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 게 먹고 싶어

by 키치니

우리 엄마는 우울증과 함께 '매운 걸 먹으면 입이 아픈 병'에 걸렸다. 신경안정제와 수면제 같은 약을 복용하면서 부작용이 함께 왔는데 입안이 헐고 침이 마르며 혀가 연약해져 버렸다. 그래서 살짝 매운 기운만 돌아도 한 살 아기처럼 못 먹는다. 무슨 음식이든 잘 먹던 엄마가 그런 희한한 병에 걸렸다는 걸 믿을 수 없어 적당히 매운 음식을 내밀며 매운맛도 길들여지는 거라 먹다 보면 예전처럼 잘 먹게 될 거라고 설득했지만, 엄마의 입안은 매운맛에서 점점 멀어져 갔고 그것은 그저 '고통을 안겨주는 아픈 맛'으로 바뀌었다. 바뀐 엄마의 혀를 고려해 최대한 슴슴한 음식들이 나오는 식당엘 가도 엄마는 보이지 않던 매운맛을 찾아내어 음식과 거리 두기를 하였다. 그리고는 일하시는 분을 붙잡고 매운 걸 못 먹는 비운의 여주인공에 대하여 길게 하소연을 하셨다. 고춧가루가 한 톨이라도 들어간 음식은 고사하고 오뚜기 카레 '순한 맛' 조차 맵다는 엄마. 그런 황당한 상황이 제일 이해가 안 가는 게 본인이었을 텐데 '세상에 이게 뭐가 맵다고 못 먹냐'며 오히려 성을 냈던 것 같다.


매운맛은 미뢰에서 감지하는 '맛'이 아니라 '통각(pain)'이라는 과학적 사실이 맞는지 엄마는 매운맛을 그저 아프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매운맛이 진짜 '맛'은 아닐지라도 그 맛 하나를 잃는다는 것은 입안의 통증을 넘어 우리 삶에 고통이 되기도 한다. 엄마 몸에는 이미 70년 동안 쌓여온 온갖 매콤한 음식의 기억이 담겨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장례식장에서 나온 열무김치가 왜 그리 맛있었는지 모르겠다던 엄마. 학창 시절 미원 한 스푼 안 넣어도 감칠맛 나게 만들어 주던 엄마표 쌀떡볶이. 입맛이 비슷한 막내딸과 집에서 꾸덕하게 요리해 먹던 양념닭발. 여름이면 뱅어포에 빨갛게 양념 발라 밥상 가득 햇볕에 말려 먹던 밥도둑까지. 아니, 멀리 갈 것도 없이 엄마는 흰밥에 고추장만으로도 정말 군침돌게 비벼 먹던 사람이었다. 이를 거부하는 본인의 혀와 달리 잊을 수 없는 매운맛이 체화된 엄마의 뇌는 미각을 자극하던 그 맛을 원하고 있다. 자꾸 주문하는 뇌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혀는 서로 부딪히며 싸운다. 안 그래도 입맛 없는 엄마 몸이 자꾸 힘이 빠지는 느낌이다.


매운맛을 싫어하는 것에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이 주변에 한 명 있다. 초등학교 6학년이면 마라탕도, 불닭볶음면도 먹을 나이인데(물론 그렇게 자극적인 매운맛을 즐기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딸은 그 흔한 떡볶이도 못 먹는다. 덕분에 늘 '안 매운' 짜장떡볶이를 먹어야 하는 둘째는 불만이 많다. 떡볶이의 진정한 매력은 매콤달콤 아니던가. 심지어 매운 음식을 싫어하고 먹을 줄도 모르면서 김치볶음밥을 좋아하는 모순을 지녀서 김치를 고춧가루 하나 남기지 않고 물에 씻어 볶는 '근본 없는' 김치볶음밥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도 맵다며 먹는 동안 물을 여러 컵 들이켜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헛웃음이 나온다. 어려서 매운 걸 너무 안 먹였나. 그래도 그렇지 조금 크면 매콤한 맛을 어느 정도 알던데. 내 기억 속 4학년은 고추장에 참기름, 설탕 듬뿍 넣고 혼자 비빔국수를 비벼 먹지 않았던가.


