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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거 Jan 01. 2024

꿈의 역사 #8

어리석음과 외로움에 대한 고백

저무는 한 해의 끝자락에서 뭉개 뭉개 떠오르는 것들을 정리하며 새해는, 그리고 몇 번일지 알 수 없으나 더 맞이할 것이라 감히 기대해 보는 희부연 미래는 어떠할지 적어보고자 한다.


먼저 나는 어리석음과 외로움에 대해 고백하고자 한다. 어리석음에 대해 고백하기로 작정하고 생각을 풀어내고자 하는 찰나,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그 누구도 내게 어리석을 것을 강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머리를 쓰다듬으며 착하다고 칭찬해 주시던 할아버지와 할머니, 짐짓 큰 잘못임에도 고함 없이 용서해 주시던 선생님, 늘 믿음과 응원을 보내주시는 부모님, 여러 서적의 작가와 지식인 등 30년이 넘도록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바로 서길 바라는 역사와, 과거와 현재의 사람들은 현명한 가르침을 넘치도록 주었다. 그러나, 홀로 고민하고 가르침에 믿음을 잃은 채 독단적인 결론을 내리며 그릇된 행동을 해온 것은 오로지 나로 인한 것이다. 누구에게도 그 어떤 것도 강요받고 싶어 하지 않았고 최선의 것이라도 강요받는다 싶으면 차선을 선택해 왔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아무도 강요하지 않는 어리석음을 취한 자신이 부끄럽다. 어리석은 결정이 빚어낸 온갖 결과들은 잘 드러나지 않지만 언제고 수치심을 일깨우는 낙인처럼 다양한 순간, 다양한 장소에서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나를 비웃는다. 


홀로라는 상태인 것은 동일하나, 홀로인 상태에 결핍이 있는지 여부가 외롭다와 고독하다를 가르는 차이일 것이다. 앞서 나는 외로움에 대해 고백한다 하였으므로, 지금의 내 홀로인 상태는 무언가 결핍되어 있다. 그러나 이 결핍은 새해의 시작을 마주하는 이 순간, 미래에 대한 희망을 나눌 누군가가 없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결핍은 다양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묵직한 탓에 이따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는 것조차 버거울 때가 있다. 아직 어느 것도 당당하게 내 이름으로 이룬 것이 없으며, 앞으로도 무엇조차 해낼 수 없을 것만 같은 절망감이 척추를 타고 뒷목을 감싸올라 똬리를 틀고 어깨를 짓누른다. 흉포한 절망감이란 놈에게 자칫 먹이라도 주는 날이면 망설임 틈 없이 목을 졸리게 된다. 희망의 상실이라는 단 하나의 결핍만을 소개하는 것으로도 악몽을 꿀 것만 같이 불길하다. 얼떨결에 주어진 삶이라는 것은 축복이기보다는, 여러 겹의 사회적, 도덕적 장치가 촘촘히 배치되어 중도포기조차 매우 어려운 생존이라는 이름이 붙은 과제다. 


이리도 어려운 과제는 정예 멤버와 함께 협동하더라도 어려울 텐데, 죄스러울 만큼 어리석은 탓에 혼자 꾸역꾸역 하고 있다. 누구 하나 도와주는 이가 없기에 어깨를 짓누르는 똬리가 정신이 아득할 정도로 목을 조를 때, 있는 힘껏 발버둥 치지 않으면 끝장이다. 외롭고 어리석은 이가 새해를 맞이하는 각오는 이러하며, 한 해의 시작이라는 시기적 특별함은 본인의 어리석음을 스스로 용서하고 괜찮다고 위로할 수 있기를 꿈꾸게 한다. 


방금 시작한 올 해의 끝이자, 마주할 새로운 해의 시작에서 용서와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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