인 동시에 설렘 가득한 기대였다. 내일은 어떤 중요한 선택을 하게 될까? 어떤 더 나은 나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이러한 깊은 질문들과 함께, 나는 천천히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꿈속에서도 나는 계속해서 자유롭게 선택하고, 행동하고, 나 자신을 만들어 나갔다. 이것이 바로 사르트르가 말했던 진정한 실존적 삶의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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