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영화 관객 관찰 후기
주말. 아내와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를 보기로 하고, 어두운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옆자리 두 개가 비어 있었다. 한쪽 자리가 비니 그냥 편했다. 성격이다. 빈자리는 극장의 정중앙. 나름 좋은 자린데 과연 비겠나 싶었다. 누군가 오겠거니 생각하던 찰나. 어르신 두 분께서 약간의 사투리가 섞인 수다와 함께 입장하셨다. 이윽고 주섬주섬 자리를 찾아 앉으셨다. 옆자리였다. 얼핏 보기에 일본 로맨스 영화를 보러 오실 법한 차림과 말투는 아니었다. 왜 있지 않은가. 왠지 소녀소년스런 감성의 일본 청춘 로맨스 영화보다는 티브이의 일일연속극(이라 쓰고, 막장드라마라고 읽는...)을 보실 법한. 한편으론 어떤 연유에서인지 이 영화를 보러 오셨을까 하는 궁금함과 그래도 설마 이영화를 고어물로 알고 오신 건 아니겠지 하는 걱정이 겹쳤다. 한편으론 겉보기와 달리 소녀소년한 분들이신가 보다 했다. 편견과 선입견이란 게 참 무서운 거구나 하고 생각할 무렵, 광고가 끝나고 극장이 어두워졌다. 영화가 시작하고 두 남녀 주인공이 등장하면서 몇몇 대화가 오갈 즈음. 이 영화의 내용이 뭔지 감이 올 법 즈음. 스크린 구석에서 뭔가 꼼지락거리는 물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발가락이었다. 그것도 심히 꼬물락거리는, 누런 발목 발가락 양말. 옆에 어르신은 왼발을 꼬고 앉아 연신 발가락을 꼬물락 거리고 계셨다. 약간의 불쾌감에 힐끔 어르신 얼굴을 봤다. 옆얼굴에는 이렇게 쓰여있는 듯했다.
'이 연놈들은... 당최 뭐하는 짓들이랴......'
어르신은 간간히 자세를 바꾸셨다. 양반다리도 하시고, 한쪽 다리를 올려 한 손과 함께 턱을 괴기도 하시고, 몸을 앞으로 쭉 뺀 뒤 수그려 양 팔꿈치를 무릎에 괴기도 하셨다. 고개는 쭉 빼서 영화를 감상하셨다. 마치 극장 안으로 빨려들아갈 듯이. 저런 다양한 영화 관람 자세가 있다는 건 미쳐 생각 못했다. 얼굴 표정은 변함없었다. 무념무상의 경지에 다다른 듯한, 그런 얼굴이었다. 하품과 함께 간간히 양옆을 힐긋힐긋 쳐다보기도 하셨다. 아마 이런 의미 아니겠는가.
'얘네들은 이런 걸 잘도 보네...?' 혹은 '조는 애들 없나?'
나도 영화도 보랴 옆자리 어르신의 동태도 관찰하랴 매우 분주하게 눈동자를 굴렸다. 어르신의 발가락 양말은 초반을 지나 중반 즈음에 접어들자 보지 못했다. 영화의 두 주인공은 샤방샤방, 오글오글한 썸을 타고 있었다. 어르신은 곤히 주무셨다. 감사하게도 코는 골지 않으셨다. 두 남녀 주인공이 비로소 장고의 장고 끝에 가까워질 무렵. 시간이 한 시간쯤은 훌쩍 지났을 즈음부턴 나도 영화에 집중하느라 어르신의 동태를 파악하질 못했다. 이윽고 영화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극장에 밝아지자마자 옆자리 어르신은 말하셨다.
"이봐. 인나. 영화 끝났어."
어르신 옆자리에 앉으신 어르신도 주무신 모양이다. 푸욱. 두 분은 번개 같이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영화 크레디트를 보며 극장이 한산해질 즈음, 기억에 남은 건 흩날리는 벚꽃과 미모의 두 남녀 주인공. 그리고 꾸물거리는 발가락이었다.
조금 생각해보면 이해 못할 일도 아니었다. 전에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보러 같을 때, 극장 안에 축농증 바이러스가 돌았던 모양이었다. 영화 말미쯤, 극장 안은 여기저기서 킁킁거리는 소리와 함께 축농증 증세를 보이는 분들로 가득했다. 평소 개코 소리 들으며, 온갖 날씨 변화를 코로 먼저 감지하던 나였지만, 그날만큼은 축농증 증세가 없었다. 유독 그날만큼은 그러했다. 뭔가 통하는 게 없었던 모양이다. 그분들도 그런 것 아니었을까. 막장드라마의 드라마틱한(?) 전개에 익숙해진 영향 아니려나.
나도 사실 그런 구석이 없진 않았다. 남자 주인공인 경우 그 미모로 과연 아웃사이더 행세가 되겠느냐는 근본적인 의구심부터 영화 말미에 울어도 되냐고 묻더니 꺼이꺼이 우는, 나름 기가 막히는 상황까지 여러 부분에서. 특히 울어도 되냐고 울면서 묻는 건, 마치 '키스해도 되니?' 같은 질문 부류 아닌가. 여주인공은 또 어떠한가? 남녀 단둘이 멀리 여행 갔다 함은 서로 호감이 있다는 뜻인데, '진실과 명령' 게임은 웬 말인가. 다만 이 모든 이해 불가능한 설정과 대사, 진행들이 모두 두 남녀의 미모와 흩날리는 벚꽃 눈발 감상에 눈 녹듯이 이해됐다. 성격상 간혹 있긴 한데, 느낄 때마다 기이한 경험이다. 이런 부류의 학원청춘 순수 로맨스물을 보며 비판할 거리를 생각하는 게 왠지 부도덕하다고 느끼는 모양이다.
여하튼 인상 깊은 영화 관람이었다. 영화도, 어느 영화 관객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