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을 시작하며 가장 고민되는 것 중 하나는 악기 구입입니다. 저는 악기를 처음 잡았을 때 국산 수제 악기를 샀고, 올해 6월 처음으로 악기를 바꿨습니다. 독일제 올드 바이올린으로, 저에게는 큰 결심이자 도전이었습니다.
올드 바이올린이라 함은 1900년도 이전에 만든 것을 말합니다. 무조건 오래되었다고 올드바이올린이라고 할 수는 없고, 이름 있는 제작자, 오랜 세월 견뎌온 나무의 견고함과 깊은 울림이 있어야 올드 바이올린으로서의 가치가 있습니다. 기성복이 나오기 전에는 옷을 직접 맞추었듯, 그 시대에는 각 연주자의 체형에 맞는 개별 바이올린을 제작했습니다. 그에 비해 모던 바이올린이란 1900년대 이후에 제작된 것들이며, 어느 정도의 정형성을 가지고 있어 아마추어 연주자가 쓰기에는 손색이 없습니다. 모 공방에서 만든 스트라디바리우스 스타일의 모던 악기 이렇게 말이지요. 이에 반해 새 악기는 최근 10년 내외 제작된 것으로 대규모 공장생산이거나 수제 바이올린이 있습니다.
제가 98년도에 처음 악기를 살 때는 종로의 낙원상가에 갔습니다. 혼자 악기를 고를 자신이 없어서 동아리 선배 중 바이올린을 잘하는 분을 설득해서 함께 갔지요. 저는 당시 그 악기의 쨍쨍한 톤이 매우 마음에 들어서 70만 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국산 수제 바이올린을 샀습니다. 요즘은 국내에도 바이올린 제작 공방이 있고, 국산 수제 바이올린도 제법 좋은 퀄리티로 제작되어 나온다고 합니다. 하지만 98년도에는 그렇지 않았기에 일종의 모험이었습니다. 악기를 사 왔을 때 동아리 사람들은 별로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값을 조금 더 깎아도 될 뻔했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요. 하지만 저는 악기가 마음에 들어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정말 악기를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게는 조금 더 가볍고, 소리는 조금 더 깊은, 중급자 이상에게 필요한 악기를 사서 훨훨 날아가고 싶었어요. 모던이든, 올드든 제가 생각했던 예산은 400만 원 이하였습니다. 그 정도로는 올드 악기 중 급이 낮은 것, 모던 악기 중에는 중간 정도를 구입할 수 있습니다. 저는 서초동의 악기사에 전화로 예약을 하고, 두 군데를 가서 3-4가지의 모던, 올드 악기를 시연해 보았습니다.
200만 원 대의 악기는 중저가 악기를 사는 곳에 가서 발품을 팔면 100만 원대에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300만 원대 악기는 주로 모던이고, 올드는 찾기 힘듭니다. 물론 악기사가 아닌 곳에서 온라인을 통해 저렴한 올드 악기를 판매하는 곳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곳의 악기는 관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거나 사이즈, 모양 등이 표준에서 너무 벗어난 악기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결국 돈을 더 주고 수리를 해야 해서 30-50만 원 정도 비용이 더 듭니다. 400만 원 이상의 악기도 시연해 보았습니다. 300만 원대 악기와 차이점이 있다면 고음인 것 같습니다. 고음부의 소리가 더 잘 울리고 트여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악기를 잘 고르는 법은 아마추어에게는 이론과 경험이 쌓여야 가능합니다. 저는 학원 원장님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지요. 전공자라고 해도 악기를 고르는 기준이나 취향은 다를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으로 보는 사항들이 있습니다. 먼저 나무의 두께와 결, 바이올린 구조의 대칭성, 뒤판을 이어 붙였는지 한 판으로 되어 있는지, 울림이 얼마나 깊고 오래 증폭되는지, 고음부를 연주했을 때 얼마나 소리가 잘 뻗어나가는지 등입니다. 다음의 영상을 보시면 국산 새 악기를 예로 들어 몇 가지 체크사항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국산 수제 바이올린인 몬테 바이올린을 통해 악기 고르는 법을 보여줍니다. 공방과 특정 악기사가 연결되어 SNS를 통해 홍보를 하고 대량 판매합니다. >
저는 서초동에서 혼자 도저히 악기를 선택할 수 없을 것 같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보는 안목도 그렇지만 일단 예산 내에서 마음에 드는 악기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무한정 시간을 투자해 계속 악기를 볼 자신도 없었고요.
