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뷰에서 바라보는 우리의 현주소
글 쓰는 큰 아이가 죽고 싶다고 말했다. 여러 방법으로 돌려서 말했는데 알아듣지 못했다. 그게 부모한테 할 소리냐고 화를 낸 날도 있었다. 막상 청소년 자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땐 그런 얘기 듣기 싫다고 했던 아이라 진지한 고백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엄마 노릇이란 아무리 해도 선형함수가 아니었다. 좋은 양육자가 되고 싶어서 시간을 투입하고 공부도 했지만, 그 끝에 얻어지는 건 또 다른 미션과 퀘스트였다. 1월 첫 주, 혼자서 두 아이의 졸업식을 치르고, 여행을 데려가고, 독감에 걸린 두 아이를 1주일이나 돌봤다. 지난 토요일, 이제야 숨 돌릴 겸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들어오는 길에 과외 선생님한테 전화가 왔다.
"어머니, OO가 오늘 과외시간에 죽고 싶다고 했어요. 부모님께 빨리 말씀드리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지난가을 예고 입시를 치렀고, 떨어졌다. 그동안 나름 열심히 준비했는데 불합격한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물론 올해 문예창작과 입시 경쟁률은 십 년 이상 일정했던 수치를 깨고 급상승했다. 쓰고 싶은 사람이 읽고 싶은 사람보다 많은 어른들의 세계가 반영된 것인지, 고교학점제에 예고가 유리해서인지, 한강의 노벨상 수상 때문인지 아무도 모른다. 문제는 아이보다 내가 더 속상했고, 억울했고, '공부'에 주력하지 않은 것을 탓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합리주의, 이성주의에 근거한 근대철학에 반기를 들고 일어선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고 했지만 초월적 인간 위버멘쉬를 포기하지 못했고, 인간을 본능(id)에 충실한 존재로 끌어내린 프로이트조차 '자아(ego)'라는 타협점을 남겨두었다. 근대 철학에 반기를 들었지만 어쩔 수 없이 마지막 근대인이었던 그들처럼, 나 역시 진보적인 교육관을 가진 줄 알았건만 마지막 꼰대인이었나보다. 나는 지난 두 달간 아이에게 어떻게 해야 공부를 잘할 수 있는지, 지금 무엇이 문제인지, 라테는 어땠는지 유치한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던 것이다.
물론 이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플라스틱도, 유리도 아닌 도자기 같은 예민하고 섬세한 기질, 개인의 앞날만 생각하지 않고 시대적, 사회적 부조리에 과도하게 반응하는 성격은 아이의 몫이다. 한편으로는 아이가 또 한 번 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는 나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해?"
좀처럼 엄마에게 반기를 들지 않던 아이가 이런 말을 하다니, 마음속에서 저항감이 일었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지금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틀리더라도 부모를 넘어서고 싶어 한다는 것을.
두 시간 넘게 아이의 말을 들어주고, 대답하고, 또 참아내면서 그렇게 나의 토요일이 갔다. 일요일까지는 나 역시 억울함과 슬픔, 불안하고 무기력한 마음 때문에 불안정했다. 그런데 월요일, 출근과 동시에 둘째와 작은 여행이 계획되어 있었다. 우리가 10년 가까이 살았고 지금도 나와 남편의 일터가 있는 S 신도시에 가서 1박 2일 놀기로 했기 때문이다. 둘째 아이는 동갑내기 사촌과 베이킹 클래스도 듣고, 방탈출도 하고, 호텔에서 모처럼 하룻밤 같이 자기로 계획했다. 두 아이는 신생아 때부터 둘도 없는 친구였다. 나도 어릴 때 동갑내기 사촌과 애틋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기에 중학교 가기 전, 두 아이를 잘 챙겨주고 싶었다. 그런데, 이 상황에 큰 애를 두고 가도 될까?
엄마와 얘기하고 나서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는 큰 아이는 '안 죽을 테니 다녀오라'라고 했다. 병원 예약을 알아보고 아이에게 언제든 집으로 올 수 있으니 전화하도록 했지만, 여전히 내 마음은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너무 많은 생각이 오갔다.
2024년 혼불문학상 수상작인 <시티 뷰>에는 S 신도시가 나온다. 여주인공 수미는 내가 묵기로 한 바로 그 호텔의 꼭대기층 바에서 외도 상대인 트레이너와 술을 마시고, 룸으로 직행한다. 나는 딸과 조카딸, 남편과 함께이므로 룸이 먼저고 바는 나중이다. 전에는 재즈 공연을 보러 가끔 왔었는데, 그날은 조용히 맥주만 마셨다. 머릿속에는 큰 아이 생각이 가득했다.
이 도시는 원래 갯벌이었다. 어민들을 내보내고, 흙을 가져와 메꾸었다. 그렇게 무에서 유를 창조했고, 거대한 아파트 단지를 지었다. 65층짜리 호텔을 올렸고 나는 그 65층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
@소위 김하진 작가님이 온라인 북토크에서 공모전에서 수상하려면 '시대정신'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내가 살던 곳의 이야기가 담긴 소설이라고 해서 읽어본 수상작 <시티 뷰>는 가식과 위선으로 가득 찬 이야기였다.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완벽해 보이는 부부가 서로 바람을 피우는 이야기에 어떤 시대정신이 담겨 있을까, 의문이 들었는데 오늘 내 상황과 연결 지어 보니 그럭저럭 이야기가 맞는다. 갯벌을 메꾸어 이렇게 멋진 신도시를 짓고, 화려한 고층빌딩이 들어섰다. 학군이 형성되었고 돈이 도는 도시다. 덕분에 우리도 이곳에서 한동안 여기에서 살았고, 여전히 경제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인생이 선형함수가 아니라는 점을 <시티 뷰>는 말해주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번듯하고 화려한 도시에서 화려한 부부가 살아가지만 서로를 속이고 있고, 각자 불행하다. 화려하고 부유해서 불행한 것은 아니지만, 화려하고 부유해도 불행할 수 있다는 점이 바로 현대사회의 모순인 것이다.
나도 어쩌면 아이에게 그런 모순을 가르치고 있었는지 모른다.
'나 때는 말이야, 너보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열심히 했어.'
그런데 그 열심히 한 것이 같은 결과를 불러오지 않는 시대다. 아이는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고 있었다. 부모를 넘어서고 싶을 만큼 성장하고 있지만, 아직도 부모의 기준이 중요한 나이기도 하다. 세상을 바꿀 순 없지만 부모의 생각은 조절할 수 있다.
서둘러 돌아온 화요일부터 오늘까지, 아이와 많은 대화를 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병원도 다녀왔다. 글쓰기 수업을 위해 왕복 2시간 거리를 다녀오고, 요리학원에서 생활요리 실습도 했다. 약간의 두통을 제외하면 아이는 다시 활력을 찾고 있다. 그렇게 우리의 시간은 흘러가고, 또 고통을 지나 성장한다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