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대하여 써 보자

by 키치니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나라에 산다는 건 일종의 행운이다. 왜냐하면 맛도 좋고 싱싱한 해산물을 언제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면만 바다여도 이런 호사를 누리는데 섬나라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아침 점심 저녁 그들의 식탁에 올라올 바다의 보석들을 상상하니 부럽기 그지없다. 비린내에는 취약하면서도 유난히 바다향을 좋아하고 바다의 식감을 사랑하는 나는 고기보다 해산물을 선호한다. 바다가 지닌 식재료의 매력은 얼마나 대단한지. 소라나 전복의 오독오독, 쫄깃쫄깃 씹는 맛. 멍게나 굴이 품은 청량하고 시원한 바다 냄새. 새우나 오징어의 달큰한 맛도 좋고 게나 성게가 지닌 녹진한 맛도 좋다. 김이나 미역, 조개는 또 얼마나 감칠맛이 풍부한가. 게다가 활어회는 말해 무엇하리.


만 개가 넘는 섬에 세계에서 손꼽히는 수산물 생산량을 자랑하는 곳. 그런 인도네시아에 오면 해산물을 한층 다양하게 즐길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큰 착각이었다. 물론 마트에 가면 가지각색의 이름 모를 생선들이 있고 오징어, 조개류도 있지만 딱히 손이 가질 않는다. 현지 음식점을 가도 메뉴판에 'IKAN(인니어로 물고기)'이라고 하여 생선 구이 종류들이 있지만 잘 주문하지 않게 된다. 그나마 만만한 것이 '새우' 정도 라고 할까. 이유를 생각해 보자. 우선 더운 바다에서 나오는 해산물들은 맛이 없다. 퍽퍽하거나 질기고 두툼한 살에도 불구하고 별 풍미가 없다. 고소한 맛도 달콤한 맛도 아닌 정체불명의 그야말로 무(無) 맛이다. 두 번째는 한국처럼 저장 및 물류 시스템이 잘 되어있지 않은 것 같다. 대형 마트에 가서 얼음 위에 올려져 있는 싱싱한 생선을 집어와도 알 수 없는 쿰쿰한 비린내가 난다. (여러 번 불만 가득했던 실패의 경험 후, 아예 구입하지 않게 되었다.)


된장찌개나 파스타에는 꼭 해물을 넣어야 하고, 해마다 제주도 시댁에서 보내주시던 옥돔이며 은갈치를 구워 먹고, 홍가리비 철에 예약주문 해두었다 찜기 가득 쪄먹고 돌문어라도 들어오는 날이면 숙회 만들어 초장 찍어 먹고, 즐겁고 싶은 날이면 동네 횟집이나 마트에서 2~3만 원대 회 한 접시씩 사다 먹던 그 바다의 풍요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수산업에 경의를 표한다. 동해 서해 남해 어디쯤 먼바다에서 우리 동네 작은 슈퍼까지 갈치와 고등어를, 주꾸미와 바지락을, 심지어 횟감까지 높은 신선도로 배송해 준 그 업적에. 물고기 맛을 끌어올려준 대한민국의 시원하고 푸른 바다와 사람들의 입을 호강시켜 준 수협 이하 관계자 분들께 심심한 감사의 말을 올리고 싶다.


아무튼 해산물이 가져다준 은혜(비록 지금은 잠시 중단되었지만)로 나는 바다를 몹시 사랑한다. 우리 아이들 역시 바다를 무척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좀 다르다. 수영도 못하고 바다를 무서워하는 엄마와 달리 서귀포에서 자란 '마린보이' 아빠를 닮아서인지 아이들은 바다에서 참 맛깔나게 논다. 바다에 가면 할 일이 얼마나 많아지는지. 튜브 끼고 파도타기, 스노클링 하며 물고기 찾기, 모래사장에 성 만들기, 바위 사이 헤집으며 고메기 잡기. 바다는 어린이들에게 신나는 놀이공간이 된다. 6시 내 고향이나 생생 정보통에 종종 등장하는 어촌 생활을 보며, 바닷가에 사는 건 여러모로 고된 일일 것 같지만 이따금 바다에 대한 환상으로 그런 삶을 꿈꿔보기도 한다.


