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디톡스

바다를 항해하는 중

by 키치니

말도 많은 카카오톡 업데이트에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에게 카카오톡은 그저 지인들과 연락을 주고받는 간편한 수단일 뿐이다. 그런데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들여다보는 그 화면에 들어갔다 최근 몇 번이나 화들짝 놀랐다. 평소 연락도 하지 않던 이들의 일상이 화면 가득 뜬 것이다. 졸업 이후 한 번도 만나적 없는 대학 후배부터 아이들 어린이집 다닐 때 잠시 만났던 친구 엄마, 연락처에 이런 사람이 있었나 싶은 경우까지. 그나마 풍경 사진이나 인물이 작게 나온 사진은 괜찮았는데 무방비 상태로 대문짝만 하게 등장하는 얼굴을 보게 되면 그 모습을 마주한 내가 오히려 민망해진다. 한때는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의 소식을 오랜만에 들으니 반가워야 할 것 같지만 마치 허락하지 않은 것을 훔쳐본 것 같아 당황스럽기도 하다. 그들도 알까? '죄송하지만 당신이 기억할지 모르는 제가 당신의 소식을 잠시 접했어요.' 그런데 엄지손가락이 자꾸 화면을 쓸어 올리는 것은 또 무슨 행동인가. 무의식인가 의식인가?


사실 이런 불편은 카카오톡만의 문제는 아니다. 네이버앱은 이미 훨씬 전부터 홈화면의 절반을 각종 콘텐츠와 광고를 제공하는데 할애하고 있다. 카카오톡이 몹시 점잖았던 편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입력했던 검색어나 잠시 멈춰 구경이라도 해 본 사이트가 있다면 수많은 관련 정보들이 나를 만나려고 끝도 없이 줄을 선다. 조금만 태도를 바꾸면 곧바로 다른 맞춤 동영상이나 글들이 따라온다. "아, 원하시는 게 바로 저였군요." 의식적으로 멈추지 않는다면 스크롤은 영원할 것처럼 아래로 내려가고 앱을 찾은 본래의 목적보다 쓸데없는 친절과 씨름하느라 시간은 흘러간다. 어떨 때는 너무 심심해서 그냥 이 얕고 넓은 정보의 바다에 스스로를 맡기고 아무 데로나 떠내려가고 싶을 정도이다. 사실 이런 서비스의 최고봉은 결국 유튜브이지만 그곳이 그런 용도로 이미 마음을 먹고 들어가는 곳이라면, 나에게 네이버나 카카오톡은 검색이나 연락을 위해서라는 엄연히 구분되는 목표가 있었다. (기업의 사정은 잘 모르지만 더 많은 사람들을 머무르게 하고 수익을 낼 수 있다면 why not?)


때로는 도대체 무슨 연관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불쾌하거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정보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데 그럴 때면 앱에 접속해야 한다는 사실이 살짝 화가 난다. 반대로 생각지도 않았던 내면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들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된다. 전에는 눈치껏 제공되던 콘텐츠들이 이제는 대놓고 받아들이기를 강요하는 느낌이랄까. 카카오톡 가입 이래 프로필을 딱 한번 바꿔본 나는 내 소식을 공개하는 것도 타인의 소식을 공개받는 것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인스타그램, 틱톡 등은 계정조차 없고 SNS는 메시지를 주고받는 아주 간결한 용도로만 이용하고 있지만 다행히 별다른 사회적 문제는 없다.(내가 턱걸이 MZ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따라서 얼마 전만 해도 정보의 바다에 배를 띄우고 유유히 필요한 정보들을 낚아서 먹고 쓰고 살아가던 나는, 비로소 배를 위협하는 휘몰아치는 파도 속에 놓이게 되었다. 바다가 말한다. "너의 배는 내 파도 속에 잠식될 거야."


