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수사 없던 시절의 수사 촌극
'살인의 추억'과 두 형사
영화 '살인의 추억'의 주인공은 두 명의 형사다. 이 둘의 성향은 극과 극이다. 송강호가 연기한 박두만 형사는 탐문수사와 미신, 고문과 다를 바 없는 고강도 심문 그리고 결정적 순간의 직감으로 범인을 찾는다. 박두만은 결정적인 순간에 이렇게 외쳤다.
"내 눈 똑바로 쳐다봐!"
한편 김상경이 연기한 서태윤 형사는 정 반대다. 서울 물(?) 먹은 형사라 그런지, 화성으로 내려와서 처음 한 일이 밤새 서류를 읽는 일이었다. 범죄현장과 각종 서류, 증거물을 검토해 용의자를 최대한 추려낸 후, 결정적인 순간에 유전자 검사로 범인을 확인하려 했다. 이른바 요즘의 과학수사다. 서태윤 형사는 이렇게 말했다.
"서류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거든요."
물과 기름 같은 두 사람의 수사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범인은 유유히 그들을 피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두 형사는 황망한 표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 시대가 저물었다.
미국도 그랬다. 우리가 그랬듯이. 물론 우리보다 훨씬 더 이전의 일이지만 말이다. 1897년. 그러니까 19세기 말의 미국의 형사들이란 사실상 박두만 형사의 피 다른 형제들이라 봐도 무방했다. 범죄심리학이니, 법의학이니 하는 과학수사란 건 턱도 없는 시대였다. 심지어는 그럴 게 왜 필요하냐며 조롱하는 이도 부지기수였다. 법정에서 범죄자 측의 변호사들은 검사 결과가 말도 안 되는 엉터리라며 주장하기 일쑤였다. 법정에서 실험 도구를 진열해놓고, 일일이 화학기호를 설명해가며 실험해 증명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굴든수프 씨 살인사건도 그런 시대 흐름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여기보다 좀 더 시끌벅적하긴 했지만.
무더운, 그해 여름의 시작 #1
모험심과 호기심으로 가득 찬 아이들은 종종 뭔가를 발견하기 마련이다. 물론 그 뭔가가 기분 좋은 것(?)이란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지만. 그날도 그러했다.
1897년 6월, 무더운 토요일의 오후였다. 몇몇 아이들이 뉴욕 이스트강 부둣가에서 건조 중인 거대한 배를 배경 삼아 놀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아이가 바다에 떠있는 붉은색 꾸러미를 발견했다. 다른 아이가 바다에 뛰어들어 전리품을 건져 올렸다. 아이들은 흥미진진한 눈으로 보따리를 풀어헤쳤다. 곧 아이들은 뒤로 자빠졌다. 피칠갑이 된 토막이었다. 두 팔이 붙어있는 가슴 부분이었다. 목과 머리 그리고 배 아래 부분은 없었다. 가슴팍엔 살점을 도려낸 흔적이 있었다.
잔뜩 겁에 질린 아이들과 달리, 경찰은 심드렁했다. 짓궂은 의대생의 장난 짓거리겠거니 했다. 종종 있는 일이었다. 뉴욕에는 시신으로 실습하는 의대가 다섯 곳이나 있었다. 시신들은 종종 의대 교실 밖에서 발견되곤 했다. 시가 상자 안의 손가락 같이 식이었다.
시신은 벨뷰 시체 공시소로 옮겨졌다. 시체 공시소는 이름처럼 뉴욕에서 발견된 온갖 시체들이 모여드는 장소였다. 비릿한 핏 냄새가 진동하는 데다 음습하기까지 한 그곳은 한편으론 기자들의 아지트였다. 시체는 말이 없었지만, 온갖 사연을 갖고 있지 않겠는가. 게다가 토막까지 났다면 더할 나위 없이 흥미진진한 기삿거리였다.
토막 난 사체를 면밀히 검사한 법의관은 이렇게 말했다.
"이 시체는 24시간 전에 살아 있었습니다"
경찰은 여전히 심드렁했다. 하지만 기자들의 눈은 번뜩였다. 펜을 잡은 손이 분주해졌다. 토막살인사건이라니. 기자들은 신속히 신문사로 연락했다. 이윽고 신문의 일면은 온통 토막살인사건에 대한 얘기로 도배됐다. 신문사들에겐 축제의 시작이었다.
