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만 보시오.
바야흐로 12월이다. 12월은 크리스마스의 계절이다. 나는 거짓말을 못하는 엄마다. 그래서 12월은 힘들다. 여기까지 말하면 우리끼리 무슨 말인지 대충 알 것이다. 이 글은 철통 보안 대외비로 쓰고 있는 중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면 이제 눈치껏 알 때도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심을 다해 산타를 기다리는 아이들을 보면 험난한 세상 너무 순진한 건 아닌지 걱정되면서도 그 동심이 깨지는 날이 곧 올 것 같아 마음이 조마조마해지곤 한다. 나는 어린이라는 세계의 끝, 절벽 근처까지 가면 떨어지지 않게 잡아주려고 지키고 있는 호밀밭의 파수꾼 같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에도 산타가 왔을까. 나는 기억이 없다. 어렴풋이 둥근 철제상자에 들었던 사탕을 한번 받았던 것 같은데 몇 살이었는지 그게 진짜 산타의 선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산타로부터 선물을 받지 못한 나는 어떤 아이였을까. 처음부터 그 존재를 믿지 않았을까 아니면 매년 기대가 실망으로 변해갔을까. 언제부터 산타가 오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을까. 다 크고 나서 엄마한테 물어보고 싶었는데 물어보는 게 상처일 것 같아 늘 모른 체로 자랐다.
우리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산타를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해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무엇을 받고 싶은지 친구들과 서로 이야기 나눌 정도로 자라면서부터 산타의 선물은 당연한 의식이 되었다. 내 마음에서 미처 자라지 못한 산타의 서사를 생각해 보면 새삼, 정말 환상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밤 사이 산타가 우리 집에 다녀간다. 산타는 요정들과 함께 세계 모든 어린이들을 위한 선물을 준비한다. 크리스마스날 아침에 일어나면 소원하던 선물이 짜잔 기다리고 있다.
눈을 뜨고,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선물이 놓여있는 것을 확인했을 때 느끼는 짜릿함과 신비로움은 아이들이 산타할아버지를 그토록 기다리는 이유이다. 산타할아버지 드시라고 놓아두었던 멘토스 5알이 정말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흥분해서 할 때 엄마는 조용히 있어야 한다. 엄마는 그 모든 일을 산타할아버지와 의논하여 비밀리에 처리하여야 한다.
아이들의 생각도 성장하고 있으므로 산타에 대해 매년 더 어려운 질문을 받게 된다. "엄마는 산타가 있다고 믿어?"라는 질문은 아이들이 꽤 크고 나서 처음으로 땀이 삐질삐질 나게 했던 것이었는데, "산타를 믿는 사람에게는 진짜 있는 거야."가 내 최선의 대답이었다. 논리적으로 따지자면 구멍이 숭숭 뚫린 답이었음에도 설레는 마음 가득했던 아이들은 너그럽게 넘어가주었다. 최근에는 집집마다 선물의 크기가 다르다는 지적이 있었다. 나는 절대 비싼 선물을 준비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우리 아이들은 마음이 부자이고 산타는 정말 어려운 친구들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산타에게서 고가의 선물을 받는 친구들이 있었던 것 같다. 왜 친구는 형편이 어렵지도 않고 특별히 착한 행동을 하지도 않는데 그런 선물을 받는지 궁금해했다.
산타에 대한 질문 세례만큼이나 매년 이맘때 겪는 난관은 갖고 싶은 선물을 파악해 내는 일이다. 지인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산타에게 받고 싶은 선물을 미리 써 놓아야 한다고 했다는데, 그런 좋은 아이디어를 찾지 못했던 나는 결국 떠보기 전략으로 매년 눈치 싸움을 해왔다. 산타할아버지가 꼭 소원하는 선물을 주지 않을 수도 있다고 전제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갖고 싶은 것을 해주고 싶은 부모 마음은 여러 번 아이들의 의중을 떠보게 된다. 크게 생각하고 있는 선물이 없거나 마음이 이랬다 저랬다 변할 때, 나는 또 한 번 땀이 삐질삐질 난다.
지난해는 여름나라에 와서 처음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였다. 여전히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데 건물에는 크리스마스 리스와 호두까기 인형에 나올 것 같은 병정들이 장식되어 있었다. 산타할아버지도 바캉스 차림으로 방문해야 할 것 같은 이곳에서 아이들은 인도네시아 루피아로 가격이 표시된 선물을 받았다. 산타할아버지도 그 나라에서 구할 수 있는 제품만 줄 수 있다고 덧붙인 설명은 좀 어색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산타할아버지가 양말아래 선물을 두 개 두고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포장된 선물이 하나 더 있었다.
우리 아이들은 엄마는 어렸을 때 산타할아버지한테 무슨 선물을 받았었는지 늘 궁금해했는데 나는 정말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안 받았다고 하면 엄마 같이 착한 아이가 왜 안 받았을까 이상하게 여길 것 같고 무엇을 받았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으니 그냥 기억이 안 난다고 했던 것 같다. 아이들은 놀란 표정 연기를 하며 마지막 선물 하나를 뜯어보라고 나에게 말했다. 늘 공부하는 엄마를 위한 공책과 볼펜 그리고 산타로부터 온 편지가 들어있었다.
추신은 이랬다.
P.S. Now you believe Santa, right?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진짜 산타가 올 것 같다. 루돌프와 8마리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사진 출처: Jeremy Kyejo.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