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동남아권 나라들처럼 인도네시아 주재원 역시 가장 좋은 혜택이라면 단연 골프를 꼽는다. 한국에 비해 2~3배 이상 저렴한 금액으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시사철 더운 나라에서 일 년 내내 라운딩이 가능한 데다 딱히 갈 곳 없는 이곳에서 골프 빼면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내냐는 게 일반적인 중론이다. 본인 의지는 아니었지만 나 역시 어울리지 않게 한국에서 골프채에 골프옷, 골프화, 골프장갑까지 강제 구매하여 이삿짐에 실려 보냈다. 도대체 마음은 가질 않는데 사람일은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여기 와서 신발장 한편에 놓아두었던 내 이름의 골프채는 빛 한번 못 보고 창고행이 되었다. 아직 예정된 시간이 2년 남았으니 그전에 배우고 경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다들 그런 마음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는 게 좋다는데, 골프에 대한 반감이 사라지지 않아서인지 뭔지. 나는 골프가 참 꼴 사납다.
(여기부터는 골프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이고도 해묵은 감정들을 쏟아낼 테니 혹시라도 골프에 진심인 분은 건너뛰는 게 좋겠다.)
골프는 한 사람의 즐거움을 위해 많은 것들이 갖추어져야 하는 운동이다. 이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는 축구장 수십 개의 면적에 예쁜 잔디가 깔려있어야 한다. 더욱이 상황마다 선택해야 하는 클럽만 10개가 넘으니, 그 무거운 장비를 혼자 책임질 수도 없어 도와주는 캐디가 붙어 다녀야 한다. 홀을 이동할 때마다 카트까지 타고 다녀야 하니 이보다 더 요란한 운동이 있을까 싶다. 골프를 생각하면 가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하트 여왕의 기괴한 크로케Croquet 장면이 떠오른다.(크로케는 골프와 다른 운동이지만 막대기로 공을 친다는 면에서 비슷하다.) 홍학 막대를 거꾸로 휘둘러 고슴도치 공을 날리던 모습. 공을 칠 수 있는 것은 하트여왕뿐이고 카드 병정과 구경꾼들은 그 장면을 바라보며 오직 여왕의 말과 몸짓에 따라 필사적으로 움직인다. 점유하는 자 만이 즐긴다.
시간은 또 어떠한가. 골프장은 동네에 있지 않다. 아무리 가까워도 한 시간 넘게 이동해야 한다. 심지어 18홀을 다 도는 데는 3~4시간이 걸린다. 오며 가며 이동 시간에 더해 게임 후 씻고 식사까지 겸하면 하루를 온전히 골프에 바쳐야 한다. 골프가 비즈니스와 연결된다는 것도 심기가 불편한 부분이다. 골프 없이는 직장 생활도 사업도 어렵다는 것은 누가 만든 규칙인가. 더욱이 이 중차대한 모임은 대게 평일이 아닌 주말에 이루어지지 않는가. 비용은 말할 것도 없다. 예전보다 대중화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린피에 캐디피, 카트비까지 합치면 1회 라운딩을 나갈 때 20~30만 원은 족히 넘는다. 여기에 장비나 복장에 신경 쓰고 브랜드까지 따지면 그리 쉽지 않은 금액이다. 그렇다고 운동의 효과가 뛰어난 것도 아니다. 골프를 잘 치기 위해 따로 운동을 하는 정성을 보일 수는 있겠지만 골프를 잘 친다고 해서 유산소나 근력 운동에 딱히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 골프는 참 번잡한 운동이다.
