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선물과 오래된 미래
남자는 퇴근길에 꽃 한 다발을 샀다. 남자는 기분이 좋다. 특별한 기념일은 아니었다. 일 때문에 들린 꽃집에서 그냥 산 것이었다. 비교적 충동적으로. 필연(오늘 꽃집 가면 사야지)을 가장한 우연(오다 주슷다)이라 하자. 한 손 두툼히 잡히는 꽃다발. 의외로 무겁다. 남자는 꽃다발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본다. 결코 꽃 상태가 좋은 가를 판단하기 위한 게 아니다. 결제는 이미 했다. 집까진 아직 1시 반 30분 정도 더 운전해야 했다. 저녁시간 맞추려면 갈 길이 멀었다. 남자는 꽃을 차 뒷좌석에 잘 세웠다. 눕히면 행여 꽃 모양이 망가질까 봐. 차 안에 꽃향기가 은은하게 퍼졌다. 노래를 틀었다. 이럴 땐 잔잔한 재즈음악이다. 밖의 풍경은 노을 지는 저녁이었다. 남자는 노을 지는 붉은 산 능선 너머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배고프다.'
길고 긴 운전 끝에 남자는 집에 도착한다. 꽃을 들고 긴 아파트 현관을 지나 엘리베이터 앞에 다다랐다.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에서 부부가 내린다. 둘의 시선이 꽃으로 향했다. 남자. 아랑곳할 것 없이 유유히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번개같이 층 버튼을 누르고 연신 닫기 버튼을 눌러댄다.(다다다다다다) 이윽고 문이 닫히자 남자는 안도의 숨을 내쉰다. 남자는 되뇐다. '오늘만 참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현관문을 열어젖힌다. 그리고 외친다. 낮게.
"여보~ 나 왔어."
구석 부엌에서 여자가 외친다.
"여보~ 왔어?"
여자. 앞치마 차림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남자. 이때를 놓치지 않고 뒤에 숨겨놓은 꽃다발을 여자 면전으로 돌진시킨다. 여자. 꽃다발을 보고 흠칫 놀란다. 그리고 정적. 그리고 다시 정적. 아. 1초의 정적은 얼마나 긴 시간인가. 잠시의 정적 동안 여자의 눈동자는 번개같이 두리번거렸다. 그렇다. 여자(아니 이 가시나) 무엇인가 생각하고 있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앞서 다른 글에서도 얘기했지만 이런 특수한 경우는 철저히 귀납법적 사고로 추리해야 한다. 연애와 결혼생활 동안 쌓은, 적지 않은 경험들은 보통 이럴 때 써먹으라고 있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3단 논법처럼, 이 여자의 심리도 이런 3단계를 거칠 것이다. 대략.
[와! 꽃이다.] → [근데 이 인간(혹은 녀석)이 갑자기 웬 꽃?] → [혹시...?? 설마...?? 너 또 뭐 샀냐!!]
대충 이런 식의 전개일 게다. 결혼은 불행히도 여자를 목적지향적인 인간으로 변절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런 부류에게 꽃이란 순수히 비목적성 선물일 수 없다. 반드시 딜(?)을 위한 매개체라 인식한다. 연애시절도 그렇지만, 결혼은 영업적 능력을 다분히 요구한다.(난 그것을 '구라와 진실 사이의 작두 타기'라 표현하곤 한다.) 안 그런 사람도 부단히 노력해야 새로운 가족(친가, 시댁, 친척, 등)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그래야 정작 제일 중요한 부부간의 관계도 원만하게 되니 말이다. 원래 내성적이라고 둘러댄들 그다지 도움 안된다.
