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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끼 Jun 21. 2020

사실, 모든 것이 완벽하지만

동네 친구 만들기 프로젝트


사실, 모든 것은 완벽했다. 단 한 가지, 연애만 빼면.

      

직장 생활을 한 지 6년 차, 직장 생활을 한 이래로 모든 것이 가장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했다. 꾸준히 운동을 한 덕분에 하루가 활기차고 잠도 잘 잤다.

업무도 난이도와 강도가 적당했다. 너무 쉬워서 흥미를 잃게 되지도 않았고 도무지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방향이 없지도 않았다.

인간 관계도 그랬다. 내 마음 깊은 곳, 찌질한 면까지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 서넛, 사회생활을 한 이후로 사귀게 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즐거운 활동을 함께할 수 있는 친구 서너 명으로 마음이 안정됐다.

그리고 가장 오랜 친구인 여동생이 있었다. 내가 무슨 소리를 하든 내편인 사람, 여동생 말고도 가족들과도 사이가 좋았다.


그런데 연애는 도무지 풀리지가 않았다.

드문드문 들어오는 소개팅은, 내가 상대가 맘에 들면 그가 내가 맘에 안 들었고 상대가 나를 맘에 안 들어하면 내가 상대에게 끌리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눈이 높나 따위의 말을 했지만, 어쩌겠는가, 이렇게 생겨먹은 인간인 것을. (잘 생긴 사람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끌려하는 외모가 있다. 이런 경우, 소개팅을 통한 연애는 멀고 험난해진다.)     


토요일에는 대학원 수업을 들었기에 실질적인 휴일은 일요일 딱 하루였다.

사실 무료하지 않은 인생이다. 오히려 바빴다. 주중에는 일을 하고 저녁에는 야근 아니면 과제를 했다. 그리고 토요일은 하루 종일 수업을 듣고 나면 녹초가 됐다. 그리고 일요일, 하루 종일 침대에 늘어져서 쉬는 걸로도 충분한 시간이었지만, 심심했다.      


잠이 많긴 하지만 나는 꽤 성실한 인간이다. 혼자 살면서 처리해야 하는 일들을 처리하는 걸 미뤄두지 않는 편인 데다, 바쁠수록 성실하게 짬을 내어 일상의 틈을 메우며 사는 인간이다. 이런 모습이 건강해지면서 더 강화되고 있었다. 심심한 것을 견딜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연애는 요원했다. 그러던 중 친구가 보내 준 책을 한 권 읽게 된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김하나, 황선우 저, 위즈덤하우스(2019)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은 친구가 연애 따위 뭣이 중하냐며 선물해준 이 책은, 재미있었다.

(하지만 전 직장 동료인 그녀는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

와, 세상에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정말 많구나 하는 깨달음과 이런 삶도 생각해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은 사회적 정서적 안전망이다.” 김하나가 늘 강조하던 이야기처럼 우리는 서로 의지하며 같이 살고 있다. 다른 온도와 습도를 가진 기후대처럼, 사람은 같이 사는 사람을 둘러싼 총체적 환경이 된다.  
-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pp.26.     



이 책은 마치 신대륙과 같았다. 그래, 마음 맞는 사람과 함께하는 결혼도 분명 너무 좋지만, 만약에 그게 어렵다면, 새로운 삶의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겠구나,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과도 같은 깨달음이었다.      

책에서처럼 부부가 아닌 성인이 함께 집을 구해 살아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두 사람도 고민하는 지점인데 누군가 결혼을 해서 집을 나가게 되거나 하는 등의 이벤트에 대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었을 때, 친구와 함께 집을 구해 살아가지는 못하더라도 친구와 가까운 곳에서 살면서 사회적 정서적 안전망을 구축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사랑하는 우리 동네에 친구가 생기면 정말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성실한 데다, 은근 실행력이 있는 나는, 이러한 생각에 동네 친구 만들기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붙이고 동네 친구를 만들 방법을 물색하게 된다.





동네 친구를 만들기 위해 생각한 방법은 우선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한국 사회에서 인맥을 만드는 가장 쉽고도 간단한 방법, 종교다.

오래전 성당에서 세례를 받은 바 있기에 가장 쉽게 떠오른 곳은 성당이었다. 성당 청년부에 가자! 걸어서 3분 거리에 성당이 있고 내가 사는 동네는 젊은 이들이 많은 곳! 동네 친구를 사귈 수 있을 것만 같다.      


두 번째는 소모임이었다. 독서모임이니 취미 모임들이 생각났다. 안 그래도 후배가 소모임 어플을 추천해서 이미 가입해 둔 바 있었다. 그래, 모임에 참석해 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향적인 사람이다. 내향성의 정도가 아주 높은, 이를 테면 MBTI 검사에서 내향성이 가장 극단에 있는 정도의 내향적인 사람이다. 그런데 오랜 세월 동안 내가 관찰한  나는, 내향적이면서 관계지향적인 사람이다. 혼자 있으면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관계 맺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여럿이 있는 자리를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사람을 사귀고 알아가는 것을 좋아한다.

    

동네 친구를 만들려면 어떤 모임에 들어가야 할까, 고민이 되었다. 정말로 좋아해서 하는 활동이 아니고는 나중에는 흥미가 떨어질 것이므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모임에 참가하기로 한다.


내가 좋아하는 활동은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정적인 것이고 대부분 여자들이 좋아하는 것이었다.

절대적으로 여성비가 높을 활동이지만 내 목적은 연애가 아닌 동네 친구를 만드는 것이므로 과감히 참여해 보기로 한다. 역시나 좋아하는 활동을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 진심으로 즐길 수 있다.      


소모임 어플을 통해 독서 모임과 영화 모임에 가입한다. 두근두근, 피드를 보니 딱 마지노 선이다. 94년생에서 84년생까지만 가입할 수 있다. 내 나이는 중간값에서 훨씬 높은 쪽이지만 뭐 어때, 하는 생각이 든다. 책 읽는데 나이가 문제인가, 친구를 사귀려는 거니까 문제 되지 않는다. 가입 신청을 하고 다른 사람 프로필을 훑어본다. 동갑 여자분도 있다. 마음이 좀 편해지는 것 같다.


과연 동네친구와 함께 퇴근하고 편하게 맥주 한잔 할 수 있을까? 주말에 동네 공원 조깅을 함께 할 친구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프로젝트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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