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하러 가는 날

멀고 먼 이발소 가는 길

by 윤단



뒷목에 머리 한 줌이 잡힐 무렵이면, 돌아오는 주말에 할 일이 추가된다. 머리를 깎는 일이다.

중은 아니나, 나 역시 제 머린 못 깎는 처지다. 고로 미용실에 갈 상황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문제는 이걸 꽤나 싫어한다는 점.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아마 잠시도 가만히 있질 못하는, 정신 사나운 성미 때문 아닌가 싶다. 다만, 확실한 건. 도무지 나이를 먹어도 미용실 가는 발걸음의 무거움은 가벼워질 줄 모른다는 것이다.

일단 하기 싫은 일은 미루는 것이 진리라 배웠다. 머리 깎는 일은 하기 싫은 일이니, 내일이 아닌 다음 주로 저 멀리 미루고 본다. 한 주를 엉거주춤 보내고 나면, 그토록 아기다리고기다리던 금요일과 토요일. 있는 그대로 만끽한다. 그런 뒤 찾아온 일요일. 눈을 뜨는 아침부터 미용실에 가야 한다는 의무감에 마음이 무겁다. 어영부영 오전을 보내고, 이래저래 오후를 보내면, 그토록 아쉬운 일요일 저녁 해가 지평선 너머로 뉘엿뉘엿 저문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음을 깨달을 무렵, 목덜미 늘어진 운동복 차림으로 길을 나선다. 터벅터벅.

이때부턴 소위 미용실 투어 내지 미용실 순회라 부를 수 있겠다. 순회 혹은 투어 순서는 단순하다. 가까운 곳에서부터 먼 곳 순. 우선 걸어서 1분도 안될 거리의 단지 내 미용실로 간다. 일단 같은 단지 내 주민으로서 당연한 의리이자 예의라 해두자. 지하실에 위치한 그곳은 평소 지나다니면서 주인장과 눈 마주칠 일이 없어 좋긴 하다. 계단 아래로 긴 복도를 지나 유리문 너머로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 주인장에게 질문을 던진다. 목적은 오로지 하나다. 바로 깎을 수 있는지 여부다. 사실 물어보기도 전에 거울에 반사된 사람들의 머릿수로 판단은 선다. 당연한 얘기지만 일요일 늦은 오후 미용실에는 나 같은 부류(?)의 남자들로 이미 만원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무표정한 표정으로 티브이나 스마트폰을 응시하고 있다. 그들의 얼굴 근육은 흡사 퇴근길의 지하철 좌석의 직장인들 얼굴 주름 구김과 매우 유사하다. 그저 시간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머릿수가 헤아려질 무렵이면 주인장의 표정은 질문의 마침표와 같다. 활짝 웃으면 바로 가능하다는 뜻이고, 표정이 다소 민망해하면 일일드라마 한 편 정도는 봐야 한다는 뜻이 된다. 마음씨 좋은 주인장은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을 안쓰럽게 지켜본다. 나는 다시 오겠다는 뻔한 멘트를 던지고는 문 틈에서 고개를 뺀다.

본격적인 순회는 지금부터다. 길 건너의 미용실로 간다. 이곳은 단지 길목에 있는지라, 주인장과 자주 눈이 마주치는 곳이다. 물론 시선이 오래 머물리 없다. 나는 내 갈길을 총총 갈 뿐이다. 보통은. 오늘은 그 보통날이 아닌지라 유리문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다. 유리문 너머에 내 추레한 모습이 보일 무렵이면 유리문 안 풍경도 눈에 선해진다. 분주한 손의 미용사와 넋 놓고 티브이와 스마트폰을 응시하는 남정네 한 무리. 나와 같은 운명의 남자들이다. 일단 가슴팍에서 용솓음치는 한 숨을 다스린다. 그리고 고개를 너머 사거리 방향으로 돌린다. 그리고 다음 미용실과의 거리를 계산한다. 해는 뉘엿뉘엿. 배가 고픈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아내의 저녁 준비시간도 고려해야 한다. 생각이 이쯤에 이르면, 다른 미용실도 다 이러리라는 확신이 든다. 왠지. 이내 발걸음은 집으로 향한다. 집으로 가는 발걸음은 언제나 가볍다.

평소 누누이 주장하는 바이다. 기르는 게 아니라 안 자를 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