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거 Jul 04. 2021

밤, 구름, 눅눅한 하늘

# 1. 너부터

"창문을 열었는데 하늘엔 구름이 잔뜩이고 공기는 너무 습하다."


지난 밤부터 새벽사이는 오로지 비와 바람으로 채워졌을 뿐이다. 사방이 밝아지긴 했으나, 거리에 분주한 사람과 차가 아니면 아침이라고 하기엔 어색하게 내 하루는 시작됐다. 삶은 달걀을 퍽퍽하게 밀어넣고선 하루를 시작한다. 딱히 정해진 일과가 없는 내가 하루를 시작한다는 건 뭔가 이상하다. 그냥 나는 남들이 굴리는 세상에 딸려 굴러가는 어색한 인생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분주하고 점심이라도 먹으려는지 이내 거리로 나와 어디론가 들어간다. 그제서야 지금이 정오쯤 됐다는 것을 알아챈다. 딱히 한 것이 없으니 딱히 배 고플일이 없는 내게 삼시세끼는 챙겨도 그만 안 챙겨도 그만인 그런 것이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든 나는 나만의 일상을 보내고 있다. 


세상은 짙게 어둡다. 열린 창문으로 밤이 나를 본다. 밤의 낯 위로 허연 구름이 지난다. 눈이라고 할 건 없고 별도 달도 안 보이고 그저 스윽 지나가는 구름 뿐이다. 오히려 그런 탓에 밤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다. 아마 무어라도 반짝이는 것이 있었다면 결코 제대로 응시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름 내내 비가 내린 탓인지 하늘이 눅눅하다. 


집 밖으로 나섰다. 왠지 그 때는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낮에 나가서 다른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이 무서운 건 아닌데, 왠지 그냥 문득 나가고 싶어졌다. 나가서 산책을 할 생각으로 나섰다. 


동네 여기저기서 몰려든 사람들로 공원은 꽤 붐빈다. 늦은 시간이지만 선선한 바람 탓인지 그들은 제각각의 발걸음으로 밤공기를 가른다. 나는 왜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들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그냥 그렇게 보인다. 열심히 손을 휘적거리며 성큼성큼 걷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뛰고, 어떤 이들은 삼삼오오 재잘거리며 걷고. 나도 다른 사람이 보기엔 뭔가 있어보일지 몰라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나는 그냥 산책일 뿐이다. 


나 말고 모든 사람들이 열심히 굴리는 세상에 어떨결에 올라타 굴러가는 내게는 이 모든 것이 딱히 의미가 있지는 않다. 아마 저 호수, 호숫가의 벤치, 벤치 옆의 가로수들, 그 옆의 풀 숲 그리고 풀벌레들, 딱 그것들이 갖는 만큼의 의미가 내게 있을 뿐이다. 곧 끝날 오늘과 이내 시작될 내일이 내게는 특별할 것이 없는 흘러가는 시내와 같다. 나는 그저 눅눅한 하늘 아래 흘러가는 세상에 얼떨결에 올라탄 무엇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