인도네시아에는 세계인들이 사랑하는 휴양지 '발리'가 있다. 자카르타에 거주한 지 1년이 될 무렵 발리를 여행할 기회가 생겼다.(발리섬은 자카르타에서 비행기로 2시간 남짓 떨어져 있다.) 옛날 사람답게 발리 하면 조인성, 하지원 주연의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 밖에 떠오르는 것이 없는데, 발리가 왜 그토록 인기 있는 여행지인지 궁금했다. 스미냑 지역 숙소에서 묵을 때 어디를 가나 현지인보다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이 더 눈에 띄었다. 그야말로 작은 지구촌이 여기로구나. 바다에서 서핑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얼마나 자유분방하고 역동적인지. 온 세상의 평화가 이곳에 내린 것 같았다. 이에 질세라 아이들은 옷을 갈아입고 바닷물 속으로 들어가고 사랑이 극진한 엄마는 사진을 찍어주러 따라갔는데,

바다에 쓰레기가 너무 많다.


아이들이 쓰레기와 함께 뒤엉켜 수영하는 기이한 광경이랄까. 기분이 찝찝해져 모래사장으로 나왔는데 알록달록 모래들이 마치 잘못 찍힌 점처럼 도드라져 보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잘게 부서진 플라스틱 조각들이 모래사장을 따라 파도의 흔적대로 띠를 이루고 있었다. 이렇게 쓰레기가 많은데 모두 어떻게 즐기고 있는 걸까. 그 모습이 참 조화롭지 못해 스스로가 이상한 건 아닐까 의심해 볼 정도였다. 관리하는 사람은 없을까. 저 쓰레기들은 어디서 밀려오는 걸까. 그래도 발리인데. 가 볼 곳도 많고 휴양 시설이 잘 되어 있는 덕분에 발리로 여러 번 여행을 가는 주변 분들도 있다. 하지만 모든 발리의 좋은 경험은 바다쓰레기 하나로 묻혀지고 나에게는 다시 가고 싶지 않은 장소가 되었다.


물론 그 쓰레기는 발리만의 잘못이 아닐 것이다. 온 세계의 어디선가 시작되었고 버림받은 시간이 길어질수록 쪼개지고 해져서 마치 유령처럼 바다 위를 배회하는 것이리라. 어쩌면 속초 앞바다에서 컵라면을 먹다 실수로 바람에 날아간 비닐봉지가 긴 여행을 마치고 발리에 도착한 것일 수도 있겠지.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는 어부 마이클이 무심코 버린 그물 조각이 해류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힘겹게 목적지에 도착한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멀리 갈 것도 없이 인도네시아 수라바야에서 다 먹은 생수병이 적절한 재활용 시설을 찾지 못하고 바다에 내동댕이 쳐진 걸 수도. 여하튼 바다쓰레기는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한 학생이 생각난다. 6학년인데 벌써 '파친코'를 읽고 있던, 조금은 날카롭게 날이 서서 사춘기가 몸으로도 마음으로도 시작된 것 같던 그 친구가 미술 시간인가 그림을 그렸는데 바닷속에서 산소통을 달고 유유히 헤엄치는 모습이었다. 자신의 꿈은 '바다쓰레기를 줍는 사람'이 되는 거라고. 그 놀라운 말에 아이가 꿈꿔야 하는 미래가 한없이 미안하게 느껴졌었다.


요즘 접하게 되는 불편한 뉴스들. "해수욕장에 아열대성 해파리떼 등장. 적조 피해 양식 어류 폐사. 뜨거운 바다에 병드는 검은 반도체 김. 사라진 어종 조업 풍경도 바꾼다." 이런 헤드라인을 접할 때마다 걱정으로 마음이 콱 막히면서도 '아직 우리 바다는 괜찮아'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이번 여름. 이제 우리가 사랑하는 제주도 금능해수욕장에서 맞이한 좌절에 대하여 이야기해야 할 때다.