무더운, 그해 여름의 시작 #2
다시 얼마 지나지 않아 였다. 역시나 날씨 좋은 주말이었다. 기계공인 줄리어스 마이어 씨는 두 아들을 데리고 뉴욕 외곽의 브롱스로 나들이를 갔다. 다시 말하지만, 호기심과 모험심 넘치는 아이들은 뭔가를 발견하기 마련이다. 뉴욕 북쪽의 브롱스는 숲과 풀밭으로 우거진 동네였다. 한적한 숲과 모험심과 호기심이 넘치는 아이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온 아버지. 유행가 노랫말처럼, 불길한 예감은 왜 틀린 적이 없단 말인가. 마이어 씨는 생애 가장 끔찍한 주말을 보내게 된다.
두 아들이 발견한 건 붉은 천 꾸러미였다. 안에는 역시나 피칠갑이 된 토막이 있었다. 갈비뼈 아래 부분의 몸통과 허벅지 일부분이었다. 위치가 위치(?)인지라 남자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뉴욕에서 발견됐으니, 사체는 다시 벨뷰 공시소로 옮겨졌다.
기자들이 다시 공시소로 모여들었다. 각기 다른 지역에서 시간 차를 두고 실려온 두 시신 토막. 사람들은 '설마'와 '혹시'하는 의심을 품고 있었다. 붉은색 보자기 천, 근육질의 몸과 비슷한 피부톤. 유전자 검사도, 지문검사도 없던 시절에 떠오르는 의심을 확인할 방법은 한 가지뿐이었다. 단순 무식한 것 같지만 당시로선 가장 확실한 그 방법. 많은 기자들 앞에서 공시소 직원은 시신을 나란히 놓았다. 퍼즐 조각을 맞추듯, 두 토막은 딱 맞았다. '혹시나 설마'가 '그래 역시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기자들의 펜이 분주해졌다. 퍼즐 조각 하나가 맞춰지자, 기자들은 이제 남은 퍼즐 조각을 찾아 나섰다. 경찰보다 빠르게.
부산에서 김서방 찾기, 뉴욕에서 남자 찾기
시간이 지나도 시신의 머리는 발견되지 않았다. 시신이 누구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공시소 앞은 이미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신문들이 온통 일면에 살인사건 뉴스를 도배한 덕이었다. 놀거리와 구경거리 없던 시절 아니던가. 인근 병원의 의사들부터, 관련 없는 형사들, 다른 지역의 검시관들에 호기심 많은 호사가들과 지나가던 행인까지. 벨뷰 공시소는 돋대기 시장과 다를 바 없었다. 이들 중에는 자신이 시신의 가족(또는 지인)이라 주장하는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공시소 직원과 경찰들은 선택권이 없었다. 찾아온 사람들에게 일일이 시신을 확인하게 하는 방법뿐이었다. 지리멸렬한 작업이었다.
가족들(이라 주장하는 이들)과 지인(이라 주장하는 이들)은 너도나도 공시소 안으로 들어와, 너도나도 자기 멋대로 사체에 이름을 갖다 붙였다. 막스 와이네케, 로버트 우드, 아구초 발다사노, 르베어, 찰스 러셀, 존 오튼, 존 리빙스턴, 에드워드 룬헬트, 루이스 러츠, 딕 멕스 등등등... 이름만 그러한가. 대략 사진가부터 목사까지 직업군 또한 천차만별이었다. 하지만 모두 아니었다. 경찰관과 검시관은 끝도 없는 민원(?)에 지쳐갔다. 사체의 진짜 가족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사건은 이제 미궁에 빠질 참이었다. 이때 어느 신문사 사장이 묘안을 냈다. 뉴욕 시민들을 탐정으로 모시기로 한 것이다.
토막살인사건 시나리오 공모전
조셉 퓰리쳐. [뉴욕 월드] 신문사의 창간자이자 그 유명한 퓰리쳐상을 만든 장본인이다. 보통 이쯤이면 퓰리쳐가 대단히 모범적이고, 도덕적이며, 정의롭게 신문사를 운영했겠거니 싶지만, 불행히도 그렇지 않았다. 노벨이 인명 살상용 폭약을 판 돈으로 노벨상을 만든 것처럼, 퓰리쳐 역시 생전에 수많은 낚시성 기사와 터무니없는 왜곡보도 덕에 쌓은 재산으로 퓰리쳐상을 만들었다. 말년에 말이다. 돌이켜보니 꽤나 후회됐던 모양이다. 보통 개처럼 벌어서 정승 같이 쓴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쓴다.
