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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 little kitty Dec 11. 2023

Position 이동을 방해하는 관성의 법칙

position 이동과 자리매김의 원리는 닮아 있다.

바이올린을 배우면서 중급으로의 도약은 대개 스즈키 4권과 함께 시작됩니다. 스즈키 4권에 이르면 손가락 위치에 해당하는 용어인 position(포지션) 이동과, 소리에 진동을 주는 Vibrato를 배워야 소화할 수 있는 곡들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포지션 이동이란 1번 손가락(실제로는 집게손가락, 엄지는 바이올린의 neck(목) 부분을 받치고 있음)이 바이올린 현을 받치고 있는 중앙부의 bridge(브릿지)로부터 가장 먼 곳을 짚다가, 점점 브릿지에 가까워져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림 1. 참고) 현의 진동수는 진동하는 현의 길이가 짧아질수록 많아지는데, 진동수가 많을수록 고음이 됩니다. 따라서 현을 짚은 손가락이 브릿지에 가까울수록 진동하는 현의 길이는 짧아져 고음을 내게 됩니다. 3rd position이란 1st position에서 3번 손가락(실제로는 4번째 손가락)으로 짚던 위치를 1번 손가락으로 잡는다는 뜻입니다. (그림 2. 참고) 4th position이란 4번 손가락이 놓이던 곳에 1번 손가락을 놓고 시작하는 것이겠지요. 그만큼 음은 계속 높아지게 됩니다.


그림 1. 바이올린의 neck과 bridge 위치


                      


그림 2. position 이동시 1번 손가락이 놓이는 위치

포지션 이동이 원활하지 못한 것은 아마도 우리 몸이 관성의 법칙을 따르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일단 저는 왼쪽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갑니다. 바이올린을 놓칠까 두려운 마음에 너무 꼭 끼고 있기도 하고, 꽉 잡아야 큰 소리가 날 것 같아 왼팔과 손가락에 힘을 주는 것도 원인입니다. 그렇게 힘이 들어가면 손가락이 이동하기 어렵습니다. 또 3rd position 이상의 높은 위치는 많이 짚지 않아 본 곳이기에 낯설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많이 가본 길, 나의 습관이 묻어 있는 곳은 친숙하고 능숙합니다. 하지만 가보지 않은 길을 갈 때에는 두려움과 서투름이 함께 존재하므로 음정을 틀리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3rd position은 중급으로 도약하기 시작한 초보자들에게는 언제나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제가 그동안 자주 언급했던 멜라니 클라인의 개념 중 자리(position)가 있습니다.

구강기, 항문기, 성기기 등과 같이 본능적 에너지가 신체로 표현되는 형태로 발달단계를 제시한 프로이트와는 달리, 멜라니 클라인은 좋은 대상 혹은 나쁜 대상과의 관계성으로 발달을 이해했습니다. 1) 즉, 타고난 파괴적 본능을 처리하기 위해, 아이는 자신을 어떤 위치에 자리매김한다는 개념을 제시하였습니다.      


자리매김을 원활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클라인의 설명에 의하면 생애 초기 바람직한 자리매김의 습득은 편집-분열자리에서 우울 자리로 옮겨가고, 우울 자리를 극복하는 것입니다. 내가 괴로운 것은 남이 나를 괴롭히기 때문이라는 편집-분열 자리로부터, 나를 괴롭히는 것 같은 대상을 파괴하면 결국 나를 사랑해 주는 대상도 파괴된다는 후회의 우울 자리로 옮겨 올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가 경험하는 양육자는 나쁘게 느껴질 때도 있고, 좋게 느껴질 때도 있는 같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아이가 괴로울 때 다독여 주고 안아주는 양육자의 일관된 돌봄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자신의 파괴적 본능을 후회하는 우울 자리의 불안과 죄책감은, 나의 미움보다 사랑이 더 강하다는 믿음이 있어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것 역시 양육자로부터 받았던 선한 돌봄에 대한 감사의 마음에서 나옵니다.           


꼭 좋은 자리, 나쁜 자리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살면서 자신을 자리매김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학교, 직장, 결혼, 사회적 모임 등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어느 위치로 이동시킵니다. 바이올린에 있어 포지션 이동도 어쩌면 그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돌아가서, 바이올린에서 포지션 이동을 원활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은 포지션 이동을 하는 왼손과 왼팔, 왼쪽 어깨에 힘을 빼야 합니다. 힘을 뺀다는 것은 유연해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잔뜩 긴장하고 정신 바짝 차린 상태를 성실하다고 여기지만, 실은 힘을 살짝 빼고 유연해져야 한 단계 도약하여 성숙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가장 어려운 부분 중의 하나입니다. 언제나 잘하려는 마음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잘하려고 하는 그 마음을 먹는 순간,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맙니다.      


유연하게 이동했으나 음정이 틀리면 소용이 없습니다. 옮겨간 포지션에서 음정을 정확히 짚으려면, 3rd position 이후의 고음들을 많이 경험해 보아야 합니다. 나에게 익숙한 1st position만 사용하면 3rd position에서 맞는 음정을 짚을 수 없습니다. 즉, 바뀐 위치에서의 많은 경험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자리매김도 이와 비슷할지 모르겠습니다. 자리매김을 원활히 하려면 유연해져야 합니다. 경직된 삶의 태도를 돌아보고,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유연해질 수 있는지 고민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또 하나, 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 말고, 다른 자리에 놓이는 경험을 해 보아야 합니다. 때론 좋지 않은 자리라 할지라도 그곳에서 배우는 점이 있습니다. 음정이 틀릴까 봐, 결과가 확실치 않은 자리에 가서 손해를 볼까 봐 이동을 두려워하면 영원히 이동하지 못합니다. 가서 겪어 보면 어디가 틀린 음정이고 어디가 맞는 음정인지 내 몸이 기억하게 됩니다. 경험을 통해 기억이 생기는 과정, 바로 이것이 학습입니다.


저는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익숙지 않은 곳에서 연주하는 것이 꺼려져 주로 1st position을 사용했거든요. 그런데 이제부터 연주할 곡들은 고음이 많아 그렇게는 안 됩니다. 그러니 저도 익숙함을 포기하고 자꾸 자리를 이동해 보아야겠습니다. 제일 먼저 할 일은 어깨에 힘을 빼는 것이겠지요. 여러분도 경직된 부분이 있다면 힘을 빼서 풀어주시고, 두려움을 감수하고 새로운 자리로 이동해 보세요. 자리매김은 우리 인생에 있어 꼭 필요한 경험일 테니까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한 책

1. 최영민, 대상관계이론을 중심으로 쉽게 쓴 정신분석이론, 학지사, 2010, Pp 298-331.


커버 이미지 출처

https://images.app.goo.gl/Weggfx5aW6oZB8Lj7

그림 1.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c/cc/Violinconsruction3


그림 2.

https://quizlet.com/375476624/orchestra-first-third-and-sixth-po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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