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활 밀착’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바이올린 교습에 있어 ‘활 밀착’이라는 용어는 널리 쓰이고 있지만, 막상 찾아보면 이것이 ‘활밀착 기법이다’라는 일관된 교과서적 정의를 찾기는 힘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들은 표현이 다를 뿐 ‘활 밀착’을 끊임없이 요구합니다. 어떤 선생님은 활이 줄에 물려 있어야 한다고 하고, 어떤 선생님은 줄을 칼로 베듯이 활을 그으라고 합니다.
“활의 압력은 손목이나 손가락의 힘으로 가하는 것 같이 느껴지지만, 청중을 매혹시킬 만한 소리를 내려면 전신의 힘을 어깨에서 팔이나 손목을 따라 활과 줄이 맞닿는 부분에 집중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른손은 어깨에서 손끝까지 관절은 부드럽게 하고 탄력이 있게 하여 둡니다.” -시노자키 바이올린 교본 1권 중에서
<스즈키> 교본과 더불어 바이올린 교재의 양대 산맥인 <시노자키> 교본의 긴 설명과 그림을 보아도 활 밀착이라는 용어는 없습니다. 여기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활 밀착이란 특정한 기법이라기보다 원칙대로 활을 사용해서 연주했을 때 이르게 되는 이상적인 상태라는 것입니다. 이 이상적인 상태에서 바이올린 줄은 풍성하고 고르게 이어지는 진동을 보여줍니다. 주의 깊게 본다면 소리를 듣지 않아도 눈으로 줄의 진동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살다 보면 그런 일이 종종 있습니다. 잡으려고 하면 더 잡히지 않고, 추구하면 할수록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것이 지상 목표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하루하루 정직하고 소박하게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르는 상태가 있지요. 어쩌면 활밀착 상태란 ‘행복’이나 ‘꿈’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활을 그냥 누르셨어요. 그렇게 눌러서 소리를 내면 안 돼요.”
제가 바이올린 선생님으로부터 자주 듣던 말씀입니다.
‘행복해져야지’하고 행복을 직접 추구하려고 하면 자꾸 멀어지듯이, 줄에 활을 직접 밀착시키려고 하면 강한 압력으로 누르게 됩니다. 그래서 찍찍 소리가 나게 되지요. 시노자키 교본을 보니 활의 사용법과 손목, 팔과 어깨, 활에 가하는 압력에 대해 자세히 쓰여 있습니다. 이 방법대로 해야 활 밀착이 이루어지고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는 뜻인가 봅니다.
세광음악출판사, Violin Method, 시노자키 편 Pp. 8-9
어떤 수준의 소리든 일단 소리를 내는 법을 배우는 데 시간이 걸리는 관악기와는 달리, 바이올린 같은 현악기는 활을 대면 소리가 납니다. 그런데 듣기 좋은 소리가 나려면 오래 걸립니다. 그 이유는 줄의 진동을 고르고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균형 잡힌 감각과 적절한 물리력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이올린의 활을 보면, 부위별로 무게가 다릅니다. 맨 위쪽은 가볍고, 맨 아래쪽은 손잡이와 활털이 모이는 곳이 있어 무겁습니다. 따라서 줄의 장력은 활의 위치에 따라 실시간으로 변하고, 이 장력을 내 손을 통해 활에 싣게 되는 무게와, 활의 속도와, 내가 누르는 압력을 조절하면서 일정하게 유지해 줄 때 가장 아름다운 소리가 나게 됩니다.
세광음악출판사, Violin Method, 시노자키 편, p5
그런데 말로는 쉬운데, 이것을 몸으로 체득하기까지는 감각과 운동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시간을 두고 연습하지 않으면 바이올린을 잘할 수 없습니다. 어릴 때부터 신동이라고 하는 연주자들은 타고난 재능도 있지만, 그만큼 단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연습한 결과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줄과 활의 밀착이란 사람 간의 애착과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조건 가까이 붙어있다고 해서 이상적인 밀착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애착이 과하면 집착이 되듯이, 밀착이 과하면 찍찍 소리만 나게 됩니다. 또 소리가 난다고 해서 밀착이 되지 않는 상태로 연주하면 가늘고 울림 적은 소리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저는 아직도 활 밀착 상태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활을 잡은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검지 손가락으로 활을 조절하는 능력이 부족하고, 엄지손가락에도 힘이 많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연주하다가 갑자기 활 잡는 자세를 교정하려고 하면 짜증이 납니다. 갈 길이 먼데, 기본부터 다시 하려면 다른 곳에서 또 오류가 나고, 진도가 더디게 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급 이상으로 올라가려면 기본부터 다시 짚어야 합니다. 모든 기본자세가 한꺼번에 엉망인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각자가 약한 부분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활을 잡는 엄지손가락에 힘이 들어갑니다. 또 어떤 사람은 새끼손가락이 활에서 떨어져서 활을 제대로 지지해 주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팔꿈치를 중심으로 앞팔의 운동이 필요한데, 유연함을 위해 손목만 많이 쓴다면 활이 줄로부터 뜨게 됩니다. 이렇듯 각자의 취약한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나 자신에 대해서 조금 더 연구해야 합니다. 저의 예전 바이올린 선생님은 “바이올린을 배운다는 것은 내 몸에 대해서 알아가는 과정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상적인 어떤 틀에 맞추어 나 자신을 그냥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먼저 할 일은 나 자신을 파악하는 일이었습니다. 기본적인 원칙을 배우되, 내가 약한 부분을 어떻게 보완하면 좋을지 스스로 연구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는 레슨도 필요하고, 거울도 필요하고, 홀로 생각하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저는 필라테스를 배우는데, 수업시간에 제 체형과 습관에 대해서 짚어주시는 것들이 바이올린을 배울 때에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척추를 곧게 세워 등을 펴는 것, 자연스럽게 호흡하는 법 등은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 매우 필요한 동작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문제로 보이면 그것만 빨리 교정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문제 뒤에는 연관된 사건이 있습니다. 문제를 둘러싼 보다 큰 상황이 현재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이올린도 마찬가지입니다. 활 밀착이라는 상태에 이르기 위해서는 빙산의 밑에 있는 큰 몸통을 보아야 합니다.
활의 사용법과 손목, 팔과 어깨, 활에 가하는 압력 등을 하나씩 체크해 보며 줄의 진동을 다시 확인해 보세요. 활발하게 움직이며 진동이 일정하게 유지된다면 활 밀착이 된 상태입니다. 내림활에서 올림 활로 방향을 바꿀 때, 진동은 끊기기 쉽습니다. 움직임이 전환되는 곳에서 나의 손가락과 손목, 팔과 어깨를 거울을 보며 점검해 보세요. 훨씬 아름다운 소리가 나며 “바이올린 잘한다.”라는 말을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