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이상하게 모든 일에 의욕이 없어진다. 찬 바람에 따라 마음이 으슬으슬 해지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런 생각들을 하다가 ‘마음이 허방을 밟는 것 같다,’ 는 문장이 떠올랐다. 내 마음이 딱 그랬다. 우리 지역 사투리인가 궁금해져서 네이버에 검색을 해보았는데, 뜻 밖에 박완서 소설어 사전에 나오는 단어였다. 박완서 선생님 수필집 ‘두부’ 나오는 단어란다.
뜻밖의 결과에 깜짝 놀랐다. ‘두부’라면 내가 고등학교 때 샀던 책이다. 지금도 본가에 고이 모셔져 있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박완서 선생님의 열렬한 팬이었다. 박완서 선생님은 꽤 오랫동안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였다.
어릴 때의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면서도 내가 글쓰기에 그다지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중학교 때 남몰래 노트에 소설을 썼지만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혼자만 간직했다. 하지만 글을 쓰는 것이 좋아서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매일 노트 한 장 씩 일기를 썼다.
그런 내게 박완서 선생님은 롤모델이었다. 40세에 등단하여 눈부시게 문학의 꽃을 피워나간 선생님을 보며 언젠가 나도 계속 쓰다 보면 작가라는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 작가에 꽂히면 그 작가의 책을 다 찾아 읽는 버릇대로 그때도 선생님의 책을 다 찾아 읽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남자네 집' 뿐만 아니라, '저문 날의 삽화'라는 소설집까지 찾아 읽었다. 고등학교 때 발간된 '두부'라는 수필집도 예외는 아니어서 용돈을 모아 사서 열심히 읽었다.
그때 읽었던 책의 표현이 기억에 남아 십여 년이 지난 지금의 내 마음을 마춤하게 설명해 주다니, 어린 시절의 경험의 영향력이 너무나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때 읽은 책의 단어, 문장이 무의식에 박혀 우연찮게 튀어나오는구나, 하고 놀랐다. 한참 자라나는 말랑말랑한 뇌에 사람이, 이야기가, 책이, 영상이 미치는 영향력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때의 나는 박완서 선생님의 어떤 점에 그렇게 매료되었는지 궁금해진다. 특히, '저문 날의 삽화'라는 단편집은 중년, 노년의 삶을 그려내고 있는데 고등학생이 그 책의 어떤 점에 열광했던 것일까. 선생님이 그려낸 삶의 위트와 아이러니, 쓸쓸함에 대해서 그 나이에 공감했던 것인지 궁금해진다.
여전히 박완서 선생님은 나의 롤모델이므로, 나는 계속 쓸 것이다. 마음이 허방을 밟고 있는 이 시기가 지나고 다시 열심히 써보겠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