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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거 Dec 29. 2016

꿈의 역사 #4

화성의 땅을 사기로 결심하다

웃음과 행복의 상관관계에 대해 설명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은 단연 이것이다.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하다."


나는 매일 웃는다. 아무리 보수적으로 생각해도 하루에 평균 4시간 동안 내 얼굴은 미소가 가득이다. 일과를 털어내며 샤워부스에 들어서면 늘 마주하는 거울에게 미소를 평가받았다. 그렇게 수정된 미소는 남들이 충분히 행복감을 느낄 정도로 행복해보였고, 이제는 어색한 미소가 어색할 따름이다. 내 미소는 행복해졌는데 난 행복한 미소를 갖기까지 행복하지 못 했고 여전히 행복하지 못 하다. 이제서야 내가 행복한 지에 대해 자문한다면, 난 행복하지 않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을 마주한다. 대부분 일을 하며 마주하는 사람들이며, 내 일터가 유명 관광지에 있는 까닭에 마주하는 얼굴도 가지각색이다. 인종은 말할 것도 없으며, 국적도 생김새도 언어도 미소도 웃음소리도 다양하다. 그러한 많은 사람들 중 일부는 내 미소를 칭찬한다. 참으로 멋진 미소라고. 웃는 것도 일의 일부인 나에게 그런 칭찬을 응대하는 것도 일이다. 우리 사장이 들으면 일 잘하고 있다고 할 만한 시시한 일일 뿐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웃음과 행복과 내가 일을 하며 무슨 이야기를 듣는지 이렇게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는 까닭은 내가 누구보다 많이 웃으면서도 결코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나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에서 일한다. 꽤 근사한 복장을 하고선 품위와 교양을 갖추고 지구 곳곳에서 오는 여행객을 맞는다. 그들은 관광안내 책자, 흔한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가봐야 할 00곳' 과 같은), 소셜미디어, 잡지, 온라인에 흘러다니는 사진에서 본 그대로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크게 행복해 한다. 혹은 그렇게 보인다. 꿈에 그리던 곳이었으니 그럴만도 하다. 그러나 그들의 꿈 속 그곳에 사는 나에게 이 삶은 꿈이 아닌 현실이다. 그들이 이곳으로 떠나오기 전 지칠대로 지쳐버린 그 현실. 그들의 꿈과 내 현실이 겹치는 이 곳에서 내가 읽었던 기사 속 웃음과 행복의 상관관계는 여지없이 뒤틀린다. 이따금 그들은 내게 함께 그 행복감에 취하기를 권하지만 뭐랄까, 그들이 권하는 술은 아무리 마셔도 취기가 오르지 않는다. 


바다 위에서 하룻밤을 보냈더랬다. 일상을 벗어나 있었고 나에게도 여행이었다. 하늘은 맑았고 별들도 제법 보였다. 내가 하늘을 보던 곳에서 한 층 아래의 갑판에선 서로의 일상과 꿈터의 행복을 나누는 안락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고, 그들의 행복감 만큼이나 공기도 평화로웠다.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까.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것 같지만 여전히 나는 내가 어찌 행복해 지는 지 알 지 못 했다. 사랑한다고 생각할 때는 행복했던 것 같아 사랑을 좇았지만 치기어린 사랑은 금새 절벽에 다다랐을 뿐이었다. 다가갈 수록 멀어졌고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상처 뿐이었다. 행복은 바라 볼 수만 있고 곁에 둘 수 없는 것인가 하고 생각하며 사랑은 그만두었다. 수많은 근사한 사람들이 다양한 언어, 비언어, 반언어를 동원해 왔지만 그 누구도 내 행복의 문을 열 열쇠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 


얼굴에 가득히 행복한 미소를 띄우며 작별 인사를 하던 여행객들을 보며 이제는 나 빼고 모두가 행복하다는 박탈감 마저 함께 보내버렸다. 모든 사람의 행복이 존재하는 이곳에 내 행복은 부재할 수도 있다고, 그럴 수도 있다고 인정해 버린 탓이다. 만인의 행복이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다는 것을 느꼈을 때 내가 조금은 컸다고 느꼈다. 스스로의 불행, 부족함 등 자신의 어두운 면을 인정하는 것이 대단히 어려웠던 탓이었으니까. 


그러나, 아직 내 안의 막연한 행복에 대한 기대감은 여전히 내가 젊다는 반증이리라. 사랑은 그만두었다고 하지만서도 근사한 사람을 보며 끊임 없이 행복한 사랑을 상상하는 나는 이율배반적이다. 여전히 사랑은 행복을 가져다 줄 것만 같은가보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위대한 선생, 아니 위대한 선장은 현실을 소중히 하며 삶의 정수를 만끽하라고 했다. 삶의 정수는 행복을 가져다 줄까. 낭만과 꿈을 거세 당해야 했던 영화 속 아이들은 위대한 선장의 이탈을 슬퍼했다. 꿈꾸는 것이 이뤄지는 현실은 행복할까. 내가 사람들의 꿈이 현실이 되는 이곳에 머무는 까닭은 어쩌면 꿈을 좇았기 때문일까. 내 행복도 이뤄질까 하는 바람. 내 꿈이 이곳에 없는 한 여기가 천국이라도 나에게 행복은 오지 않겠지. 


타인의 행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내 행복이 보장되지 않음을 여실히 느낀다. 화성의 땅을 판다는 광고를 어디서 봤는지 다시금 기억을 살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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