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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거 Aug 22. 2021

시간을 보다가

#4

    밤이라는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주위는 조용했는데, 사실은 파도에 부서지는 바위 소리 탓에 아무것도 듣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오히려 거대한 소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적어도 잠시 동안은 격리될 수 있었으니까. 선명하게 보인 것은 시간이다. 파도를 마주한 바위의 얼굴에는 달빛이 쏟아지고, 그 어두운 와중에도 분명하게 드러난 그림자로 인해 주름처럼 패인 시간의 흔적이 뚜렷하다. 시간은 어찌나 공평한지 사람이든 바위든 할 것 없이, 시간에 따라 주름을 새기는 것은 매한가지다. 다만 시간의 굴곡이 파이는데 걸리는 시간은 다소 차이가 있겠지.


    세상의 가장 위대한 영웅들도 잠과 시간을 극복할 수는 없다. 나약한 인간에게, 잠은 잊고자 하는 기억이 있을 ,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잠시  시간을 늦출 , 결코 잊게 해주지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시간은 매우 효과적이며 아무런 비용도 노력도 수반하지 않는다. 다만 괴로움이라는 부작용도 있으나, 어차피 사는 것은 괴로운 일이기에, 시간에게 괴로운 기억을 맡기는 것은  불평할 것도 없는 선택지이며, 냉정하게는 유일한 구원자이다. 부서지는 거품 아래 묻은 기억이 쌓여간다. 시간의 힘을 믿는 탓이다. 그렇게  기억을 아래에 묻는다. 마지막으로 파도를 마주하며 기억을 묻은 곳은 이름 모를 섬이 바라다 보이는 해안 모래사장이었다. 새벽이었고,   가장 추운 겨울이었다. 한겨울 바닷바람을 마주하는 것은 괴로웠으나, 기억을 가슴에 지니는 것에 비하면 훨씬 가벼운 일이다. 그리고 이번엔 위에 올라서서,  다른 시간의 정수인 달과 솟은 절벽을 바라볼  있었고, 평소와는 다른 위안까지도 얻은 몹시 은밀한 의식이었다.


    파도가 새겨 넣은 바위  주름은 우리네 얼굴에 새겨진 것보다 훨씬  깊다. 아무리 거대한 바위라 할지라도 어느  군데 성한  없이 멀쩡한 바위도 없다. 반드시 깨져서 흠집이 있고, 틈이 있으며 모난 곳은 반드시 부서져 닳는다. 해가 뜨고 달이지는 곳에서부터 끝없이 밀려오는 물결의 행진을 보는 언제나  위안이 되는 까닭은, 언젠가는  기억 또한 저렇게 닳으리라는 것을 의심할  없기 때문이다. 거대한 바위도  없이 닳고 부서져 모래사장이 되어버릴 처지인데, 끝없이 뭍을 탐하는 파도의 도전 아래 묻힌 인간의 기억은 버텨낼 재간이 없음이 분명하다. 지나고 나면 무엇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굽이친 강의 모래톱 조약돌은 누군가의 오래된 괴로움이다.  조약돌을 주워 빤히 바라보라, 어떤 종류의 미소든 혹은 한두 방울의 예쁜  눈물이 방울질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시간은 어디서나 보인다. 손톱이 자라고, 내일의 해가 뜨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것에서도 시간은 결코  모습을 감춘 적이 없다. 어디에나 있고 시간의 길은 차별하지 않으니 정의롭다고   있지만, 너무 냉정해서 이따금 속상하며,  무의미한 세상에서 그것 또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시간을 보기 시작한 이래, 만사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더니, 괜한 상처를 받을 일은 줄어들었으나 예상치 못한 설렘을 누리는 경우도 함께 사라졌다. 기회비용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무료해진 탓에 과거의 내가 그립기도 결코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간은 언제나  등을 떠밀 ,  한걸음도 뒷걸음질 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삶의 무의미함과 시간의 자비로움을 돌이켜보는 무료한 주말 오후가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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