1897년. 퓰리쳐가 이제 겨우 50대(?)에 접어든 시점이었다. 당시 퓰리쳐는 소위 신문의 왕으로 미국 언론계를 주름잡을 때였다. 쉽게 말해, 개처럼(?) 벌 때였다. 퓰리쳐는 판매부스를 더 끌어올릴 묘안으로 신문 일면에 공모전을 건다. 제목과 내용은 이러했다.
당시 막 떠오르는 미국 언론계의 신흥강자가 있었으니, 윌리엄 허스트의 [뉴욕 저널]이었다. 부잣집 부모에 명문대 출신인 그는 퓰리쳐의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했다. 사업 수완이 좋았던 허스트는 신문이 돈이 된다는 걸 알고는 직장을 나와 다른 신문사를 인수해서 [뉴욕 저널]이라고 이름을 바꾼다. 신문사는 사주의 거침없는 '쇼 미 더 머니' 시전 덕에 가파르게 성장했다. 토막살인사건 즈음엔 판매부수를 두고 [뉴욕 월드]와 사활을 건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주도면밀한 허스트는 [뉴욕 월드]에 사람을 심어뒀다. 세상에서 가장 빨리 [뉴욕 월드] 뉴스를 접하는 독자는 아이러니하게도 라이벌, 허스트였다. 퓰리쳐가 공모전을 연다는 소식이 들리자, 허스트는 편집부에 일면을 다시 쓸 것을 지시한다. 이튿날, [뉴욕 저널]의 일면은 이렇게 실렸다.
500 받고 500 얹어서 1,000. 과연, 신문왕의 수제자다웠다. 물론 퓰리쳐야 인정하지 않겠지만.
공모전 소식이 일면을 나가고 다음날. [뉴욕 저널]의 사무실엔 수많은 편지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허스트의 얼굴엔 웃음기가 가득했다. 물론 편지 더미는 하나 같이 쓰레기 같은 사연들 뿐이었다. 허스트도, 퓰리쳐도 그 편지 더미 사이에 사건의 실마리가 있을 거라 믿는, 어리석은 사람들은 아니었다. 있으면 대박이고, 아니어 손해 볼 것 없는 장사였다. 공모전은 그냥 '쇼'였다. 그들은 겉으론 쇼를 벌이는 한편, 전혀 다른 방식으로도 사건에 접근하고 있었다. 그것도 매우 공격적으로.
뛰는 경찰 위의 나는 기자
유전자 검사도 없다. 지문검사도 없다. 그런데 머리도 없다. 그렇다고 가만히 찾아오는 이들만 바라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담당 형사들은 유일한 힌트인 붉은 방수천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바워리'가에서 탐문조사를 시작한 경찰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들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조사를 시작했는지 알게 된다. 그 방수천은 싸구려 천이었고 잘 팔리지도 않는 물건이었다. 그런데 매우 흔했다. 취급하는 도매상만 해도 대충 50여 개였다. 천 가게 사장이 꼼꼼히 장부를 정리했다면 모를까. 아니라면 오로지 '잘 좀 기억해 보라' 독려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가게마다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말이다. 경찰관들에겐 그럴 시간도, 인력도 없었다. 사건이 어디 이 사건 하나뿐이던가. 기자들은 아니었다. 이미 뉴욕 시장 바닥은 이름 모를 수많은 기자들이 휩쓸고 간 뒤였다.
예나 지금이나 공무원 수를 늘린다는 소식은 기분 좋지 않은 모양이다. 그들의 복장과 월급 모두 세금 아니던가. 아무리 토막살인사건이 났다 한들, 이 사건 하나 해결하자고 경찰관을 마구 뽑을 순 없는 노릇이다. 주어진 인력과 예산 안에서 알차게 굴려야 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여기나 거기나 마찬가지다.
