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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 little kitty Nov 19. 2023

성인이 되어 바이올린 시작하기

어릴 때 배운 것과 어떻게 다를까?

한 행사장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이 바이올린을 들고 나왔습니다. 선생님으로 보이는 연주자 분과 함께 '천 개의 바람이 되어'를 연주하더군요. 지난 3개월 동안 배웠다고 하니, 혼자 연주하기에는 무리였나 봅니다. 그녀는 '어릴 때 배우지 못한 게 한이 되어서' 이제라도 배우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3개월 배운 실력으로 행사장에서 연주를 하다니 그녀의 용기가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어릴 때 배우고 싶었는데 한이 되어서'라는 말은 저에게도 유효합니다. 저는 20살이 되던 해, 처음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음악을 좋아했지만 그냥 취미로 피아노를 배웠던 저는 바이올린도 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은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바이올린을 배우려면 악기도 새로 사야 하고, 레슨비도 만만치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대학생이 되자마자 바이올린을 배우고, 악기도 스스로 벌어 구입했습니다. 대학교 오케스트라 동아리에 들어가면 중급 이상 되는 선배들이 악기를 무료로 가르쳐 줍니다. 대개 어릴 때 3-4년 이상 배운 분들입니다. 그런데 저처럼 동아리에 들어와 처음 악기를 배운 사람 중에 졸업하기 전까지 고급 레벨에 이른 사람은 겨우 1-2명 정도였습니다. 여기서 고급 레벨이라 함은 현악 4중주 같은 실내악을 연주할 수 있는 수준을 말합니다. 초보로 시작한 사람들은 주로 second violin 파트에 머물러 있거나 연주회에 서기 버거워했습니다. 저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렇다면 성인이 되어 시작해서 고급 레벨로 올라간 분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잘하고 싶으면 개방현 긋기를 1000번 하고 와라."

오케스트라 동아리에서 처음 들은 이야기였습니다. 개방현 긋기란 골프로 치자면 연습장에서의 기본 스윙 연습, 서예로 따지자면 일자 긋기 연습처럼 딱히 퍼포먼스라고 할 수 없는 담백한 기본기 연습입니다.


한 번 연습 시간이 1시간이라고 가정할 때 scale(음계), 활 긋기, 연습곡 연습을 모두 해야 하므로 활 긋기 시간에 최대 20분 정도를 할애할 수 있습니다. 이때 그냥 개방현을 긋기만 해서는 안 되고, 거울을 보고 소리를 듣고 줄의 진동 정도를 보면서 자신을 모니터링해야 합니다. 모니터링이 들어간 개방현 긋기는 20분 동안 20~30개 정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중간에 좀 쉬어야 하거든요. 줄이 4개이니 한 줄당 5-6번씩 그으며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해 가는 것이죠. 주 4-5일 연습한다고 하면 한 주에 100개, 1000개를 하려면 최소 3개월 정 걸리겠습니다. (주 5일 1시간씩 3개월 연습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곡 연습은 몇 번 하면 진도도 나가고 연주가 느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개방현 긋기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피드백이 없는 지루한 작업인 것이지요. 설령 1000개를 완벽하게 모니터링하면서 3개월간 집중적으로 그었다고 해도, 왼손으로 음계를 짚는 순간 원래 실력으로 돌아가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대개 초보자들은 기본 활 긋기 연습을 오래 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피드백이 있는 일에 몰입하게 됩니다. 직장에 나가면 월급을 받고, 브런치에 글을 쓰면 라이킷을 받습니다. 즉각적 피드백이 없는 일은 어쩐지 흐지부지 됩니다. 결국, 바이올린의 초급에서 중급, 고급레벨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첫째, 지루한 기본기 연습을 꾸준히 해 내야 합니다.


둘째, 스스로를 모니터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초급 과정에서는 모니터링이 잘 안 되기 때문에 혼자 연습을 너무 많이 하는 것보다 자꾸 레슨을 받는 것이 더 좋다고 합니다. 저는 바이올린을 시작할 때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경제 사정이 넉넉지 않아 제대로 된 선생님에게 레슨을 거의 받지 않고 혼자 연습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잘못된 방법입니다. 그때 생긴 잘못된 습관들이 지금 고치려면 배로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지금은 레슨을 열심히 받고 있지요.


