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한식 요리에서 밥이 달콤한 경우는 거의 없다. 아니,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약밥이 있는데 약밥은 식사라기보다는 간식에 가까운 느낌이다. 예를 들어, 비빔밥은 매운 고추장 맛이 주(主)고 김치볶음밥 역시 매콤한 맛이 주요하다. 중국집 볶음밥도 짠맛이 주(主)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달콤한 맛이 나는 파인애플 볶음밥이라니, 이국에서 온 만큼 이국적인 맛이다.
그 이국적인 맛 때문일까, 파인애플 볶음밥을 처음 먹은 날이 기억난다.
나는 회사를 다니기 전 졸업을 하고 공부를 더하고 있었고 친하게 지내던 후배인 A는 취업을 했다가 꿈을 이루기 위해 다른 일을 하던 때였다. 그때 A가 이사를 했다며 집들이를 했다. 우리가 함께 다녔던 학교에서 지하철로 두정거장쯤 떨어진 곳이었다. 지방에서 상경한 우리들은 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그렇게 학교 언저리에서 맴돌며 살았다.
서울로 대학에 온 뒤 우리들의 집(방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은 기숙사, 원룸, 하숙집이었다. 동생과 함께 살기 위해 A가 새로 이사한 집은 방이 두 개고 주방과 거실이 있는 신축 빌라였다. 거기다 언덕배기에 있어 집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아주 좋았다. 거기에 집은 신축이라 깔끔하고 넓었다. 그때의 내게는 그 집이 ‘집’이라고 부를 만한 곳으로 보여서 A가 이 도시에 정착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 감격스럽기도 했다.
이십대 중반의 우리에게는 그 정도만 되어도 성공처럼 느껴졌다. 방 한 칸에 침대며 책상, 옷장, 싱크대, 냉장고가 다 있는 원룸에 사는 우리들에게는 거실 겸 주방이, 큰방과 작은 방이 각각 있는 그 빌라가 너무나 넓고 좋은 집으로 생각되었으니까.
A는 그런 집에 우리를 초대한 것이었다. 직접 요리를 준비하기까지 했다. 주방 도구도 별로 없었는데 식탁에는 그럴싸한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당시만 해도 태국 음식이니 베트남 음식이 대중적이지 않을 때라서 파인애플 볶음밥은 조금 낯설었다. 그런데 A가 만든 볶음밥은 파인애플과 밥, 새우만 들어갔을 뿐인데 단맛과 짠맛이 절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먹자마자 와, 맛있다는 말이 바로 나왔다. 거기다 쌀국수도 있었다. 쌀국수에 넣을 숙주며 채썬 양파까지 다 준비해서! 이런 음식을 어떻게 했냐고 물으니 재료를 다 판다며 A가 웃었다. 비법은 '굴소스'라고 했다. 요리를 좀 하게된 요즘에서야 굴소스가 비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해도 우리를 위해 아침부터 부산스럽게 준비했을 A가 훤히 보였다.
햇살이 좋던 초여름의 어느 날, 창밖으로 펼쳐진 초록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산과 그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모든 것이 너무 좋았다. A가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먹으며 초대받은 다른 친구와 나는 연신 '좋다, 너무 좋다' 고 했다.
그때 나는 A에게서 좋은 일이 있을 때 친구를 초대하는 것을 배웠다. 꼭 좋은 일이 없더라도 좋아하는 사람들을 불러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이 얼마나 멋진지 알게 되었다. 밥을 해 먹이는 것이 얼마나 크고 넉넉한 마음인지 배운 것이다. 부족한 내 곁에 마음의 품이 넓고 고마운 사람들이 있어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닮아간다.
나도 최근에 이사를 했다. 그동안 여기저기 이사를 다니면서 A를 초대했는데 집들이가 성사됐던 적도 있고 아닌 적도 있다. 이번에는 A가 꼭 와줬으면 한다. A를 초대해서 나도 한끼 잘 차려 먹이고 싶다. 이런 저런 사정(코로나라던지!)이 있어 아직 집들이를 못해 안타깝지만, 그 날이 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