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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치니 Feb 14. 2024

세바퀴

 산책코스 세바퀴 40분 2.5km 5천보.


 별 관심도 없고 운동신경도 그다지 발달하지 않은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일이 걷기다. (이걸 누가 운동이라고 쳐준다면 좋겠다.) 평소의 근면성실함과 다르게 운동 앞에서 한없이 게으른 내가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일. 웬만한 사람이 와도 누가누가 잘 걷나 붙어 보자고 할 만한 일.


 걸을 곳이 마땅히 없는 이곳에 와서 아파트 안을 빙글빙글 도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쿠아리움에 갇힌 돌고래가 스트레스로 인해 맴맴 돌기를 무한 반복하는 것도 아니고. 처음 여기 왔을 때 너무 움츠리고 있었기에 나는 한바퀴를 도는 것 조차 불편했다.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서 온 탓에 운동 부족이었고 활력 부족이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몸이 늘어진다. 아침에 몸이 늘어지기 시작하면 그날은 보나마나 끝이다.


 살기 위해(?) 의지를 세워본다. 세바퀴라도 걸어보자.


 그래서 걷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아이들을 스쿨버스에 태워보내고 6시 40분부터 빙글빙글 돌고래처럼.


 처음 한바퀴는 생각이 뒤죽박죽이다. 생각들도 아직 잠이 덜 깼다. 몸을 움직이기 위한 시동을 거는데 모든 정신을 다 쓴다.


 두번째 바퀴에서 시동 걸린 몸이 기계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드디어 잠에서 깬 생각들이 몽글몽글 피어난다. 이런. 대부분 유쾌하지 않은 기억과 상상들이다. 부정적인 생각들로 내 자신감이 걷는 보폭에 맞춰 짓밟히고 있다. 긍정적인 생각의 중요성을 종교처럼 믿고 있는 나에게 이건 치명적이다. 마지막 한 바퀴. 너에게 달려 있다.


 세번째 바퀴는 어떻게든 죽어가는 생각을 심폐소생해야한다. 산소 대신 긍정의 힘을 불어 넣는다. 후아후아. 좋은 생각들은 좋은 하루를 만든다. 부담 갖지 마. 너무 애쓰지 않아도 돼. 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거야. 세바퀴의 끝자락에 만보기를 확인하며 스스로를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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