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친구 만들기 프로젝트
행복하게 살고 싶다.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아이를 낳든 낳지 않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인생 제일의 목표다. 회사에 다닌 이후로 스스로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인생 최대의 목표이자 고민이 되었다.
행복을 고민하게 된 것은, 30대에 이르러 자존감이 높아진 것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존감이라는 단어에 대해 개개인마다 다르게 정의할 수 있지만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고 아끼는 마음이라고 나름의 정의를 내렸다.
첫 직장에서 나에게 함부로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역설적으로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함부로 굴려지는 상황에서 스스로의 귀함을 생각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중학교 때쯤 교과서에 읽었던 '자중자애'라는 말을 생각했고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말인지 깨달았다. 나에게 함부로 하지 않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 인간으로 존중해주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이직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내가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과 그런 나를 소중히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새록새록 자라났다.
나의 행복에 대해 생각하면서 내가 무엇을 하면 행복한 사람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행복하지 않은 상황은 피하고 행복한 상황에 나를 두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스스로와 친해지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 중이고 최대한 편하고 좋은 환경에 스스로를 두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내가 어떠한 환경에서 편하게 지내는지, 어떠한 사람과 교류하는 것을 편하게 생각하는지를 예민하게 느끼고 기억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나는 아주 내향적인 사람이다. 혼자만의 시간에서 에너지를 얻는 타입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최근에 나를 관찰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내향적이지만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혼자 있는 것도 좋아하지만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그게 나였다. 예를 들어 영화는 누군가와 함께 보고 싶어 한다. 혼자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를 보고 나서 다른 사람과 함께 감상을 나누고 공감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내성적이지만 관계지향적인 사람, 그게 나였다. 이런 성향에 대해서 내 맘처럼 설명한 책이 있다. 이전에도 언급했던,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에서 이 부분을 읽으면서 무릎을 탁 쳤다. 이게 바로 난데!
김하나는 친구들의 중심에서 모임을 만들고 이끄는 작은 대장 같은 사람이었다. 자기만의 세계관이 확고했으며, 그 생각들은 개인에 갇히기보다 공동체 지향적이었다. 물론 함께 살다 보면 밝음 속의 어둠이나 사람들 뒤의 고독을 목격하게 되는 순간들도 있다. 내향성이 강하고, 혼자 책 읽는 시간에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 거꾸로 커뮤니티의 가치를 추구한다는 데서 인격의 다면성을 발견하게 된다.
-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p26.
그러면서 또 생각했다, 나에게는 동네 친구가 필요하다, 혼자서도 잘 지내지만 관계지향적인 사람, 누군가와 이렇게 잘 지내고 있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사람, 그게 나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나, 친구, 친구가 필요하다!
동네 친구 만들기 프로젝트의 첫걸음으로 많이들 사용하는 어플을 사용해서 우리 동네 근처에서 열리는 독서모임에 나가보았다. 내가 참가한 모임은 동네에서 꽤 오래 명맥을 유지하며 이어오는 모임이었다. 단톡방 참가자는 대략 100여 명이었고 실제 모임에 나가서 보니 20명 정도가 모임에 참여 중이었다. 격주 수요일마다 정기 모임이 있었고 때때로 번개로 영화를 보거나 식사를 하거나 하는 듯했다.
이 모임은 모임마다 책을 정해서 하기보다는 각자 자유롭게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내가 선택한 책은 ‘일 잘하는 사람은 단순하게 합니다. (박소현, 더퀘스트, 2019.)’였다. 회사에서 일을 좀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도움이 될까 싶어 고른 책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가져온 책은, 최은영 작가의 '내게 무해한 사람', 무라카미 하루키의 '1984' 같은 책들이었다.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고 음료를 주문하고 책에 대해 한 명씩 돌아가며 느낀 점, 추천할 만한 점 들을 이야기했다. 테이블 당 6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했는데,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나와 동갑인 여자분, 역시 동갑인 남자분, 나보다 한참 어린, 아직 신입사원인 여자분, 대학원 다니는 남자분 등등, 다들 책 이야기를 하며 눈을 반짝이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내가 꽤나 낯을 가리는 스타일이라 모임이 마냥 편하다, 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나쁜 건 아니었다.
7시 반쯤 시작한 모임은 9시 반쯤 끝났고 끝나고 뒤풀이가 있다고 했다. 다음날 일찍 출근해야 할 일이 있어서 뒤풀이에는 참석을 못하고 내 테이블에 같이 있었던 남자분과 걸어서 귀가를 했다. 걸어서 집에 귀가하는 것, 이런 것이 동네 모임의 묘미로구나, 싶었다.
함께 걸어 집으로 돌아갔던 남자분은 최근에 연남동으로 이사를 왔다고 했다. 아직 못 가본 곳이 많다면서 새 동네가 많이 기대된다고도 했다. 나도 아직 못 가본 곳이 많다고 했고 모임에서 친한 사람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도 이야기했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 어플을 켜고 오늘 모임의 인증샷을 구경했다. 다음 모임에도 또 가봐야지, 하는 생각과 오늘 하루가 꽉 찬 느낌이 들어 뿌듯했다. 프로젝트의 시작이 나쁘지 않았다. 초여름의 공기와 함께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