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모임 3
집안일에 게으른 내가 설거지를 좋아할 리 없다. 그러다 보니 그릇 역시 씻기 편한 모양을 선호한다. 그저 둥글고 넓은 접시나 공기들이 좋다. 그래서 각이 지거나 입구가 좁은 그릇은 나의 핀잔을 받기 일쑤다. 특히 남편과 팽팽하게 대립하는 부분이 하나 있는데, 퇴근 후 시원하게 마시는 맥주 한 잔을 좋아하는 그 사람은 언젠가 번들 할인 행사에서 맥주와 함께 딸려 온 폭이 좁고 길쭉하게 생긴 아사히 맥주잔을 선호한다. 수제 맥주집에서나 등장할 법한 그 잔은 수세미를 쑤셔 넣어도 내 손이 바닥까지 닿지를 않아 세척하기 불편한 게 이만저만 아니다. 왜 '쓸데없이' 이런 잔에 먹어야 하느냐는 투덜거림에 본인이 설거지하겠다고 큰소리쳤지만 수돗물로 몇 번 휘휘 헹궈 엎어놓은 잔에는 여전히 잔여물이 남아 있곤 했다.
한 번은 동서가 신혼 때 그릇을 고르는 취향을 보고 놀란 적이 있는데, 정성껏 차려 준 음식이 담긴 그릇들은 모양자에서나 보던 물결 모양의 구부러진 사각형이었다. 독일 브랜드 빌레로이앤보흐의 한 제품 라인이었는데, 그것들을 보는 순간 반사적으로 '설거지하기 어렵겠군'하고 생각했다. 설거지에 정성을 쏟고 싶은 마음이 없기에 세심하게 다뤄야 하는 고가의 제품이나 깨지기 쉬운 소재보다는 휘뚜루마뚜루 편하게 쓸 수 있는 코렐이 좋다. 고무장갑에서 미끄러져 몇 번 개수대에 떨어져도 내 심장만 철렁할 뿐 멀쩡하게 본인의 위용을 뽐내는, 조금 밋밋하고 촌스러운 그 그릇을 애용할 수밖에 없다. 모든 부분의 곡선 처리가 얼마나 부드러운지, 입구는 또 얼마나 넓적한지, 크기는 또 얼마나 넉넉한지.
나를 담아내는 그릇이 있다면 그것은 코렐처럼 넓고 튼튼했으면 좋겠다. 밖에서 얻어맞고 터져도 단단해서 깨지지 않고, 마음속에 내키지 않는 불편함을 품어도 별일 아닌 듯 넘길 수 있도록 큰 그릇의 사람이 되고 싶다. 어떤 문제가 닥쳐도 받아들일 공간이 충분해서 다루기에 부족함이 없고, 우연히 찾아온 기회도 반갑게 맞이할 수 있도록 넓은 그릇의 사람이 되고 싶다. 뾰족뾰족 모가 나서 다루기 어렵고 입구가 좁아 내면까지 드나들기 힘든 그릇이 되기는 싫다. 차라리 '달항아리' 정도는 되어서 그 안에 모든 것을 품고도 여유로울 만큼 마음과 생각이 광대했으면 좋겠다.
'부자의 그릇(이즈미 마사토 저)'을 읽은 적이 있다. 저자는 자신이 다룰 수 있는 돈의 크기가 사람마다 다르다고 말한다. "돈은 그만한 그릇을 가진 사람에게 모여든다." 그런데 어디 돈에 대한 것뿐일까. 인생의 모든 면이 그렇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그릇 크기만큼의 세상을 산다. 그릇이 커지면 나에게 더 큰 세상이 들어오고 그릇이 작으면. 그것뿐이다. 모양도 마찬가지이다. 더 많은 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입구가 넓고 안이 깊으면 좋겠다.
나의 그릇을 생각해 본다. 구획이 나누어진 우리 아이들 도시락통 같다. 하나의 그릇이 여러 개의 칸으로 분절되어 서로 다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넘어가려다 언젠가 막히고, 무엇을 어디에 담아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한다. 불편함은 반찬 칸에 즐거움은 과일 칸에 담기고 나머지는 섞여버려 제자리를 잃는다. 설거지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칸막이 사이 틈새에 남은 것들이 지워지지 않는다. 잠시 눈을 감고 다시 그려본다. 질이 좋은 붉은 흙 한 덩어리를 반죽한다. 반죽을 물레에 올리고 상상하던 그릇을 성형한다. 뜨거운 가마에 넣고 굽는다. 초벌이 끝난 그릇에 유약을 바른다. 그리고 다시 한번 단단하게 굽는다. 달항아리만한 그곳에 나는 편안하게 담긴다.
아이는 자라면서 울퉁불퉁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기쁘게 받을 일조차 거칠게 튕겨낼 때가 있다. 자신의 감정에 갇혀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거나, 정성을 들여야 하는 부분을 대충 넘겨 남는 것 없이 비어버릴 때도 있다. 부모로서는 참 힘든 부분이다. 하지만 아이 역시 자신의 그릇만큼 세상을 받아들인다고 생각하니 마냥 속이 끓는 일은 아니다. 그것이 너의 그릇이다. 엄마는 아이가 더 큰 그릇의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지만 달항아리를 선물할 수는 없다. 내가 낳아 키우고 있지만 자신의 그릇은 결국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각자'이다.
"지난번 도자기 공방에 갔을 때 선생님이 알려주신 코일링 기법으로 멋지게 그릇을 만들었잖아. 점토를 돌돌 말아올려 모 나지 않게 다듬고 이음새를 메워 튼튼하게 빚었지. 뚜껑에 네가 좋아하는 찍짝이 모양까지 만들어 붙였으니 그것이 딱 너의 그릇이 되었어. 엄마도 마찬가지야. 아직 엄마의 그릇이 완성되지 않았다고 생각해. 우리는 평생토록 자신의 그릇을 만들어가는 중인가 봐. 엄마는 나의 그릇이 더 많은 것을 품어낼 수 있기를 바란단다. 그 안에 담겨 신나게 헤엄칠 수 있도록 말이야. 그처럼 너의 그릇도 더 크고 더 깊게 만들어갔으면 좋겠어. 마음에 회오리가 몰아쳐도 다 받아줄 수 있도록. 세계를 밝고 긍정적인 눈으로 볼 수 있도록. 그리고 그 커다란 그릇에 담겨 세상을 마음껏 누비렴. 그렇게 각자의 그릇으로 세상을 살아가면 좋겠다."
사진 출처: Pixabay. Vilius Kukanausk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