할머니와 다르게 매운 걸 못 먹어도 불만이 전혀 없는 딸이야 본인 입맛이려니 싶지만 함께 사는 사람은 무슨 죄인가. 아이들 메뉴가 식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우리 집에서는 어쩔 수 없이 매운 음식을 멀리하게 된다. 따라서 의식적으로 '안 매운' 요리를 만들어야 하니 창의력에 한계를 느낀다. 닭으로 삼계탕이나 간장조림만 할 수는 없다. 칼칼하게 닭볶음탕도 먹고 싶고 매콤하게 닭갈비도 먹고 싶다. 매일 허연 된장찌개만 끓여 먹고 싶지 않다. 고춧가루도 팍팍 넣고 청고추도 썰어 넣어야 얼큰하고 구수한 맛이 나지 않겠는가. 상추쌈에 삼겹살 말고 진득하게 양념이 묻은 제육볶음도 올리고 싶다. 비단 한식뿐이 아니다. 봉골레나 감바스에 잘게 부순 페퍼론치노가 빠지면 맛이 얼마나 밋밋해지는가. 중국집에 가면 자장면, 탕수육 말고 짬뽕이나 깐풍기도 시키고 싶다. 혼자 먹자고 할 수 없는 음식들, 주문되어지지 않는 메뉴들. 실상은 '맛'이라고 부르지도 못하는 매운맛 때문에 많은 음식들이 후보에서 제외된다. 매운맛에 집착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요리에 방점을 찍는 마지막 한 수를 놓을 권리를 갖고 싶다.


유난히 매콤한 맛이 당기는 날이 있다. 그럴 때 나의 뿌리가 '고추장에 고추를 찍어 먹는 민족'임을 자각한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 인도네시아 사람들도 매운맛을 좋아한다. 우리나라의 고추장과 같이 (어쩌면 그보다 더) 현지인들이 사랑하는 소울푸드가 있는데 바로 '삼발Sambal'이라는 소스이다. 고추를 빻아 기름, 라임, 식초, 마늘 등을 섞은 것으로 칠리소스와 비슷한데, 어떤 요리를 시키든 대부분 삼발이 작은 종지에 담겨 같이 나온다. 나시고렝 같은 볶음밥에 넣어 비벼 먹거나 밥에 반찬처럼 곁들이기도 하고 소또Soto라는 국물 요리에도 튀긴 과자를 찍어 먹는 용도로 함께 나온다. 꼬치구이 종류인 사테Sate를 시켜도 땅콩소스와 함께 나오고 과일 샐러드에도 삼발을 먹는다. 심지어 감자튀김이나 피자, 치킨을 주문해도 삼발이 들어있는 것이 더 이상 이상하지 않다. 삼발은 그 종류와 맛 또한 매우 다양해서 들어가는 재료와 만드는 방식에 따라 그 이름도 가지각색이다. 매운 걸 좋아하지 않을 경우 삼발을 제외하면 되지만 여기 사람들은 겁도 없이 매운 고추를 큼직하게 썰어 온갖 요리에 다 넣는다. 처음 이곳 식당에서 "노 스파이시"를 연신 외쳤지만 하나도 안 맵다며 가져온 음식들에는 거의 다 고추가 함께 볶아져 있거나 전혀 빨갛지 않은 양념 속에 의뭉스럽게도 매운맛이 숨어있었다.


매운맛은 한국인이 제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대단한 경쟁 상대이다. 또 어느 나라가 있을까. 멕시코, 태국, 인도, 중국? 그런데 요즘 불닭볶음면의 세계적인 인기를 보면 지구촌 사람들의 매운맛 찾기는 단순한 호기심은 아닌 것 같다. 분명 맛이 아니라고 했는데 '매워서 맛있다'니. 혀는 아픈데 즐겁다니 좀 이상하다. '매운맛의 고통은 우리 몸으로부터 도파민이나 엔도르핀 같은 진정 물질을 분비시키고 이것이 결국 우리를 기분 좋게 만든다'라고 이론적으로 이해하고 싶지는 않다. 맛의 오케스트라에 특별한 연주자 중 하나 정도로 대접해 주면 좋겠다. 하지만 매운맛에 대하여 거창하게 말하고 있는 나 자신 또한 매운 걸 그다지 잘 먹지는 못한다. 굳이 표현하자면 엽기떡볶이의 떡 하나도 입에 대지 못할 정도의 순수한 입맛을 타고났다고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자꾸 매운 게 먹고 싶다. 매운 게 당기니 또 엄마 생각이 난다. 엄마는 매운 게 얼마나 먹고 싶을까. 누가 이런 나쁜 벌을 준 걸까. 엄마가 아는 세상의 맛이 절반으로 줄었으니 그 괴로움은 얼마나 클까.


한국에 돌아가면 엄마에게 맛있는 요리를 해주어야겠다. 큰딸 덕분에 안 매운 요리를 맛있게 만드는 마법을 알았으니까. 엄마가 숨은 매운맛을 찾지 못하고 싹싹 비워내도록 말이다.

엄마, 우리 집에 놀러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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