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대자기-나르키소스의 모습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자기애
아이는 자신이 전능한 힘을 가졌다는 느낌과 자기 확장감에 대해 적절한 자기대상 반응을 원한다.
부모가 이런 요구에 호의적으로 적절히 반응해 주면, 아이는 결국 조잡한 과시적 욕구나 과대 환상을 포기하고 현실적인 한계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소란스럽게 과대자기를 요구하는 대신에 현실적으로 가능한 기능과 실제적인 자존감을 즐길 수 있게 된다. 1)
왜냐하면, 아이는 아직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무기력한 존재이기 때문이지요. 너무 없으니까 부모가 채워주는 것입니다.
한두 살 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활짝 펼친 아빠의 손바닥 위를 낑낑거리며 기어올라갔다. (중략) 아빠의 손바닥 위로 올라선 아이는 잠시 후 균형을 잡더니 마치 야호 하듯이 손을 번쩍 들었다. 아빠도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우리 ○○ 최고!"라고 소리를 질렀다. 잠시 승리의 도취감을 즐긴 아이는 기꺼이 아빠의 팔에 안겨 내려온 후 다시 한 번 아빠와 기쁨의 포옹을 나누었다.
며칠 후 아이는 아빠와 공군기지를 받문하게 되었다. 가까이서 처음 보는 비행기와 군사기지를 보며 아이는 아주 흥분하였다. 이곳 저곳을 구경하던 중 갑자기 제트기가 활주로를 이륙하려고 속도를 높였다. 무시무시한 소리와 광경에 당황한 아이는 두려움에 떨며 울음을 터뜨렸다. 이때 아빠는 가만히 아이를 들어 올려 품에 안고, "우리 ○○ 무섭지?" 하고 부드럽게 속삭이며 꼭 안아주었다.
이것은 기쁨의 포옹과는 또 다른 포옹이다. 최고인 ○○의 두려움과 연약함도 수용하고 인정해 주는 포옹이다. 최고 아들 ○○ 로서 수치심이나 굴욕감을 느끼지 않게끔 그의 공포가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