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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거 Jul 26. 2015

사소함이 주는 즐거움

여기 저기서 들리는 한숨소리가 귓바퀴를 따라 빨려 들어온다. 저들은 서있는 지하철 바닥을 향해 한숨을 쏟아내 떨어뜨리지만 이상하게도 시선이 함께 떨어진다. 바닥을 치고 먼지처럼 피어오르는 그 매연 같은 소리들이 이내 열차칸에 가득 차고 내 귀로도 미끄러진다. 


지금은 저녁 8시 반쯤 됐다. 아직도 지하철엔 집으로 가는 사람들이 한 가득 이다. 사무실과 상업지역이 밀집한 곳의 역에선 여지없이 사람들이 꾸역꾸역 열차 안으로 밀려든다. 다들 피곤하리라. 아주 많이. 표정을 보면 대강 느낌이 온다. 


사람 표정만 보고서야 모든 것을 알 수 없지만 누구나 저런 표정들을 보면 오늘 하루가 그들에게 어땠을는지는 모르기가 어렵다. 쌀쌀해진 날씨 탓에 두꺼워진 겉옷을 걸친 저들은 추위를 털려는 듯, 하루의 고단함을 털려는 듯 바르르 떨기도 한다. 


어떤 이는 함께 집으로 가는 이와 함께 하루의 고단함과 그 고단함을 더 크게 만드는 무슨무슨 부장이야기를 하며 흑빛얼굴에 간신히 무거운 입꼬리를 올려보고, 어떤 이는 수화기 너머 누군가에게 하루 일과를 하소연하듯 이야기하고 어떤 이는 불편한 자리에서 불편한 사람들과 먹었던 비싼 음식이 거북한 듯 표정이 좋지 않다. 저들은 이런 맘 알리 없는 이 차갑고 말이 없는 이 쇳덩어리가 쇠로 된 차가운 궤도를 거침 없이 달려 자기가 머물 집으로 어서 데려다 주기만을 바랄 것이다. 


하루가 저물어갈 때쯤 저들의 눈꺼풀도 꽤나 저물어있는 듯 보이고 한숨처럼 무거운 발걸음이 내는 소리가 어둠으로 스며들어간다. 


창밖 도로 위 자동차들은 반쯤 감긴 듯한 눈을 하고 있다. 도로는 피곤해 보이는 차들로 가득하고 반쯤 감긴 눈을 한 차들은 빨간 빛의 꽁무니를 좇기에 여념이 없다. 가다 서기를 반복하고 신호등을 따라 이리저리로 제 갈길을 찾아가고 있다. 부쩍 기술이 발달한 요즘 기계는 어느 길이 가장 빠른 길이고 어느 길이 목적지까지 가는 가장 짧은 길인지를 알려주지만 어느 길이건 이미 차들이 가득한 도로에선 그저 빨간 꽁무니를 좇을 뿐이다.

 

차들은 이내 자기 집 앞 혹은 집과 가까운 주차장에 자리를 잡을 것이다. 네모 반듯하게 선이 그어진 곳에 잘 맞춰서 네모난 몸집을 그 안에 넣을 것이다. 


친구 녀석이 사는 집에 간 적이 있다. 지하주차장이 없는 그 구식 아파트는 넓은 주차장이 있었다. 친구 집은 그 아파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었다. 밤 11시 무렵 갔던 그 친구네 집 창 밖에 보이는 주차장엔 꽁무니에 불을 끄고 열을 식히는 피로가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그날도 지하철과 버스에서 시달리며 진을 뺀 나와 친구였다. 서울은 정말 차 갖고 다니면 힘들겠다는 투정을 늘어놓으면서도 집으로 오는 지하철과 버스에서 스마트폰을 가지고 올해 신차를 구경했고 소망했다. 


문득 그 때의 친구가 생각난다. 그 친구와 우리 집에서 2002 월드컵을 보며 먹었던, 어머니께서 삶아주시던 옥수수와 감자는 참 맛있었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참 멋졌고 히딩크는 대단했다. 우리나라가 우승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 아닌 걱정도 해볼 수 있었고 참 행복한 고민이었다. 비싼 티켓을 주고 현장에서 관람하지 않더라도 집에서 크지도 작지도 않은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옥수수와 감자로 감동을 씹는 그 때, 그 사소한 행복이 있었다. 


행복한가. 거창한 행복 앞에 옥수수와 감자는, 텔레비전 앞의 감동은 행복이 될 수 있나. 거창한 행복 앞에 매일 지하철과 버스를 타야만 하는 저들은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지하철과 버스에서 내려선 이들은 저마다 옥수수와 감자 그리고 텔레비전 앞의 감동이 있을 것이다. 집 앞 놀이터에서 연인이 퇴근하기만을 기다리며 손을 주머니에 쿡 찔러 넣고 손을 데우는 사람, 아장걸음의 아이가 눈에 선한 사람, 식탁 위 꽤 식어버린 찌개가 그리운 사람, 먼저 이부자리를 펴고 방을 데우고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낸 준비를 하는 사람 등등. 


저마다의 사소한 일들이 익어가는 것이 얼핏 얼핏 그들의 무거운 입꼬리 밑 그림자에 보인다. 오늘 아침도 힘내라며 손을 흔들어주고 문자메시지 보내주는 사소함이, 주말이면 함께 손잡고 공원을 걸을 사소함이, 둘러 앉아 밥술을 뜨는 사소함이 주는 즐거움과 행복에 쏟아진 한숨 위 시선을 집어 들어 창밖 너머로 던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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