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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 little kitty Sep 16. 2022

어떤 점이 부족했을까요?

그런 양육은 책에만 있습니다.

제가 어떤 점이 부족했을까요?


'KBS 라디오'에서 나온 사연의 내용이었다.

초등학생인 아이가 자꾸 학원에 일찍 가려고 해서 어느 날 미행해 보았더니, 편의점에 가서 삼각김밥과 컵라면을 사 먹더라는 것이다. 사연을 보낸 엄마는 크게 실망하며 도대체 '엄마 음식이 어떤 점이 부족했던 걸까요' 라는 사연을 보내왔다. DJ는 머뭇머뭇하며 이렇게 대답했다.

"음... 그게 말이죠. 초등학생이 삼각김밥과 컵라면을 먹는다는 건, 제 경험으로 볼 땐 <아, 나는 청춘이야> 뭐 이런 거거든요. 어디가 부족했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그냥 인정해 주세요."


나 또한 이 사연을 들으며 안타까웠다. 아이는 엄마를 평가할 생각이 없었을 텐데. 어쩌면 삼각김밥보다 그냥 혼자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자유와 성취감, 그리고 학원 가기 전 나만의 의식 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은데 엄마는 자책을 하고 있다니.


심리학 공부를 하면서 깨달은 몇 가지 사실이 있었다. 최교수님은 대상관계 이론을 들어 양육에 대해 설명하시지만, 결코 <부모라면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시지 않는다. 공부의 목적도 그런 이상적인 양육을 하는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정신역동 치료란 내담자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을 때, 그것을 과거의 가족관계, 특히 양육에 초점을 맞추어 해결하려는 상담기법이다. 주로 <대상관계 이론> 혹은 <자기 심리학> 등의 원리에 비추어 보았을 때 '좋은 양육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관점이 있는데,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당신의 가족 관계와 양육에는 이러한 결핍이 있었고 그로 인해 직접적인 문제와 그에 대한 방어가 쌓여 현재의 문제를 일으켰다고 봅니다."고 설명한다. 그리도 그 점에 있어서 상담자와 함께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다. 과거 권위적인 아버지 밑에서 늘 움츠리고 지내 아버지상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면, 상담자를 통해 권위는 있으나 권위적이지 않은 사람과의 관계를 새로 만들어나가며 훈련한다고나 할까?


그런데 여기서 과거를 돌아보다 보면 내담자는 분노하게 된다. 내가 그런 좋지 않은 양육을 받았다니, 우리 부모가 나에게 이렇게 했다니.

한 마디도 비난하지 못하는 것도 지나친 억압 상태겠지만, 비난 자체는 상담의 목적이 아니다.

같은 말이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

우리 부모님이 어떤 점에서 부족했을까요?
->그러면 제가 어떤 부분을 채워가면 좋을까요?


이것은 어린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도 똑같다. 최교수님은 우리가 사례 공부를 하며 '부모가 그렇게 해 줬으면 참 좋았을 텐데.' 아쉬워하면,  

  그런 이상적인 양육은 책에만 있어요.
 현실엔 없어요.

라고 웃으며 말씀하신다. 


우선, 어떤 결핍을 주는 양육도 아이의 특정 기질과 맞물렸기 때문에 병리를 일으키는 것이지 모든 아이에게 똑같이 일어나지 않는다. 특히 까다로운 기질, 예민한 아이, 공격성이 강한 아이들은 웬만한 부모가 감당할 수 없다. 그런 아이가 나온다고 예고되는 것도 아니고, 부모가 되기 전 훈련 기간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고로 원래부터 부모-자녀 간 문제가 생기기 쉽다. 오토 컨버그는 특히 까다로운 기질에 대해 언급하며 경계성 인격장애가 생기는 원리를 설명하였다.


둘째, 이상적이고 완벽한 양육을 추구하다 보면 반드시 희생되는 것이 생긴다.

대상관계 이론으로 보면 부모는 중요한 대상이지만, 자기 심리학의 논리 부모에게 적용해 보면 부모 역시 자기애를 가진 존재다. 자기애를 가진 독립적 존재가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타인인 자녀에게 완벽한 대상관계를 제공한다는 것은 모순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첫아이라면 더더욱 시행착오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프로이트도, 코헛도 결국은 그들의 양육 환경과 가족 관계 내에서 결핍을 해소하고자 학문을 만들고 다듬어 나갔다. 그들의 이론은 사실 간절한 외침 인지도 모른다. 모름지기 어머니란, 대상이란 그렇게 해야 한다는 명제는 그것을 원했던 자들의 바람이지 법전에 명시된 의무는 아닌 것이다.


이제 우리도 "무엇이 부족했을까?" 보다는 "무엇을 채워주면 좋을까?"를 고민하면 좋겠다. 나와 부모의 관계라면 과거에 부족했던 부분을 채우는 것이 최종 목표지 부족했던 부분에 빨간 동그라미를 치고 끝나서는 안 될 것이다. 내가 부모 된 입장이라면 역시 지나간 육아의 시간 중에 채워주고 싶은 부분을, 지금 해 줄 수 있는 만큼, 지금 나이와 발달 단계에 맞는 방법으로 채워주면 된다.


나도 한 때는 생후 36개월까지 채워주지 못한 것을 나의 노력으로 전부 채워 넣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는지, 또 왜 불가능한지, 왜 그럴 필요가 없는지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완벽히 채우는 과정 중에 또 다른 소소한 행복과 큰 흐름이 손상되기 때문에, 어제의 아이는 오늘과 같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아이는 채워주려는 나의 태도를 느끼는 것이지 얼마나 완벽히 채워 넣었는지를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 마음의 그릇이 1L라면, 어떤 아이는 0.3L만 채워줘도, 어떤 아이는 0.7L까지 채워줘도 나머지는 자기가 채워 간다는 것을 이제는 깨달았다.


나는 누군가에게 '부모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다. 다만 지금 배우고 있는 대상관계 이론과 자기 심리학을 통해 너무나 큰 도움을 받았기에, 글을 통해 누군가에게 소개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나의 가까운 친구나 지인이 자녀 문제로, 부모님 등 가족관계 문제로 힘들어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조언이 아닐 것이다. 나는 따뜻한 차 한 잔이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그의 이야기를 들을 것이고, 슬픈 대목에서는 함께 울 것이다. 나종호 작가님의 말씀대로 <경험치보다 중요한 것은 공감하려는 의지> 임을 다시 한번 기억하려 한다. 자라나는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님, 교육 현장에서 가르치시는 선생님, 그리고 소아청소년을 상담해 주시는 많은 전문가분들께 감사드리며 그들의 힘든 순간을 함께 하고 싶다.



커버 이미지 출처

[편의점 삼각김밥] CU 겉바속촉 참치마요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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