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지낸 지 어느덧 2년이 되었다. 이곳은 한국보다 층고가 높고(3m가 넘는다.) 전체 벽이 통창으로 되어있어서 바깥과 연결되는 모든 면에는 커튼이 달려 있는데, 높이와 너비를 합치면 그 부피가 어마어마하다. 각 창은 제법 두툼한 암막용 겉커튼과 얇게 비치는 흰색의 속커튼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두운 것을 싫어하는 나는 겉커튼을 항상 끈으로 묶어두어 지금까지 사용한 적이 없다. 처음 이 집에 들어왔을 때 살짝 '펄감이 있는 브라운' 색상의 커튼이 예쁘게 주름 잡혀 있어 내부 인테리어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하늘하늘한 속커튼은 대부분 닫아두지만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방만큼은 낮이면 커튼을 활짝 열어 바깥 풍경을 집안으로 초대한다. 그러면 정체되었던 마음 어딘가가 뻥 뚫리면서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지는 기분이 든다.
최근에 집을 재계약하며 주인이 커튼 세탁을 다시 해주기로 하였다. 먼지에 예민해 알레르기를 달고 사는 입장에서 늘 커튼이 마음에 걸렸으나 세탁을 맡길 엄두도 내지 못했는데, 내심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동산에서 업체가 오는 날짜를 확인하고 설명을 들어보니 두 번에 나누어 진행되는 일이었다. 한 번은 거실을 포함한 일부를 먼저 세탁하고 다시 설치하면서 안방과 작은 방들의 커튼을 수거해 가는 방식이었다. 대충 이유가 짐작이 갔으나, 그렇게 하면 세 번이나 외부인의 방문 일정을 잡고 대기해야 하는 입장에서 몹시 귀찮고 불편하게 느껴져 한번에 모든 커튼을 세탁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부동산과 업체에서는 살짝 당황한 듯 다시 한번 나의 의사를 재확인하였으나 그까짓 것 뭐 크게 문제 될 게 있을까 싶어 그대로 진행해 달라고 말하였다.
두 명의 업체 분이 오셔서 사다리를 놓고 신속하게 우리 집 커튼을 떼어낸다. 커튼이 하나씩 사라질 때마다 가려졌던 외부 전망이 내 시야로 들어오며 마치 이삿짐이 모두 빠져나간 텅 빈 집이 된 듯하다. 햇살이 마음껏 들어와 집이 밝아지며 내부 공간이 더 깔끔해지고 커졌다. 멀리 있는 건물과 그 사이 푸른 나무들까지도 사진처럼 선명하다. 바깥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보인다. 고층 빌딩 어딘가 전망 좋은 곳에 사무실을 둔, 멋진 사람이 된 것 같다. '그리 나쁘진 않네.' 커다란 비닐에 커튼을 눌러 담으며 세탁 시 향을 원하는지 묻는 아저씨와 간단한 대화를 나누며 속으로 생각했다. 앞으로는 좀 더 커튼을 열어놓고 살아야겠군.
그런데 문제는 밤이었다.
해가 지고 어둑해질 무렵 여느 때와 같이 거실에 불을 켰는데, 뭔가 쑥스럽고 왠지 부끄러웠다. 마치 옷을 입지 않고 사람들을 만난 것처럼 어디론가 피하고 싶어졌다. 우리 집은, 조명이 환하게 켜져 눈부시게 빛나는 공연장이 되었다. 밖은 모두 깜깜한데 오직 우리 집만 밝다. 게다가 가릴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 무대 위 배우들의 표정과 몸짓까지 상세하게 다 보인다. 거실에서 밥을 먹고, 책방에서 공부를 하고, 부엌에서 설거지하는 움직임을 어느 좌석에서나 볼 수 있다. 아무도 아무 관심도 없을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많은 시선이 느껴져서 결국 불을 모두 껐다.
우리 집이 벌거벗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등장하는 빅브라더가 커다란 두 눈을 좌우로 움직이며 어디선가 지켜보는 것 같다. 감시받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소름 끼치고 불편해서 모든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졌다. 아이들 역시 '노출된' 우리 집에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는 분명 본능이다. 나를 감추고 싶은 욕구. 예정되지 않은 내 행동이 보이기를 원하지 않는 무의식적 반응. 시선이 없는 유일한 곳은 화장실 앞 작은 공간뿐이라 우리는 그곳의 역할을 새삼 느꼈다. 불필요한 불은 모두 끄고 거실의 조도를 최대한 낮춘 채 저녁을 먹었다.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커튼은 언제 오는지 큰딸이 물었다. 그제야 며칠을 이대로 지내야 하는 상황이 막막하여 한숨이 나왔다.
좋게 생각해 보자. 언제 또 이런 날 것의 기분을 느껴보겠는가. 침대가 있는 방은 아예 한 번도 불을 켜지 않은 채 잠자리에 누웠다. 어둠 속에서 휴대폰을 끄적끄적 들여다보다 그만두고 덮었다. 창 밖을 한번 바라본다. 불을 끄니 오히려 유리해지는 것은 내 쪽이다. 나는 보이지 않을 테고 나는 밖을 볼 수 있다. 도대체 누구와 서로를 사냥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우위를 점하니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예전 수렵 생활을 하던 우리 조상들이 짐승을 잡고 야생을 뛰어다니던 그 시절에 이런 기분이었을까. 나는 바깥을 내다본다. 아름다웠구나. 어둠은 지저분하고 추한 것들을 가리고, 오직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검푸른 하늘과 필요한 곳을 밝혀주는 빛뿐이다. 그래도 내일 해가 뜨고 모든 것이 밝아지면 우리 집은 다시 주목받지 않을 것이다. 다른 집들과 똑같이 그저 네모난 창으로 보일 것이다.
다음날은 불행하게도 비가 왔다. 하늘이 잔뜩 흐리고 때때로 천둥번개가 쳤다. 낮인데도 집안은 밤처럼 어두웠다. 무언가 활동을 하려면 불을 켤 수밖에 없는데 자신 있게 무대에 나설 준비가 그다지 되어있지 않았다. 우리 동과 나란히 마주 보고 있는 40층의 어느 세대에서도 대형 스크린처럼 이곳이 잘 보인다. 아침에 눈을 뜨고 내 시야에 광활한 하늘이 먼저 들어왔을 때는 마치 캠핑에서 자고 일어난 것 같은 새로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어두운 낮은 꽤나 거슬렸다. 모든 것을 드러낸 채 지낸 짧은 며칠은 쉽지 않고 낯설었다. 이런 경험은 한 번으로 족하다. 내일 돌아올 커튼을 나는 누구보다 기다리고 있다. 벌거벗은 우리 집은 다시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을 것이다. 적당히 감추었을 때 가졌던 편안함과 안도감을 다시 누리고 싶다. 공개되어야 하는 것은 내 삶의 일부일 뿐이고, 커튼은 나머지 모두를 품위 있게 가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