그런데 마침 바이올린 학원에서 비슷한 시기에 올드 바이올린을 구입하신 분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악기를 2개 구입하셨는데, 학원에 가져와서 보여주셨어요. 그중 세컨드 악기로 쓰려고 하셨던 독일제 올드 바이올린이 너무 마음에 들더라고요. 물론 비록 이름 없는 공방의 악기였지만, 어찌 됐든 연도는 1700년대로 라벨이 붙어 있고 올드가 아니라고 해도 풍성하고 진한 톤이 제 마음에 들었습니다. (모던 악기 중에도 올드 라벨을 붙이고 스크래치를 내서 올드처럼 변장하는 악기가 종종 있으니 올드라는 말을 직접 다 믿어서는 안 됩니다. 올드라고 하면 값을 더 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 후 다른 악기를 아무리 보아도 그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없었습니다.
저는 그 악기를 구입하고 싶었지만, 그분이 세컨드 악기로 쓰신다고 해서 포기해야 했어요. 그런데 그 후에도 악기를 구입하지 않고 버티는 저를 보고, 그분께서 적당한 가격에 악기를 파시겠다고 하셨어요. 저는 첫사랑을 재회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악기를 구입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예산 안에서 올드 바이올린을 드디어 구입한 것입니다.
악기를 고르면서, 바이올린은 어쩌면 가수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래를 잘 부르며 가수로서 표현력과 테크닉이 뛰어난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수로서의 우열 외에도 취향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트로트 가수가 필요한 자리가 있고, 성악가가 필요한 자리가 있습니다. 더 풍부한 성량과 뛰어난 테크닉이 있어도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톤을 대신할 수 없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바이올린도, 값어치를 매기기는 하나 취향을 무시할 순 없습니다. 그러니 첫째, 고가의 악기보다는 내 취향에 맞는 악기가 진짜 귀한 악기라는 생각입니다. 내 취향에 맞는 악기를 고르기 위해서는 많이 들어보고 많이 겪어보아야 합니다. 내가 초보자라고 해서 악기를 잘 모른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기회가 되면 많이 시연해 보세요.
둘째, 악기도 옷장 속의 옷과 비슷합니다. 마음에 들어서 샀지만 몇 년 쓰다 보면 내 실력도 변하고 내 취향도 변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게 바뀌는데 햇수로는 25년, 악기를 연주한 지로는 7년이 걸린 셈이지만, 좀 더 집중적으로 악기를 하신다면 2-3년이 될 수도 있겠지요. 그러니 처음부터 고가의 악기를 살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여유가 되는 한에서 현재 마음에 드는 악기가 가장 좋은 답입니다.
셋째, 완벽한 악기를 고르느라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을 쏟지 않으셔도 됩니다. 왜냐하면 같은 악기를 연주해도 어떤 사람이 연주하느냐에 따라, 어떤 줄과 어떤 활과 어떤 송진을 사용하느냐, 사운드 포스트의 위치를 바꾸고 손을 보느냐에 따라 조금씩 톤이 달라지거든요. 그러니 더 풍부하고 깊은 소리를 내고 싶다면 일단 활 긋기 연습을 더 많이 하시고, 줄도 바꾸어 보시고 악기사에 방문해서 도움을 받아보세요. 경험해 보아야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넷째, 본인이 독주를 주로 할 것인지, 합주를 주로 할 것인지를 잘 생각해서 악기 톤을 고르시는 것이 좋습니다. 실내악의 경우 소리가 조화로운 것이 더 좋고, 독주의 경우 아무래도 더 화려하고 풍부한 소리가 좋을 테니까요. 이건 선생님이나 다른 전공자의 견해를 빌리는 것도 좋겠습니다. 지금 내 악기 소리가 어느 정도 풍부한지 스스로 객관적으로 판단하기는 쉽지 않거든요.
내가 좋아하는 취미를 위해 살 물건을 정하고 고르는 과정을 이래저래 행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발품을 팔아야 하고 결정하기 어려운 면이 있지만, 악기에는 취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고 자신 있게 골라보세요. 새 차를 구입하거나 새 집을 장만했을 때만큼은 아니더라도 뿌듯함과 행복함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오랜 시간 쓰던 바이올린을 학원에 있는 다른 학생분에게 판매했습니다. 원장님이 중간에서 나서주셨지요. 필요한 사람에게 적절한 악기를 골라주시는 우리 원장님은 정말 좋은 분입니다. 이제 다시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좀 서운하네요. 구입 당시 국산 수제 새 악기였던 예전 악기로 녹음한 영상과 지금 악기로 같은 공간에서 녹음한 같은 곡의 영상을 첨부합니다. 스즈키 4권 맨 처음에 나오는 Seitz concerto No.2 G major 앞부분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