얕은 물, 약한 파도 덕분에 위험하지도 않고 썰물 때 생기는 넓은 모래사장에 현무암 바위 사이에서 작은 게를 잡는 재미가 좋아 금능해수욕장은 할아버지할머니 댁에 가면 우리가 찾는 최애 장소이다. 매년 방문하기 때문에 누구보다 그곳 바다 사정을 잘 안다고 자부하고 싶다. 그런데 올해는 달랐다. 이 더운 나라의 바다와 달리 '청정'이라는 말이 꼭 어울렸던 금능에서 많은 바다쓰레기를 보았다. 짧게 잘린 여러 굵기와 색깔의 그물 조각들, 플라스틱 통이나 비닐류 같은 생활 쓰레기들. (어떤 특정 국가를 탓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글자로 보아 중국에서부터 여기까지 밀려온 것들도 꽤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은 즐겁게 놀고 있는데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른 이들도 누구 하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 같다. 발리에서 느낀 한심한 기분이 되살아난다.


솔직히 발리에서는 그저 손님으로 왔다는 생각에 상황을 외면하고만 싶었다. 다시 안 오면 그만이잖아. 그런데 제주도는 달랐다. 우리 바다인데, 왜 이렇게 쓰레기가 많은 거지?


결국 몰래 쓰레기를 주웠다. '몰래' 주운 이유는 다른 사람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선행으로 비춰지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유난스러워 보이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구멍 뚫린 지퍼백에 모으고 또 모으고 몇 번을 갖다 버렸는지 모르겠다. 그냥 마음이 그랬다. 여기 있는 동안 매일 나와 쓰레기를 줍고 간다면 불편한 마음이 조금은 사라질까. 사랑하는 바다에 대한 걱정이 조금은 누그러질까. (물론 그날 이후 다시 가지 못했다.) 그런데 하나의 놀라운 위로가 되었던 게, 어떤 청년이 조용히 바다쓰레기를 모아 나에게 건넸다. 쓰레기장에 버리고 오니 또 모으고 모아서 건네고. 결국 우리 둘이 '월리를 찾아라'의 월리처럼 서로 다른 월리가 되어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 (처음에 한국인인 줄 알았던 그 청년은 중국에서 가족여행을 온 친구였고, 쓰레기를 너무 열심히 줍다 안경을 바다에 빠뜨려 결국 잃어버렸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가 좋다. 나와 같이 수산물을 좋아해 주는 한국인들이 좋다.(그래야 수산업이 지속적으로 발전하지 않겠는가.) 앞으로도 계속 싱싱한 해산물이 먹고 싶다는 철없는 이유이지만 나는 바다를 사랑한다. 지구를 푸른빛으로 빛나게 하는 그 바다가 계속 깨끗했으면 좋겠다. 바닷고기들의 살이 기름지게 차 오르도록 바다가 계속 시원했으면 좋겠다. 그 바다 덕분에 상쾌한 공기를 마시고 그 바다 덕분에 폭우 같은 기상이변도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년에 금능은 괜찮을까.


사진 출처 : Pixabay. Kanenori




**발리(Bali)**의 바다에 떠다니는 해양 쓰레기는 지역적·국제적 원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습니다. 단순히 현지 주민들이 버린 쓰레기만이 아니라, 인도네시아 전역과 인근 국가들, 그리고 계절풍과 해류의 영향까지 포함된 광역적인 환경문제입니다.

<발리 바다 쓰레기의 주요 발생 원인>

1. 인도네시아 국내의 쓰레기 처리 문제

2. 계절풍(몬순)과 해류에 의한 외부 쓰레기 유입

3. 관광산업의 역설

4. 국제적 해양 쓰레기 순환

5. 지역 어민과 주민의 의존형 소비 방식 by. Chat GPT

찾아보니 하필 내가 다녀간 1월에, 하필 내가 방문한 스미냑 지역이 특히 쓰레기더미 발생이 두드러진다고 한다. 그러니까 1월만 피하면, 스미냑만 피하면 되는 일일까? 그러거나 말거나 앞으로 바다쓰레기는 더 심해질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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