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거 Jul 18. 2021

친구와 고양이

# 3

    고양이가 까슬까슬한 혀를 날름거리며 팔뚝을 핥을 때의 기분은 묘했다. 머리를 이리저리로 비비며 어쩌다가 축축한 코가 닿는 것도 낯설다. 혀도 코도 축축하지만 딱히 물기가 남지 않는 것이 이상한 것은 물론이고, 사람 이외의 생물과 살갗을 맞대는 것도 나로서는 매우 생경할 뿐이다. 싫지 않다고 하기에는 사뭇 좋다.


    무엇보다 이상한 점은 세상이 녀석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잠만 자도 온통 눈길은 쏠려있고 돌아다니기 시작하면 사람들의 눈은 고양이가 사냥(놀이)에 몰두할 때보다 더 빛난다. 이내 다시 모든 것이 허무한 것처럼 본인의 자리에 동그랗게 몸을 말고 눈을 감으면 마치 세상도 잠잠하다. 무심히 허공을 휘젓는 꼬리에 시간이 녹아내린다. 모든 것은 시간의 흐름에 귀퉁이부터 투박하게 닳는다. 사람도 기억도 감정도 심지어 플라스틱도 닳는 것은 물론이고, 적어도 내게 한 번도 우호적이지 않았다. 그러한 연유로 나는 그 꼬리를 갖고 싶다.


    관심이 필요할 때만 한 발자국 떨어진 곳에 우두커니 서서는 눈을 동그랗게 뜨는 녀석이 언젠가부터 너무 얄밉다. 아무리 손짓을 해도 절대로 오는 법이 없는 녀석이 이럴 때는 무릎 위로 책상 위로 펄쩍 뛰어올라 앉는다. 얄미운 마음에 투박하게 얼굴이며 여기저기를 쓰다듬으면 깨물려고 입을 벌려대는 모습이 오래된 친구와 다를 바가 없다. 이빨도 날카로운 녀석이 결코 세게 물지는 않는 탓이다. 


    이사한 집으로 오래된 친구를 불러서 밥을 먹었다. 오랜만에 실력 발휘 좀 했다. 장도 내가 보고 요리도 내가 했고 그 녀석에게는 아무것도 할 일을 주지 않았다. 얄미운 구석이 있지만 이 녀석도 나 같은 녀석이 마냥 좋지만은 않을 게 분명할 터인데도 친구라고 만나고 있는 것을 보면 괜히 우리가 여전히 친구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 납득이 된다. 


    우린 별로 닮은 구석이 없다. 노는 것을 좋아하는 것만 빼면 어디 하나 비슷한 게 없는데 신기하다. 하긴, 고양이는 털 뭉치인 데다 체온마저도 나보다 높고 말도 안 통하는데 서로 아쉬워하는 것을 보면 우리의 우정도 이해는 된다. 그래도 얌체 털 뭉치보다 친구랑 더 오래오래 나랑 투닥이는 상상을 하면 갑갑하면서도 야속하게 흐를 시간이 그렇게 싫지만은 않을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리로 오라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