반면, 신문사는 이런 제한이 있을 리 없다. 인력이 부족하면 뽑으면 그만이다. 문제는 그저 돈뿐이다. 여기에 거절할 수 없는 강력한 미끼만 있다면 금상첨화다. 특종 시 정규직 특별채용 같은 것 말이다. 미국의 최고 판매부수를 자랑하는 신문사 [뉴욕 저널], [뉴욕 월드]이 돈이 부족했을 리가. 후끈한 취재 경쟁에 신문사들은 무더기로 기자들을 채용했다. [뉴욕 저널]만 해도 이 사건을 위해 투입한 인력만 30명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정규직을 향한 노동자의 열의란 대단한 것이다. 기자들은 뉴욕 바닥을 이 잡듯 헤집고 다녔다. 기자들 손에는 붉은 방수천에 대한 인쇄물이 들려있었다.
그 무렵, 허스트가 새로 창간한 [이브닝 저널]에는 코난 도일의 '셜록 홈스'가 절찬리 연재하고 있었다. 소설 속의 경찰들은 왜 그리도 둔하고, 굼뜨며, 왜 항상 한 발짝씩 느리고, 사건의 실마리 하나 제대로 잡지, 사설탐정들에게 아쉬운 부탁 하러 다니고, 부탁하는 와중에도 그토록 못마땅해하는지... 그리고 추리소설에 나오는 사설탐정들은 똑똑하고 과학수사에 능한지... 등등 당시 독자들은 괜히, 일 없어서, 추리소설에 열광한 게 아니었다.
너의 이름은... 윌리엄 굴든수프
윌리엄 굴든수프. 그토록 오매불방 찾던 토막 사체의 주인이었다. 그는 180cm 정도의 체구 좋은 터키탕의 안마사였다. 독일 출신인지라 살던 곳은 아일랜드계와 독일계 주민이 모여 살던, 33번가와 9번 교차로 어디쯤이었다. 그를 찾아낸 건 역시 기자들이었다. 경찰이 아니라.
[뉴욕 월드]의 네드 브라운는 뉴욕대 출신의 신참내기 기자였다. 그 역시 정규직을 향한 열망으로 이글거리는 기자들 중 한 명이었다. 이 풋내기 기자는 묵직한 근육질의 팔과 부드러운 손의 사체를 보다 자신이 자주 드나들며 봤던, 터키탕의 안마사를 떠올렸다. 그리고 곧바로 자신의 단골인 타임스퀘어 지구 42번에 있던 머리힐 목욕탕을 향했다. 마침 무단결근 중인 직원이 있었다. 딱 한 명이. 더러 우연과 필연은 이토록 기막히게 맞아떨어진다. 절박하면 통한다던가.
그를 마지막으로 본 동료는 여자 친구와 시골에 집을 보러 간다고 휴가를 냈고, 그 뒤로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옳거니 싶었던 브라운은 인근 술집으로 가 오랜 친구 행세를 했다. 그곳에서 알아낸 건 굴든수프 씨가 '워너 약방' 인근의 아파트에 거주하는, 돈 많은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는 얘기였다. 네드 브라운은 가방에 고급 비누를 잔뜩 채워서 비누 판매상을 가장하며 아파트 안을 돌아다녔고, 어느 의심 가는 여성의 집을 발견한다. 여성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테이블 위에 있던, 잘 생기고, 근육질에 콧수염이 치켜 올라간 남자의 사진을 발견했고, 잽싸게 가방에 챙겨 나왔다. 신문사로 돌아간 그는 특종을 낚았다는 상사의 칭찬을 듣고는 기분 좋게 퇴근한다. 하지만 네드 브라운의 운은 거기까지였다.
다음날. 네드 브라운의 특종은 2면의 단신으로 실렸다. [뉴욕 월드]는 신참 기자가 아닌, 선임기자 아이크 화이트의 기사를 일면으로 내걸었다. 특종을 확신할 수 없던 신문사 편집장과 사장은 안전한 선택을 했다. 안전한 선택의 결과는 간단했다. 기자들 사이에서 소위 '물 먹었다'라고 표현되는 그것이었다. 네드 브라운이 찾아낸 내용은 [뉴욕 월드]만 아는 게 아니었다. [뉴욕 저널]도 알고 있었다. 단, 전혀 다른 접근 방식의 성과였다.
