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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 little kitty Sep 13. 2022

자기애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1)

과대자기-나르키소스의 모습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자기애



<자기애> 라고 하면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하염없이 사랑에 빠진 나르키소스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코헛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나르시시즘에 해당하는 자기애의 한 요소를 자기애적 자기(narcissistic self)에서 과대자기(grandiose self)로 바꾸어 불렀는데, 보다 풍성한 연상작용을 불러 일으킨다는 이유에서였다. 1) 우리나라 어감으로는 <과대>라는 단어가 다소 병리적으로 들릴 수 있으나, 과대자기는 정상발달 욕구에 속한다.

나는 과대자기 라는 말을 들으면 늘 이 노래가 생각난다.


https://youtu.be/j7_lSP8Vc3o

                             <2NE1 내가 제일 잘 나가>



과대자기 욕구


아이는 자신이 전능한 힘을 가졌다는 느낌과 자기 확장감에 대해 적절한 자기대상 반응을 원한다.
부모가 이런 요구에 호의적으로 적절히 반응해 주면, 아이는 결국 조잡한 과시적 욕구나 과대 환상을 포기하고 현실적인 한계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소란스럽게 과대자기를 요구하는 대신에 현실적으로 가능한 기능과 실제적인 자존감을 즐길 수 있게 된다. 1)


역설적이지만, 무언가를 조절할 수 있게 되는 방법은 '만족'을 느껴보는 것이다. 즉, 아이의 나르시시즘을 받아주면 '만족'하고 조절한다는 뜻이다.


수업 중 교수님은 '그런데 왜 그 어린아이한테 <네가 최고다>

라고 띄워줘야 할까요?'라고 질문하셨다.

쉬워 보이지만 어려운 질문이었다.

왜냐하면, 아이는 아직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무기력한 존재이기 때문이지요. 너무 없으니까 부모가 채워주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교만해 질까봐 아이를 칭찬하고 공감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장발장에게 먹을 것과 돈을 내어주면서 폭식할까봐, 사치할까봐 걱정하지 않으니 말이다.


언뜻 보면 아이가 재롱을 부릴 때, 처음 뒤집거나 걸었을 때, 기분이 좋을 때만 <우리 ○○ 최고다!>라는 말이 나올 것 같다, 그러나 다음의 예를 보면 부모가 과대자기 욕구에 반응해 준다는 것이 어떤 반전이 있는지 알 수 있다.


한두 살 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활짝 펼친 아빠의 손바닥 위를 낑낑거리며 기어올라갔다. (중략) 아빠의 손바닥 위로 올라선 아이는 잠시 후 균형을 잡더니 마치 야호 하듯이 손을 번쩍 들었다. 아빠도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우리 ○○  최고!"라고 소리를 질렀다. 잠시 승리의 도취감을 즐긴 아이는 기꺼이 아빠의 팔에 안겨 내려온 후 다시 한 번 아빠와 기쁨의 포옹을 나누었다.

며칠 후 아이는 아빠와 공군기지를 받문하게 되었다. 가까이서 처음 보는 비행기와 군사기지를 보며 아이는 아주 흥분하였다. 이곳 저곳을 구경하던 중 갑자기 제트기가 활주로를 이륙하려고 속도를 높였다. 무시무시한 소리와 광경에 당황한 아이는 두려움에 떨며 울음을 터뜨렸다. 이때 아빠는 가만히 아이를 들어 올려 품에 안고, "우리 ○○ 무섭지?" 하고 부드럽게 속삭이며 꼭 안아주었다.

이것은 기쁨의 포옹과는 또 다른 포옹이다. 최고인 ○○의 두려움과 연약함도 수용하고 인정해 주는 포옹이다. 최고 아들 ○○ 로서 수치심이나 굴욕감을 느끼지 않게끔 그의 공포가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1)


아이가 초라하고 연약해 보이는 순간에도 부모는 과대자기 욕구에 반응해 주어야 함을 알 수 있다. 그래야 현실적 전능감, 즉 좌절로 가득한 현실 속에서도 자존감을 가질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부모란 신용이 없는 아이에게 대출을 내어주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부모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신용이 필요하지 않다. 아들이어야, 혹은 딸이어야, 공부를 잘 해야, 외모가 뛰어나야, 부모를 빛나게 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신용이 있어야 인정해 주는 것은 사회에 나가서 만나게 될 교사나 직장 상사, 고객들일 것이다. 부모는 아이를 평가하거나 결하는 관계가 아니다.




'자기 수준도 모르고 나댈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가야할 내리막길, 정상에서 외쳐본 경험이 있어야 내려오는 좌절감을 견딜 수 있다. 문제는 부모의 나르시시즘이 아이에게 투사될 때이다. 2)


참고한 책


1) 최영민, 쉽게 쓴 자기 심리학- 중 <양극성 자기>, 학지사, 2011


2) 박경순, 엄마 교과서- 중 <제 잘난 맛에 사는 아이들>, 비룡소, 2012


커버이미지 출처) https://mythus.fandom.com/wiki/Narcis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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