얼마 전 흥미로운 기사를 보았는데 올해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중 한 명인 프레드 람스델Fred Ramsdell이라는 분이 수상 소식을 알리려는 당일 연락이 닿질 않았다. 그 이유는 디지털 디톡스를 위해 전자기기를 꺼둔 채(휴대폰을 비행기 모드로) 로키산맥 일대를 하이킹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의 일이 아니다. 디지털 기기에서 범람하는 정보들로부터 우리 모두 해독작용이 필요하다. 그럴 때가 있다. 이미 너무 배가 부르고 그 무엇도 더 먹고 싶지 않은데 누군가 내 앞에 숟가락을 들이미는. 지금 이 홍수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그와 비슷하다. (우리에게는 거절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기를 바란다.) 하나도 소화되지 않았는데 먹고 싶지도 않은 잔칫상을 또 맞이한다. 거북하고 괴롭다. 옛날에 텔레비전을 '바보상자'라고 불렀던 것은 지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고작해야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시작할 때까지 시간을 기억하고 채널을 맞춰놓고 기다린 게 전부 아닌가. 현재의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는 쉴 새 없이 피로감이 쌓인다.


작년에 '불안 세대(조너선 하이트 저.)'를 읽고 제목만큼이나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스마트폰과 페이스북의 등장 이후 증가한 우울증 비율(특히 청소년)은 심상치 않았다.(작가는 책에서 만 16세 이전에 SNS 사용을 법적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말하고 있다.) 사실 데이터가 입증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많이 쓰면 쓸수록 그다지 행복해지지 않는다. 아직 이런 온라인 플랫폼 시대가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처럼 나를 알리고 너에게 다가가는 적극적인 소셜미디어가 아니더라도 아이들이 학교 친구들과 함께하는 단톡방을 보고 있으면 별것 아닌 일에 노파심이 든다. 그 안에서 오가는 시답지 않은 말장난과 쏟아내는 감정들, 자신의 현재 상황 생중계로 하루에 수백 개의 대화가 만들어진다. 아직은 그저 친구들과 나누는 순수한 대화가 전부인데도 부모 마음은 디지털 세계라는 물가에 내놓은 아이가 불안하다. 한 번은 친구에게 받은 영상이 재미있다며 보여주었는데 결국 공감보다는 잔소리로 끝났다. 허락 없이 타인의 영상 유포는 조심해야 해. 개인정보나 저작권 침해에 대해 생각해야 해 등등. 아이는 샐쭉거린다. 이러다 엄마에게 말하지 않는 때가 올 텐데. 어른도 살아내기 힘든 이 바다에서 너는 이미 물고기로 태어나 괜찮은 걸까. 나는 아가미가 없지만 너는 아가미가 있으니 어떻게 호흡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알고 있는 걸까.


나 같은 사람이 꽤 있는지 그 정보의 홍수 속에는 '카카오톡 업데이트되면 이것부터 설정하세요'라는 영상들도 돌아다닌다. 프로필 설정에서 친구에게만 게시물을 공개하거나 프로필 업데이트를 나만 보게 할 수 있는 등의 기능이다. 동영상 자동 재생 사용 안 함까지 찾아 눌렀지만 그래도 아쉬운 부분은 남는다. 하지만 분명 남 탓만 할 일은 아니다. 그 바다를 헤쳐 나갈 용기와 의지가 얼마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어쩌면 바다는 예전부터 거칠고 험했는지도.


사진 출처: Pixabay. WOKANDAPIX.



사실 미국과 중국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와 같이 자국의 기술로 만든 메신저와 검색엔진의 점유율이 높은 나라도 드물다. 나는 그런 자부심과 애정으로 네이버와 카카오톡을 바라본다. 기업의 입장에서 좋은 수익 구조를 만들어야 지속적으로 성장이 가능하다는 점을 응원해야겠지만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무턱대고 차려내는 잔칫상이 아니다.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차별화된 기술이 무엇인지 고민이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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