The Usual Suspects(유력 용의자)의 등장
네드 브라운이 재기 넘치는 기지로 조사했다면, 다른 신문사들, 특히 [뉴욕 저널]은 방수천이 그려진 컬러 인쇄물을 들고 뉴욕 저녁을 샅샅이 훑고 있었다. 이른바 저인망식 쌍끌이 전법되겠다. 물량 전 앞에 장사 없었다. 기자들은 성실한(!) 맥스 리거 씨의 포목점에서 빨간 방수천의 판매 기록을 발견한다. 판매 장부의 구매자 집은 '워너 약방' 근처의 '그 집'이었다. 네드 브라운이 굴든수프의 여자 친구가 산다는 그 집 말이다. 간도 큰 [뉴욕 저널] 허스트와 기자들은 경찰로 위장해서 여자 친구의 남편을 급습한다. 그의 이름은 허먼 낵이었다. [뉴욕 저널]은 확신하고 있었다. 머리 힐 목욕탕의 직원들이 공시소에서 그 시체가 굴든수프라고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허먼 낵은 가짜 경찰 손에 관할 경찰서로 끌려갔고, 곧 리틀 이탈리아 지역에 있던 뉴욕 경찰 본부로 이송됐다. 본부 맞은편 아파트에는 수많은 카메라맨과 기자들이 상주하고 있었다. 아파트 렌트비는 신문사의 몫이었다. 경찰 본부의 일거수일투족은 실시간으로 신문기사로 바뀌고 있었다.
허먼 낵은 굴든수프를 알고 있었다. 굴든수프는 허먼 낵과 부인 오거스터가 살던 집에 하숙하던 남자였고, 부부 사이의 관계가 소원해지자 오거스터가 굴든수프와 함께 자신을 떠났다고 주장했다. 확인해보니 실제 그러했다. 굴든수프가 사라진 금요일과 그다음 날 이틀 동안, 허먼 낵 씨의 알리바이는 확실했다. 워낙 화려한 불금, 불토를 보낸 덕분이었다. 그의 추태를 본 사람들은 한 둘이 아니었다. 다음날, 낮엔 숙취로 잠만 실컷 잔 모양이었다. 형사와 기자들은 오거스터 낵 부인에게 눈을 돌렸다. 낵 부인은 독일 함부르크행 증기선을 타려고 짐 싸던 차였다. 어머니가 병석에 누워있다고 했다.
결국 오거스터 낵은 경찰 본부의 담당 형사 사무실 의자에 앉았다. 사무실에는 형사와 [뉴욕 저널]의 기자들이 있었다. 38살 먹은 이 여인의 대외적인 타이틀은 조산사였다. 다른 이름으론 불법 무면허 낙태 시술가쯤 됐다. 굴든수프와 동거한지는 16개월 정도 된 상황이었다. 그녀는 지난 금요일에 굴든수프와 돈 문제로 말다툼을 했고, 그 뒤론 보지 못했다고 했다.
한편, 담당 형사 밖 사무실엔 폴린 리거 씨가 와 있었다. 방수천 판매 장부가 있던 그 포목점 주인인 맥스 리거 씨의 부인이었다. 담당 형사는 폴린 리거 씨를 사무실 안으로 불렀다. 그녀는 낵 부인을 보며 말했다.
"저 사람이 방수천을 산 사랍입니다."
[뉴욕 저널] 기자가 다시 확인하자, 폴린은 재차 확실하다고 답했다. 낵 부인은 터무니없다는 얘기라고 주장했다. 낵 부인이 의자에 일어나 방을 나가려 하자, 담당 형사는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물었다.
"이걸 아시오?"
문 앞의 복도에는 사람의 잘린 다리가 놓여 있었다. 강물 속에서 푹 삭은 다리의 몰골은 흉물스럽기 그지없었다. 굴든수프의 것인지 알 도리 없었다. 다만, 그 다리도 붉은 방수천에 쌓인 체로 발견됐다. 낵 부인은 담당 형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비로소 맞춰지는 퍼즐 조각들
한편, 형사들은 낵 부인의 집을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소득은 있었다. 푸줏간에서나 쓰는 칼과 부러진 톱, 핏자국처럼 보이는 뭔가가 붙어있는 권총 같은 것들이었다. 의심스러운 건 그것뿐만 아니었다. 낵 부인의 팔에는 멍자국이 있었다. 경찰이 부른 의사는 지난 주말쯤에 생긴 상처 같다고 했다. 낵 부인이 토요일에 굴든수프로부터 받았다는 전보도 이상했다. 굴든수프의 단어 철자가 명백하게 달랐다. 굴든수프에게 줬다는 돈과 같은 금액의 돈은 낵 부인의 코르셋에서 나왔다. 여간수의 성과였다.
