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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 little kitty Sep 18. 2021

인생은 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브런치 글쓰기에 무슨 마력이라도 있나?

 불과 2주 전, 비 오는 아침 나는 출근하지 않는데 남편이 힘들어 보이고 그 어깨에 놓인 짐을 잠시 덜어주고 싶었던 순간을 글로 남겼다.

그런데, 브런치는 내 글을 보고 미래를 바꾸어 주는 걸까?


나는 2주 뒤 출근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남편이 코로나 검사 결과 음성임에도 접촉 환자가 델타 변이 감염자라는 이유로 갑자기 자가격리 되었문이다. 자가 격리자의 가족은 특정 집단생활에는 주의해야 하나, 우리 역시 코로나 예방 접종 등 미룰 수 없는 환자분들의 스케줄이 있어 일단 보건소 허락하에 내가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토록 일을 멀리하던 지난 3년간의 시간이 무색하게, 나는 갑자기 투입되었다.


 물론 다행히 내과 진료라는 특성상 남편이 집에서 모든 원격 업무와 전화 업무를 봐주고 있어서, 내가 할 일은 극히 일부분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내가 없으면 이곳의 업무를 지속할 수가 없다. 갑자기 막중한 책임을 맡고 보니 사는 게 절대로 내 의지대로 되지 않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예전의 나 같으면, 익숙지 않은 곳에 어쩔 수 없이 와서 일하게 되었음에도 나의 부족함에 속상해 했을 것이다. 

 집안이 엉망이 된 점,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으면서 생활이 엉망이 된 모든 것들에 짜증내고 괴로워했을 텐데.


 지금의 나는 이쪽, 저쪽에서 모두 부족한 존재임에도 나 자신과 타인을 모두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새로운 일에 부딪칠 때마다 나는 조급한 마음으로 한 번에 해결되지 않는 것들에 괴로워했었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어찌 보면 피할 수 없는 삶의 굴곡과 새로운 도전을 맞닥뜨릴 때, 조금 더 나를 돌아보고 가다듬는 능력을 키우고 싶어서일 것이다.


 어제는 가슴 통증으로 내원한 만 21세 남자분이 있었다. 역류 식도염과 함께, 근육 통증이 함께 있다고 판단했다. 


"제가 시험 준비를 하고 있어서, 하루에 커피를 4-5잔 정도 마셨거든요....."

"어떤 시험을 준비하시나요?"

"수능이요. 전 원래 악기를 했었는데 재능이 없어서 그만뒀어요. 그래서 늦게 다시 수능을 준비해요....."


 자신의 증상을 침착하게 잘 설명하고 아픈데도 웃는 얼굴로 듣는 이를 배려해 주는 그의 표정에 나는 왠지 모르게 울컥했다.


'재능이 없다?정말 그럴까?'


"아, 그러시군요. 그런데 재능이라는 게, 저도 예전에는 가장 단시간 동안 가장 높이, 많이 성취한 사람이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40대가 되고 보니 재능에는 시간이라는 요소가 분명히 존재하고, 20대에 앞서 가지 못했어도 30, 40대에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더라고요.

지금 제가 <커피를 줄여보세요>라고 말씀드린다고 해서 갑자기 커피를 줄이실 수 없을 것 같아요. 마음이 조급하실 수밖에 없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이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조금 더 마음 편히 공부에 집중할 수 있을 거에요. 힘내세요."


 심전도 검사를 하고 최근 접종한 화이자 백신과 흉통의 연관성까지 설명드린 후 진료를 마쳤다. 착하고 영리해 보이는 청년의 표정이 조금 편해지는 것을 확인하고 내 마음도 조금 놓인다.


 우리의 인생 시계는 달라지고 있다. 평균 수명은 늘어났고, 효율, 경쟁, 안정과 같은 기성세대의 가치관은 더 이상 절대 가치가 아니다. 우리는 조금 더 우리답고 싶고,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다. 우리의 경쟁 상대는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아니라 AI 혹은 어제의 나 일 것이다.


 20대들의 어깨가 무겁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표준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20년 후에도 표준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끝도 없는 경쟁과 효율의 싸움에서 항상 자신을 중심에 놓고 인생을 저울질했으면 좋겠다. 내가 재능이 없어서, 점수가 모자라서 그만둔 게 아니라 그것을 하지 않기로 선택한 거라고 믿기를.


 살아보니 인생은 주어진 범위 내에서 선택의 여지가 많은 곳이었다.


 휴, 이제 나도 제자리로 돌아가 엄마와 주부의 역할을 다시 할 때다.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책상에 앉아 브런치를 읽고 글을 쓰고 싶다.

 늘 긴장하고 지냈던 남편의 얼굴도 조금 펴기 시작했다. 서로의 역할을 바꾸어 해 보니 상대방이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느끼게 되는 소중한 한 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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