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다
원래 너무 화가 나서 머리꼭지가 돌 지경이었다. 내가 누굴 이렇게 싫어해 본 적이 있었나? 인간사 만사가 관계에서 기쁨도 괴로움도 시작되는 것인데 설마 있었겠지. 사람이 아주 싫었던 일을 떠올려보자니 두어 번 머릿속에 남는 듯하다. 고등학교 때 고작 한 살 많은 주제에 잘난 척을 있는 대로 하며 후배를 업신여기던 동아리 선배. 대학교 때 처음 사귀었던 오빠. (미안한 얘기지만 그 이유를 아직도 명확히 파악하진 못했다.) 아무튼 그 이후로 누군가를 이토록 불쾌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상대방이 아는지 모르는지 거의 일 년이 다 되어가도록 혼자 열이 잔뜩 올라있는 중이다. 여기 와서 새로 알게 된 언니가 다가왔고 나 역시 자연스럽게 친해졌고 그게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쌩한 느낌이 들었고 그게 니가 먼저 그래서 내가 쌩해진 건지 내가 쌩하니까 니가 쌩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런 어이없는 일도 있구나 하며 처음엔 그저 벙찌기만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후 관계를 곱씹어 볼수록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정도로 그 사람이 쿰쿰하게(사람에게 이런 표현을 붙여도 될지 모르겠지만) 느껴졌다.
사람 앞에서 얼굴 붉히며 이야기를 못하는 성격이라 이럴 때 보통 자리를 뜨고 상종을 하지 않는 게 본성인데 내 상황이란 것이 출근 시간 꼬리물기로 꽉 막힌 교차로처럼 어디로도 갈 수 없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어렵게 만들고 정착한 모임들에 성실멤버인 그분은 절대 빠지지 않았기 때문에 모임을 다 그만두고 혼자 들어앉는 방법이 아니고서야 만나지 않을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이 와중에 이런저런 이유로 거의 매일 얼굴을 봐야 하는 날들도 있었다.) 더욱이 누구에게 험담해 봤자 내 얼굴에 침 뱉기이지 싶어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라고 속 시원히 외치지도 못하고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이 되어 외롭게 그 공간을 부유했다. 물론 나 역시 철가면을 두른 터라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모임에서는 하하호호 사람 좋은 척하며 앉아있었으니 뭐 다를 바 있었겠나 싶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상태가 호전되는 것이 아니라 미움이라는 병이 오히려 증폭되어 제발 내 앞에서 당장 사라져 주기를 마음속으로 빌게 되었다. 너무 괴로울 때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이니 모든 걸 그만두자는 다짐을 했다가도 왜 그 사람 때문에 내가 포기해야 해 그럴 순 없어라며 정신분열과도 같은 일인극을 마음속에서 펼쳤다.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자신을 객관화하며 잘 이겨내자고 다독이며 조금 나아지는 듯했는데 이것저것 엮인 게 하도 많다 보니 생각지 않은 사람들이 툭툭 건네는 말들로 다시 그 쿰쿰함의 연결고리를 맺으며 분노가 극에 달했다. 내 속에도 못된 놈 하나 들어앉아 있는지 그 사람을 보기 좋게 고립시켜버리고 싶었고 다른 사람들도 같이 비난을 퍼부었으면 좋겠다는 저열한 욕망이 솟아올랐다.
사실 나도 이유를 모르겠다.
늘 친절하고 예의 바르고 만남 후에는 따뜻하고 배려 깊은 문자를 남기고 바른 생각을 이야기하고 누구의 글에나 긴 댓글과 하트로 화답하고 제일 먼저 양보하는 사람이라고 모두 그렇게 알고 칭찬하고 있는데. 나는 그에게서 도대체 무엇을 보고 느낀 걸까. 그럴 땐 한없이 스스로를 의심한다. "뭐야 너 왜 그래? 니가 문제 아니야?" 이런 혼란 속에 우리 관계와 그 사람에 대해 여러 번 다른 진단을 내렸다가 너도 나도 나쁜 사람이 아니니까 '서로 코드가 맞지 않는' 걸로 매우 공평한 최종 결론을 맺었다.
여기서 마음이 끝났다면 좋았을 텐데 터져버렸다.
오늘 아침 눈을 떴을 때 침대 위에 마음이 있는 대로 뒤틀린 채 놓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주섬주섬 겨우 챙겨 나왔는데 손이 파르르 떨렸다. 도대체 누구와 경기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제 케이오 완패를 당했다. 큰 사고는 갑자기 일어나지 않는다. 중대재해는 그 이전에 이미 수많은 경미한 징후들이 있었다. 어제 모임에서 한 분의 스치는 한마디를 듣고 나서 그가 아니라 내가 고립되었음을 알았다. 원래도 없었겠지만 모두 내 편이 아니었구나. 함께 욕할 사람은 없구나. 오히려 이제 내가 비난받지 않기 위해 눈치를 보고 있구나. 사실,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을 거라 믿는다. 사람들은 다른 이들에게 관심이 없다. 그냥 각자 같은 공간 속을 둥둥 떠 다니는 것뿐인데 나 혼자 물과 기름처럼 분리되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속 얘기를 한다면 이렇게 위로해 줄 것이다.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진실이 무엇이든 더는 화가 나지 않았다. 경기에서 진 사람은 할 말이 없다. 그저 슬픔과 불안이 뒤섞여 나를 찾아왔다. 오늘의 긴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
이런 마비에도 불구하고 몸은 그럭저럭 할 일을 한다. 도시락을 싸서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아이들을 학교에 보냈고 밖에 나가 걸었다. 땀이 난 채로 씻지도 않고 영어 공부를 했고 내일 있을 경제 스터디를 준비했다. 혼자 미역국에 밥을 말아먹었고 부족한 잠을 채우기 위해 한숨 잤다. 자고 일어나서 내 마음이 밖에 놓여있을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이상한 꿈을 꾸면서도 잘 잤다. 이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십 대 사춘기 소녀도 아니고, 먹고살기도 바쁜데 이런 감정 소모 자체가 사치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정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모르겠다. 내 마음을 어디부터 접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상처받은 마음을 들키지 않고 같은 공간에 흩어져 이리저리 섞이면 되는데 그 방법을 모르겠다. 어제 홍삼이라도 먹길 잘했다. 그거라도 먹지 않았으면 영영 기운이 나지 않을 뻔했다. 오늘은 정량이 얼마인지 모른 채 두 봉지를 뜯어먹었다. 내일은 세 봉지를 먹으면 좀 더 씩씩해지려나.
나는 외로운 걸 못 견디지만 사람을 갈구하지 않는다. 안타깝지만 그게 나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에게서 더 이상 원인을 찾고 싶지 않고 나를 문제 삼고 싶지도 않다. 살아온 세월이 있는데 마음이 어떻든 나는 관계에서 노련할 것이다. 단정하게 살다 보면 회복될 것이다. 다시 평정심을 찾을 때까지 홍삼이나 열심히 먹어보자.
한바탕 신나게 퍼붓고 싶었는데 글이 망했다.
사진 출처: Pixabay. madrigalssm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