기자들의 성과도 있었다. 굴든수프와 낵 부인이 싸운 금요일의 다음날. 그러니까 토요일 오전 10시쯤 인근의 장의사가 말과 마차를 낵 부인에게 돈을 받고 빌려줬다는 것이다. 마차를 끌고 간 사람은 굴든수프가 아니었고, 다소 왜소한 체구의 콧수염 기른, 독일 남자였다. 낵 부인도, 굴든수프도 아닌, 제3의 인물이 등장한 것이다.
제3의 인물이 누구인지 아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낵 부인의 주변 사람들 중 한 사람이 그 독일인에 대해 알려줬다. 일명 프레드라고 불리는 그 남자는 이발사였다. 본명은 마틴 손. 마틴 손은 굴든수프와 몸싸움을 벌인 적도 있다고 했다. 경찰들은 마틴 손을 찾아 나섰다. 이발사를 찾기 위해선 이발소로 가야 했다. 담당 형사는 의심되는 이발소를 죄다 돌아다니며 면도를 받아야 했다. 얼굴과 턱이 면도날 때문에 화끈거릴 즈음. 형사는 47번가와 6번 교차로에 위치한 보겔 이발소에서 지난주에 갑자기 그만둔 어느 이발사에 대해 알게 된다. 마틴 손이었다.
이발소 직원은 마틴 손이 낵 부인의 집에 세 들어 살았고, 굴든수프에게 흠뻑 주먹세례를 받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쉬는 월요일에 낵 부인과 롱아일랜드에 집을 보러 다녔다고 했다. 탐문수사에 나선 기자들은 롱아일랜드 인근의 우드 사이드에서 낡디 낡은 오두막을 하나 지목했다. 이른바 '살인 현장 오두막'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두 달 넘게 비어있던 오두막의 내부는 너무도 깨끗했다. 욕실 벽 안 틈에선 검은색 얼룩이 튄 게 발견됐다. 이상한 건 그것뿐만 아니었다. 인근 배수로에는 물이 가득한 걸 이상이 여긴 형사가 관할 지역의 수도 관리자를 불렀다. 수도 계량기를 확인한 수도 관리자는 갸우뚱해했다. 지난달보다 물을 15만 리터쯤 더 썼고, 이 정도 물을 쓸려면 며칠 동안 수도꼭지를 모조리 열어놔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틴 손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가까운 친구의 제보로 경찰 손에 잡혔다. 이번엔 기자를 가장한 경찰이 아니었다. 진짜 경찰이었다. 그러나 모든 퍼즐이 완성됐다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아직 사체가 굴든수프라는 결정적 증거는 없었다. 머리가 없지 않은가.
평행이론과 코퍼스 델릭티
1870년대에 이른바 '켈시 사건'이 있었다. 롱아일랜드에 살던 찰스 켈시라는 이름의 남자가 있었다. 이 남자는 줄리아라는 여자를 좋아했는데, 그녀는 로열 새미스란 남자와 곧 결혼할 예정이었고, 약혼한 상태였다.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눈치가 없었는지, 아님 줄리아에 대한 연정이 깊었는지, 그는 줄리아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어느 날, 줄리아를 찾아온 그에게 웬 남정네들이 달려들었고, 그대로 켈시는 실종됐다. 석 달 후 줄리아와 로열 새미스는 결혼 했다. 그로부터 열 달 후, 어느 낚시꾼의 낚싯대에 헌팅턴 만에서 켈시의 시신이 걸려 올라왔다. 예전 공개 처형식에서는 종종 뜨거운 타르를 사형수 몸에 발랐다. 죽기 전에 실컷 괴롭히겠단 심보였다. 켈시의 시신은 타르 범벅이었으며, 하반신뿐이었다. 머리를 포함한 상반신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살해 동기도, 가해자도, 피해자도 확실해 보였다. 줄리아와 로열 새미스는 형장의 이슬 신세여도 이상해 보일 것 없었다. 결과는 달랐다. 방법은 간단하고, 확실했다. 줄리아와 로열 새미스의 변호인은 시신이 켈시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으며, 심지어 켈시는 살아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뒷받침할만한 진술도 나왔다. 살아있는 켈시를 봤다는 것이다. 결국 부부는 유유히 법정을 걸어 나왔다. 재판 결과에 대해서 당대의 사람들이 받은 충격은 대단한 것이었다.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켈시 사건보다 더 이전인 1819년. 버몬트 주에서 소위 '본 형제 사건'이 있었다. 사형죄를 확신한 재판진은 용의자에게 사형을 언도했고, 사형수는 이제 곧 처형될 운명이었다. 그리고 처형을 코 앞에 둔 그 순간, 죽은 자가 살아 돌아오는 기적(!)이 벌어졌다. 사형수는 목숨을 건졌고, 세상은 이 사건으로 시끌시끌했다.