"하루 4-5시간을 매일 연습하는데, 늘지 않아요. 왜 그럴까요?"구독자가 많은 한 바이올린 선생님 유튜브 강의에서 이런 질문이 들어왔습니다. 선생님은 이런 답을 남겨주었습니다.


"차라리 연습 시간을 줄이고, 스스로를 모니터링하는 것이 더 좋겠습니다. 전공자도 4시간 이상 매일 연습한다는 건 어렵습니다. 아마추어로 생업이 있으신 분이 그렇게까지 연습하신다면 지쳐서 얼마 못 버팁니다. 아니면 4시간 내내 집중해서 연습하시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 그러니 집중할 수 있는 시간만큼만 연습하시고 나머지는 스스로를 점검하는 시간을 가지세요."


그러면 어릴 때 배우기 시작한 것과 성인이 되어 시작한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아이들이라고 해서 피드백이 없는 기본기 연습을 더 잘해 낸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다만, 성인들은 내가 레슨을 계속 받을지, 연습을 언제 얼마나 할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레슨을 계속 받을지, 연습을 얼마나 할지를 주로 부모가 결정합니다. 그리고 성인들은 자신의 생업이 대개 있는 상태에서 취미로 바이올린을 배우지만,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학원에 가는 것이 곧 생업입니다. 이런저런 핑계로 연습을 덜하더라도 같은 조건의 성인보다는 반강제로 기본기 연습을 더 많이, 꾸준히 할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를 모니터링하는 측면은 어떨까요? 아이들은 오히려 성인보다 메타인지가 발달하지 못해 모니터링이 잘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메타인지 능력과 무관하게 고려해야 할 요소가 있습니다. 진도나 퍼포먼스에 대한 욕심이 있으면 모니터링할 시간이 줄어듭니다. 결과물이 우선이면 과정은 등한시되는 것이지요.


아이들은 전공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면 바이올린 시작한 지 2년 안에 스즈끼 4권을 끝내야지, 내년에는 모차르트 협주곡에 도전해서 발표회를 해야지 이런 목표가 없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런데 성인들은 자신의 소중한 시간과 비용을 스스로 투자해 선택한 길이기에 나름의 목표도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면 모니터링보다는 진도를 나가고 곡 연습 하는데 에너지를 더 투입합니다. 활 긋기 1번을 제대로 하는 것보다 곡 연습을 2-3번 더 하는 것이 성인 연습의 일반적인 패턴이 되기 쉽습니다. 반면 아이들은 선생님이 짜 준 패턴에 따라 천천히 배워 나갈 확률이 높고, 이 과정에서 선생님의 모니터링이 더 많이 주어질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어릴 때 배우는 것이 더 유리한 점이 있으나, 성인이 되어 시작했어도 중급 이상으로 도약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어릴 때 시작한 분들처럼 중, 고급 과정에 이르고자 한다면 지나간 시간을 탓하지 말고 두 가지를 체크해 보세요. 나는 지겹고 재미없는 기본기 연습에 얼마나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지, 또 연습할 때 자신의 소리를 듣고 거울을 보며 자세를 점검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저 역시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며 다시 연습을 시작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개방현 긋기 연습 :  시작할 때 활이 줄에 밀착되어 있어야 하고, 너무 줄을 누르면 찍찍 소리가 난다. 활의 아래쪽은 무겁기 때문에 힘을 빼야 하고, 활의 중간부위에서는 활떨림이 발생하지 않도록 힘 조절이 필요하다. 활의 윗부분을 쓸 때는 약간 눌러주며 활 접촉면이 뒤집어지지 않게 바른 방향으로 그어야 한다. 스스로 영상을 찍거나 녹음해 보면 자기 자신을 더 잘 모니터링할 수 있으나, 자신의 모습을 보고 소리를 듣는 것은 고통스러울 수 있다.



오늘 저만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계속 편집이나 발행에 에러가 발생하네요. 저장이 안 되었다가 또 중복저장되고, 발행이 안 되었다가 되고..

어쩔 수 없이 두 번 발행을 했어요. 너그러이 이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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