그렇다. 결혼은 연애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서로 굳게 믿었던 '너란 사람은 이렇지'라는 정의는 그저 연애시절의 짧은 소견이다. 결혼생활은 새로운 환경이며, 사람 또한 적응한다. 쉽게 말해 결혼이란 생활에 적합하도록 사람도 변한다. 예전에야 아예 용돈 타쓰던지 아님 집에서 무단 노숙(?)하며 월급 들어오는 족족 취미생활 내지 연애 자금으로 펑펑 써재끼던 때도 있었다. 다만 이제는 갖은 대출금과 양가 부모 및 일가친척 대소사 비용 및 기본 생활비에 어김없이 매년 다가오는 기념일, 여기에 자녀라도 생기면 양육비까지 챙겨야 한다. 속칭 좋던 시절은 다 가고, 통장 요정으로 거듭날 수밖에 없다. 금수저가 아닌 이상. 그러니 꽃이란 게 더 이상 낭만이 아니라 사치의 영역으로,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갈 궁색한 처지로 절락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꽃집들이 여럿 번성하고 있다 생각하면, 낭만과 로맨스가 사라지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여전히 넘치는 딜(?)로 개개인 간의 거래가 활성화되고 있음에 경제학적으로 기뻐해야 하는 일일까.
남자. 이 모든 상황을 단박에 파악하고 선빵 겸 해명을 날린다. 뭔가 머쓱해하는 표정은 덤이다.
"그냥 사봤어. 별 뜻은 없고"
여자 말한다.
"그래? 어머 예쁘다."
그리고 이내 나온다. 중요한 문장.
"이거... 얼마야?"
"얼마 안 해 ㅎㅎㅎㅎ?"
여자. 머쓱한 표정으로 말한다.
"담부터는 화분으로 사와. 난 화분이 더 좋아."
남자 단박에 의미를 이해한다. 더 저렴하고, 오래 살면서, 살아있는(생물의), 그리고 잘 살릴 수 있는(다른 표현으로 '잘 죽지 않는') 걸로 사 오란 뜻이다. 그러고 보니 전에도 들어본 얘기였다. 그렇다. 남자는 이 짓거리는 해마다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여자는 해마다 반복해서 주의 주지시키고 있고.
남자. 다소 머쓱해진 상황에 꽃 선물의 기회비용을 따져보았다. 당연히 귀납적으로. 쾌락적을 봤을 때, 꽃 선물은 1회용이다. 쉽게 말해 받는 순간 끝이다. 뿌리를 자른 꽃다발은 금방 시든다. 여자들은 꽃이 시든 모습을 보면 우울해지는 모양이다. 자신의 나이 듦을 꽃에 투영하는 모양이다.
남자에게도 일회성 선물이긴 마찬가지다. 주는 순간 끝이다. 바로 잊어버린 뒤 지나가다 꽃이 보이면 '내가 꽃 선물을 했었군.'하고 지나간다. 며칠 있다 그마저 안 보이면 그걸로 끝이다. 언제가 그런 얘기를 한적 있다. 티브이 홈쇼핑과 인터넷 쇼핑은 3번의 쾌락을 준다고. 주문할 때 남이 카드 긁어줘서. 배송 중에 오매불망 택배기사님만을 기다리다 택배 완료 문자가 왔을 때. 그리고 박스의 테이프를 뜯고, 포장지를 뜯는 순간. 비슷한 금액으로 3단계의 쾌락을 점진적으로 느낄 수 있다면 그것 만큼 경제적인 선물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꽃이 가지는 상징성이 있으니, 여러 선물들을 다양하게 변주하며 운영의 묘를 발휘해야 하지 않을까. 본디 능력이 달릴수록, 전략이라도 다양해야 한다. 2002년의 히딩크처럼.
따지고 보면 매해 반복되는 얘기다. 여자는 '꽃 선물은 좋지만 화분으로 사와라' 라 하고, 남자는 '알았다' 한다. 여자는 선물을 받으면서 잔소리하는 것처럼 들리면 곤란하니 최대한 부드럽고 상냥하게 얘기한다. 남자. '그까짓 거 어렵지 않지' 하는 심정으로 알았다 한다. 실제도 어려운 일은 아니다. 기억을 못해서 그렇지.
이 해마다 반복되는, 오래된 대화는 앞으로도 계속되지 않겠나 불길하게 예감해본다. 남자에게 화분이란 조경용 돌덩이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무릇 운전이 핸들 잡은 사람 마음이듯이, 선물도 사는 사람 마음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