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키우면서 아무 때나 할 수 없게 된 것은, 청소와 악기 연습입니다. 아이들이 학교 간 사이 해 놓고 싶은 두 가지 일이 고양이들의 잠을 방해하니까요.
대신 조용히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대인은 수많은 자극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인간관계도, 쇼핑과 살림도, 육아와 교육도 다채롭고 복잡하게 만듭니다. 무엇하나 간단하지 않습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그토록 원했음에도, 자극에 길들여진 저는 오히려 이 시간이 두려웠나 봅니다. 자꾸만 평소 하던 집안일이나 미뤄둔 잡일을 처리하느라 글쓰기와 사색을 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고양이들 덕분에 조용한 시간을 반강제적으로 확보하게 되었어요.
저는 특히 사람 자극을 잘 처리하지 못해요. 용량이 적다고 할까요?
수많은 인간관계와 카톡 알림, 그들의 안부를 챙기거나 사교모임에 참여하는 것이 힘듭니다. 반면 이렇게 고요한 시간에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악기 연습을 하거나 홀로 산책할 때 에너지가 충전됩니다.
앞으로의 삶을 선택할 때 이점을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소아청소년과 의사인데, 하루에 8시간을 일한다고 하면 적어도 80-120 명 정도의 환자를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봉직의는 매출 미달로 그만두어야 하고, 개원의는 임대료와 직원 월급을 감당하지 못해 접어야 해요.
그런 삶은 저의 적은 외향 에너지를 갉아먹고 지치게 만듭니다.
저의 성향을 진작에 알았다면 영상의학과나 진단검사의학과를 지원했어야 할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나종호 작가님의 책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을 보면( p.139 ) 한 중년 가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서울의 실내체육관 하나를 대관해서 며칠간 공연을 해도 매진될 가수가, 굳이 대학로 소극장에서 백여 명 관객과 호흡하며 릴레이 공연을 하는 모습. 그리고 땀 흘리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작가님도 그런 의사로 살아가고 싶다는 내용이었어요. 비용 대비 얻는 효과가 조금 적더라도 한 사람에게 좀 더 깊이 다가가고 싶다는 말씀으로 들렸지요.
최인아 책방에서 열린 작가님의 북 토크에서 <한국에서도 좋은 여건에서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왜 굳이 미국으로 건너가셨는지>에 대한 질문이 나왔어요. 저도 사실 궁금했지만 책 내용과 직접 관계가 없어서 차마 드리지 못한 질문이었죠.
'뭔가 남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답해주셨지만, 저는 그 중년 가수의 공연과 관계가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미국의 의료제도가 한국의 의료제도 보다 반드시 낫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양쪽 모두 장단점이 있지만, 환자에게 할애할 수 있는 시간과 비용으로만 따진다면 미국은 실내체육관보다 소극장에 가까우니까요.
저 역시 의사로서 어린이와 부모님을 만나는 시간이 소중하고 보람되지만, 저의 타고난 성향으로는 소극장 공연을 해야 오래 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런데 의료행위는 국가의 통제하에 이루어지기에 제가 소극장에서 하고 싶어도 쉽지 않습니다.
얘기가 길어졌지만, 저는 고양이들처럼 개인주의적, 관계에 있어 거리두기를 좋아하는 회피주의적, 홀로 있는 시간을 사랑하는 내향형 인간임을 깨닫습니다.
이런 저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고양이들의 잠을 방해하고 싶지 않은 이유기도 합니다. 그냥 자는 것처럼 보여도 그들에게는 에너지를 충전하는 소중한 시간일 테니까요. 제가 지금 조용히 글을 쓰듯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