이쯤 쓰고 보니 이 글의 제목이 셔틀콕인 것이 살짝 민망해진다. 골프에 저항(?)하는 마음으로 나는 배드민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한국에 있을 때 동네 뒷산에 종종 놀러 가곤 했는데 산책로 한 쪽으로 배드민턴 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운동 기구 몇 개로 구색을 갖추고, 흙바닥에 코트 두 개가 나란히 마련된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들리던 명랑하고 경쾌한 소리가 기억난다. 그것이 주고받는 셔틀콕의 울림이었는지, 주고받는 어르신들의 웃음이었는지 모르겠으나 활기차고 행복한 분위기였음은 틀림없다. 나도 나이가 들면 그 모임에 끼어, 차가운 공기에 겉옷조차 입지 않고 열기를 뿜어대는 그곳에 함께 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배드민턴은 가벼워서 좋다. 채도 가볍고 공도 가볍고 내 마음도 함께 가벼워진다. 나이가 들어도 친구 하나만 있으면 거드름 없이 어디서든 칠 수 있을 것 같다.
시간과 장소에 크게 제약이 없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기왕 네트도 있고 선도 잘 그려진 실내 경기장이면 좋겠지만 집 앞에서도 공원에서도 칠 수 있고 낮에도 밤에도 아무 데서나 자리만 잡으면 칠 수 있다. 배드민턴은 운동량도 상당하다. 가끔 땅에서 발 한 번 떼지 않고 제자리에서만 치는 고수들을 볼 때도 있지만, 나는 가만히 있는 것보다 분주하게 움직이며 공간 안에서 최대한 재빠르게 뛰어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한바탕 게임을 하고 나면 의외로 땀이 많이 나는 운동이다. 배우지 않아도 남녀노소 누구나 시작할 수 있고(물론 좀 더 전문적으로 배운다면 이 운동의 매력도가 한층 더 높아지리라 생각한다.) 장비도 복장도 참으로 간편하다. 경기가 빠르게 이어진다는 것도 내 성격과 잘 맞는 부분이다. 배드민턴은 단출하면서도 강렬하다.
잠시 멈추었던 배드민턴을 새해에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잘 짜인 초록색 경기장은 별 실력이 없는 나도 선수가 된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든다. 학교 다닐 때 배드민턴 수업이 있어서 조금 배운 적이 있는데 딱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왼손을 날아오는 공을 향해 뻗는 자세이다. 정확한 원리는 잊었지만 그런 동작을 취하고 미리 준비하면 공과 채가 만나는 적절한 시점을 찾기가 수월하다. 라켓의 스트링 가운데에 날아오는 셔틀콕의 둥근 머리 부분이 절묘하게 맞았을 때 아주 청명한 소리가 나는데 그 소리가 정말 좋다. 무언가를 획득한 것 같은 쾌감과 함께 모든 것을 내려놓게 만드는 해탈감이 오묘하게 뒤섞인다. 공을 보내고 나면 바로 다음 공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하는 것도 무념무상으로 오직 셔틀콕에만 온 정신을 집중하게 만드는 시간이다.
나는 날아오는 공을 또렷이 관찰한다. 뚫어지게 바라볼수록 셔틀콕은 살아있는 생명처럼 느껴진다. 아마 셔틀콕도 여느 새들과 같이 텅 빈 뼈를 갖고 있겠지. 그렇지 않고서는 저렇게 우아하고 부드럽게 비행할 리 없다. 어느 날은 왔다가 한 대 맞고 다시 가서 한 대 더 맞고 이리저리 치이는 모습이 어쩐지 가엾어 보인다. 셔틀콕이 꼭 내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언젠가 지금보다 더 어른이 되면 그 작은 새를 훨훨 날려 보내줄 수 있을까. 배드민턴을 치며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셔틀콕은 내 마음을 싣고 날아다닌다.
늘 그랬듯 열심히 꾸준히 운동해 보자.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냄새가 나도록. 어느 번잡함도 요란함도 없이. 가볍고 단순하게.
사진 출처: Pixabay. kanishka daham.
작년 인도네시아 오픈(세계적인 수준의 배드민턴 대회라고 한다.)에 안세영 선수가 참가한다고 하여 보러 갔었다. 한 분야의 최고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을까. 멋지다 안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