당시 어떤 살인사건 전문 변호사는 자신을 찾아온 고객들(살인 용의자들)에게 이렇게 큰소리치곤 했다.
"조각 모음이 곧 코퍼스 델릭티(corpus delicti)가 되는 건 아니다. "
코퍼스 델릭티란 범죄에 대한 결정적 증거를 의미했다. 그렇다.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면 살인범 혐의를 벗을 수도 있었던 시대였다. 뻔히 용의자처럼 보이는데 유유히 재판장을 빠져나오는 사건들이 지금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많았다. 경찰에게 이보다 더한 치욕은 없는 것이다. 그들이 당면한 지상과제는 이제 단 한 가지였다.
굴든수프의 머리 찾기 대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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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인망 어법(일명 쌍끌이)은 비단 서해바다에만 있는 건 아니다. 이스트강 부두가로 인양선과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항만 경찰이 부른 인양반에서부터 신문사가 고용한 잠수 전문가, 보트(?)를 끌고 구경 나온 이들에, 동네 철없는 개구쟁이들까지. 철없는 소년들은 얕은 강물로 쉴 새 없이 뛰어들었다. 강바닥까지 가려면 7~8미터나 내려가야 했지만, 아이들은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아이부터 어른들까지 다들 강 속으로 뛰어드는 각오는 제 각각이었다. 허나 모든 이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굴든수프 씨의 머리를 건져 올리는 것. 그것이었다.
사실 이 모든 소란은 마틴 손의 말 몇 마디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굴든수프의 머리를 석고로 덮어 씌운 뒤 이스트강에 버렸다고 했다. 그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알 길은 없었다. 그저 강바닥을 뒤지는 것 말곤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인양작업을 전담한 항만 경찰 슐츠 경사는 기자들을 모아놓고는 큰소리쳤다.
“물에 빠진 금시계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사실 결코 헛소리는 아니었다. 슐츠 경사의 인양반 인부들은 수십 명이나 됐으며, 무엇보다도 인양으로 밥벌이하는 베테랑들이었다. 그들은 기다란 갈퀴와 급속 톱니가 달린 다소 괴상한 집계를 사용해 강바닥을 훑고 다녔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치 ‘손으로 만지는 것’ 같다나 뭐라나. 아무튼 슐츠 형사의 콧대는 높았다. 굴든수프 씨의 머리가 담긴 석고 덩어리는 금방이라도 발견될 것만 같았다. 그럴 것만 같았다.
부두엔 인양 작업반과 기자들, 아이들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수많은 구경꾼들로 부둣가는 시끌벅적했다. 그들 앞에서 인양반은 잔뜩 어깨뽕이 들어간 상태였다. 그들이 보는 앞에서 인양반이 무엇인가 건져 올릴 때마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우스꽝스럽게도 첫 번째 건져 올린 밧줄 끝에는 검은 코트가 걸려있었다. 행복은 나누면 배가 된다지만, 부끄럼도 나누면 배가 되기 마련이다.
