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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거 Jul 04. 2021

이리로 오라 한다.

# 2.

나는 작고 세상은 정말 정말 넓다. 가끔 전혀 예상치 못한 인연을 우연히 마주치며 좁은 세상이라 하기도 하지만, 세상은 넓은 게 맞다. 아, 걸어서 이 세상을 다 보기엔 너무 넓다고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초등학생 때는 그냥 우리 동네 아이들이 모였다. 다들 같은 동네에 살았고 어떤 집에 사는지 뻔했다. 심지어 같은 아파트에 넓이도 같다면, 어떤 집은 우리 집에 온 것 같은 착각을 잠시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던 세상은 중학생이 되며 조금 더 넓어졌다. 같은 동이 아닌, 다른 동에서 온 친구들이 있었고 심지어 학교에 갈 때 버스를 타야 했다. 다른 동네에 사는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 집에 오면 하늘이 어둑해지는 것은 예사였다. 그러다 고등학생이 되자 내가 사는 도시 절반의 지역에 친구가 생겼다.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도시의 경계를 벗어나는 것은 언제인지도 모르게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언제고 익숙한 곳을 벗어나 새로운 곳을 탐험하고 싶던 내게 세상이 넓어지는 것과 넓어진 세상을 누비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대학생이 되자, 입때껏 겪은 세상의 확장은 지금까지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전국에서 온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었고 해외에서 온 사람을 보는 것도 어렵지 않았으며 나 또한 바다를 건너 전혀 다른 세상을 경험할 수 있었다. 게다가 지식의 확장으로 지구를 벗어나는 세상 또한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대학교에 다니며 알게 된 선배와 동기가 살고 있는 우리 집에선 좀 먼 곳을 다녀왔다. 산과 강을 지나야 하는 걸어서는 며칠이 걸릴지 모를 곳이었다. 버스에 타고 출발도 하기 전부터 스마트폰 화면을 보며 화면 너머 저기에 있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것을 보았다. 역시 내가 있는 곳과는 다른 새롭고 흥미로운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내 버스가 구불구불한 데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는 구간에 접어들자 더는 손바닥만 한 화면을 들여다 볼 수가 없었다. 


세상은 화창했다. 싱그럽고 빽빽한 숲의 짙고 깊은 초록이 좋았다. 이따금 산허리를 가로지르는 계곡과 강을 따라 시간은 묵묵히 갈 길을 갈 뿐이었다. 내가 보던 손바닥만 한 화면에서 눈을 떼자 도저히 한 눈에는 담을 수 없는 세상이 몰려왔다. 그 자리에서 본 그 세상은 결코 스마트폰의 화면에 담을 수 없는 것이었다. 


세상은 나를 독려한다. 고개를 들고 마땅히 나아갈 곳을 향해 거침없이 오라 한다. 나는 아직 모르지만 언젠가는 도달할 곳이 나를 오라 한다. 깊고 넓은 강과 짙고 어두운 숲을 지날 것을 강요한다. 나에게 주어진 세상의 크기는 존재하는 이 세상 전체의 크기와 같다. 그러나 얼마큼 그 세상을 누비고 다닐지는 내가 결정할 것이다. 기꺼이 더 넓은 세상을 보고자 했고 앞으로도 모험을 두려워하지는 않을 것 같다. 세상은 내 인식을 넘어서는 곳에서조차 나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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