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모니터, 그 너머 풍경과 동경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황급히 배를 채우고 자리로 돌아오면 책상 위는 못다 한 일거리로 난장판이다. 남은 점심시간은 이내 못다 한 일거리로 채워진다. 식곤증이라도 몰려올 무렵이면 시간은 이내 1시 정각에 다다랐다. 점심시간의 종착역이다. 졸음을 참으려 고개를 돌렸다. 창 너머의 하늘은 짙고, 짙고, 짙은 푸른색이다. 뒤집힌 수평선 바다를 한참 넋 놓고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창문의 먼지와 얼룩이 보였다. 그 순간 창은 이내 여기와 저 너머의 세계를 가르는 문이 된다. 유리로 된, 세계의 문이다.
그 문은 저 너머의 세상을 보여주지만 그곳으로 가는 것은 막는다. 매서운 비바람을 막아주기도 하지만 잠시라도 그곳을 넘어갈라치면 열어젖히거나 부숴야 한다. 그저 바라보며 만족하거나 아님 부러워하거나. 둘 중 하나다.
가끔 상상하곤 한다. 구름 조금 낀 화창한 하늘. 짙은 레이벤 선글라스. 여유로운 미소. 밝은 색의 카라 티셔츠. 체리색의 클래식 오픈카.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와 금문교. 선선한 바람을 가르며 해변도로를 달리는, 그런 풍경 말이다.
언제쯤 그 꿈들을 모두 이뤄볼까 싶으면서도 그러려면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생각과 이렇게 열심히 일한들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싶은 생각이 교차한다. 언젠가는 해봐야지. 저질러 봐야지. 생각하지만 돌아오는 카드 결제일과 대출잔고를 생각하면 '과연?' 이란 물음표가 떠오른다. 현재를 즐길 것인지 아니면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 현재를 저당 잡을 것인지, 잔인한 이분법의 쳇바퀴는 끝이 없다. 유리로 된 세계의 문은 저 너머 말고도 내 안에도 있다. 먼지와 얼룩까지도.
공상에 빠진 스스로를 자각했다면, 그건 오후 업무의 시작을 뜻한다. 모든 생각은 공상을 떠나 현재로 집중된다. 숫자놀이, 역할놀이, 정치 놀이로 꽉 찬 사무실의 전경은 그것 그대로 한편의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다. '원더'한 순간이라곤 그저 통장 잔고가 늘어나는 매월 어느 날과 마음 맞는 동료와의 잡담, 출근하지 않는 날. 그리고 창 너머의 세계를 동경하며 잠시 생각에 잠기는 순간뿐이다.
세계의 문 반대편에서 본 나는 하루의 대부분을 컴퓨터 모니터만 쳐다보다가 가끔 사무실 밖을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영문 모를 생각에 잠기는, 그런 사람일 게다.
나는 오늘도 세계의 문 앞으로 출근한다. 창 밖 너머 풍경을 동경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