항만 경찰이 움직이는 마당에 신문사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뉴욕 월드]는 증기 인양선에다 전문 잠수사를 동원했다. 커다란 놋쇠 헬멧을 뒤집어쓴 잠수부가 이스트강 속으로 뛰어들었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그러나 사실 인양작업을 처음으로 한 건 [뉴욕 저널]이었다. [뉴욕 저널]은 이미 일주일 전에 찰스 올슨이라는 유명한 잠수부를 공용한 바였다. 그런데도 그 자화자찬하기 좋아하는 [뉴욕 저널]이 조용히 있었던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찰스 올슨이 건져 올린 것들이란 그저 돌덩이와 양철 깡통 같은 것뿐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굴든수프 씨 머리 찾기 운동은 성황을 이뤘다. 온갖 곳에서 굴든수프의 머리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한 번은 ‘토미 쿠퍼’라는 소년이 석고를 뒤집어쓴 머리를 발견했는데, 놀래서 그만 도랑에 던졌다는 기사가 있었다. 경찰들이 그 도랑을 이 잡듯이 뒤졌지만, 머리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아울러 ‘토미 쿠퍼’라는 이름의 소년도 찾을 수 없었다. 한 번은 강가에서 크고 부패한 사체가 발견됐다. 사람들의 호들갑과 기대와 달리 큰 물고기의 머리였다. 우드사이드에서 여자 아이가 발견한 석고 덩어리는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경찰은 석고 덩어리를 부쉈고, 안에서 양배추 덩어리가 나왔다. 하루, 이틀이 멀다 하고 석고 덩어리가 발견되는 지경이었다. 신문사 [헤럴드]는 이런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간단히 정리했다.
“‘굴든수프의 머리 찾기’란 신종 사업이 크게 번성하고 있다.”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누군가 돈을 주고, 가짜 석고 덩어리를 파묻고는 발견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이 사업의 최대 수혜자가 누구일지 생각해본다면, 그리 놀랄 일만은 아니었다. 기사거리는 언제나 넘쳐났다.
그해 8월. 이 전례 없는 대규모 인양작업은 장렬하게 마감했다. 인양작업은 두 가지 유의미한 결과를 남겼다. 어마어마한 인양작업비와 담당 형사의 해임이었다.
머리 없는 재판과 이후 이야기
결정적 증거 없는 상황에서 용의자들의 입은 분주 했다. 낵 부인은 마틴 손이 굴든수프를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굴든수프가 분명 살아 있으며, 그가 나타나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줄 거라 주장했다. 기자들은 그것을 그대로 지면에 옮겼다. 마틴 손은 자신은 굴든수프를 살해하지 않았으며, 진짜 살인범은 낵 부인이라고 말했다. 역시 기자들은 그 내용도 지면에 옮겼다. 살해 장소도, 도구도, 동기도, 유력한 용의자도 모두 명확해 보였다. 하지만 아무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들이 명백한 범인이라고 말이다. 결국 재판은 그렇게 시작됐다.
오거스트 낵과 마틴 손의 재판은 내내 머리 없이 진행했다. 결정적 증거가 없는 재판장은 아무 말 대잔치가 됐다. 다행인 것은 낵 부인과 미틴 손 서로가 서로를 범인이라고 지목한 것이었다. 둘 중 하나 거나, 둘 다 거나. 한 명은 확실히 범인이었다. 지리멸렬한 재판 결과 마틴 손에게 사형이, 낵 부인에겐 15년형이 선고됐다. 마틴 손과 낵 부인은 켈시 사건 때처럼 재판장을 유유히 걸어 나올 수 없었다.
그리고 어느 날. 마틴 손은 어릴 적 고향에서 먹던, 로스트비프와 호밀빵, 푸딩 같은 것들을 먹었다. 생의 마지막 식사였다. 그는 식사를 마친 뒤, 형장으로 향했고, 전기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낵 부인은 10년쯤 뒤에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어느 나이든 경찰의 기억에 따르면, 1930년대 중반쯤에 낵 부인은 뉴욕 어느 동네에서 아이들을 상대로 싸구려 사탕을 팔고 있었다고 한다.
과학수사 없던, 기자들이 탐정 같았던, 뉴욕 전체가 버라이어티 쇼프로의 무대 같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이젠 기억하는 이도 거의 없이, 활자와 그림과 사진으로만 남은 시대지만.
참고서적 : 타블로이드 전쟁(폴 콜린스 씀, 홍한별 엮음, 양철북) 2013.4.19. 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