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weet little kitty Jun 30. 2022

남편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세간의 기준 말고 나만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선생님, 여동생이나 누나 있어요?"

"아니, 남동생만 있어."


"그럼, 집에 제사 있어요?"

"작은 집이라 제사 안 지내."


"혹시.....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선생님 이름으로 된 집 있어요?"

"응, 아주 작은 건데 하나 있다고 들었어."


"근데 왜 물어보는 거야?"

"아뇨.. 뭐 그냥."


'오호, 그럼 백점 만점인데?'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남편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내가 했던 질문들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질문 내용이 너무 속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결혼한 후, 내가 얼마나 더 많은 것을 요구했는지 염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염치의 문제인지는 한 번 생각해 볼 문제다. 내 마음속에는 원래 나만의 기준 있었는지도 모다.


 요즘 결혼과 이혼 사이에서 고민하는 부부들의 TV 다큐 프로그램이 있다. (프로그램 제목도 결혼과 이혼 사이) 방송이니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닐 테고, 어느 정도는 편집 방향대로 연출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기 다른 부부들의 고민을 면, 배우자를 선택한 나만의 기준이 있고, 그 기준은 자신의 과거 관련이 있었다.  


 인간의 인지 과정이란, 과거의 범주화된 기억에 의존한다고 한다. 누군가 사과를 본다면, 이전에 사과를 본 적이 있어야 그 데이터에 의존해서 그것이 사과인 줄 아는 것이다. 사과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은 양초를 처음 보고 국 끓여 먹었다는 이야기처럼 사과가 어떤 존재인지 알기 어렵다.


 이것은 살아감에 있어 꼭 필요한 뇌기능이지만, 한편으로는 <선입견>과 <프레임>을 낳는다. 눈앞의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내가 알고 있는 유사한 것을 떠올리는 것이다. 우리가 배우자를 선택함에 있어 부모를 떠올리는 것은 뇌의 자연스러운 기능인 동시에 불행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결핍된 양육의 상처와 사회화 과정에서 발생한 상처는 배우자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영향을 끼친다. 우리도 모르게 채워지지 않았던 부분을 가진 사람에게 끌리는 것은 물론, 양육자의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특성을 지닌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양육자의 이미지가 합성되어 어떤 모습을 지니게 되는데, 이를 이마고(imago)라고 부른다.

우리는 부모에게서 충족하지 못했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무의식은 "걱정하지 마. 내가 적당한 복제품을 보낼 테니 그 사람을 통해 다시 해 보면 돼."라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이마고 배우자의 역할이다.

 하지만 만약 사람들이 부모의 부정적인 특징까지도 지니고 있는 누군가와 막 관계를 맺기 시작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면, 아마도 곧장 뛰쳐나와 도망쳐 버릴 것이다. 이 딜레마에 대한 자연스러운 해답은 '로맨틱한 사랑'이다. 로맨틱한 사랑은 사람들을 마취시켜 오랜 상처의 치유가 필요한 수술대, 즉 부부관계로 향하게 한다.

릭 브라운, <이마고 부부관계치료> 중에서

 

 남편은 전형적인 외향인, 아버지는 내향인이었다. 내가 자라던 시대만 해도 남자의 외향적 성격이란 사회생활을 잘한다는 뜻이었고 가장으로서 우월한 특성으로 연결되었다. 아버지는 그 반대점에 서 계신 분이었다. 뿐만 아니라, 남편은 친정 식구들에게 나에 대한 칭찬을 연발했고, 그들의 시시콜콜한 질문에 상냥하게 대답했다. 아버지와는 정 반대의 모습이었다. 그런 면에서 남편은 내게 이상적인 배우자로 각인되었다.


 그런데 결혼하고 보니, 나의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엄마를 비롯한 세상의 기준은 남성의 외향성을 우월함으로 보았는지 모르지만, 나의 마음 속 우선순위는 집에서 자상하고 대화가 많은 남편었다.


 아버지는 내향적인 성격을 끝없이 갉아먹는 직장에서 일하고 돌아와 에너지가 고갈된 분이었고, 남편은 외향적인 성격을 100 퍼센트 소진하고 집에 오면 역시 에너지가 고갈되는 사람이었다. 내가 장점으로 보았던 외향성과 넘치는 에너지의 이면이었다. 나의 분노는 늘 거기에서 시작되었다. 시누이나 제사, 자기 명의 집 같은 이슈는 결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이처럼 부모님과 현 배우자의 닮은 단점을 찾아내기란 비교적 쉽다. 이런 생각을 할 때쯤이면 이미 신혼을 지나 배우자에 대한 불만이 누적된 상태일 것이기 때문이다.


 지만 아버지의 단점은 알아도 장점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니 남편과 공통적인 장점은 더더욱 알 수 없었다. 아마 혼자서는 지금까지도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이 때문에 시작한 심리 상담에서 결혼 생활과 관련된 탐색이 이루어졌고, 뜻하지 않은 계기로 나는 마음 속 깊은 곳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아버지랑, 남편 분이랑 어떤 면에서 닮아서 선택한 것 같으세요?"


 "닮은 점이 없어요. 저는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아서 외모도 성격도 정 반대의 사람을 선택했어요. 어떡하죠? 결혼을 잘못했나요?"


 "그럴 리가요. (빙그레 웃으며) 아마도 의식 수준에서는 닮지 않았다고 느꼈지만, 무의식에서는 분명히 좋은 점을 찾았기 때문에 결혼하셨을 거예요. 자신의 이성 부모와 닮았다고 느끼는 배우자를 이마고 배우자라고 하는데, 이마고 배우자를 통해 결핍을 채울 때 가장 만족감을 느낄 수 있어요. 한 번 잘 생각해 보세요."



 

장점을 찾아내려는 시도는 하루 만에 성공했다. 중요한 것은 외모나 성격이 아니었다. 나는 <나를 대하는 태도>를 관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와 남편은 둘 다 <내게 가장 좋은 것을 주려고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평범한 직장인이었으나 학군이 좋은 곳에서 나를 키우려고 하우스 푸어처럼 살았다. 수개월치 월급을 능가하는 그랜드 피아노를 사 주셨고, 내가 원한 사교육과 온갖 새로운 경험에 비용을 아끼지 않았다. 모든 부모는 자식에게 최고의 기회와 경험을 주고 싶어 하겠지만, 아버지는 특히 정서적 경험, 소소하게 함께하는 시간보다 물질적, 외적 경험에 자원을 할애하는 분이었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무엇을 갖고 싶다거나 어디를 가고 싶다고 하면 남편은 열일을 제쳐두고 그 일에 몰두다. 비용이나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은 정말 신중하게 말해야 한다. 한 번 잘못 말했다가 그 일을 진행하느라 다른 일들을 몽땅 희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집안일을 하거나 다음 날 아이를 학교에 보낼 준비, 생존을 위한 모든 일들이 후순위가 된다.  밖에서 식사를 하거나 어떤 활동을 할 때 남편은 엉덩이 한 번 붙이지 않고 적극적으로 몸을 쓰는데, 집에 와서는 부처님상이 되곤 했다. 이런 상황은 뜻하지 않게 나를 팔자좋은 사람, 결혼 잘 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지만 그것은 대개 밖에서, 누군가 보고 있을 때였다.


 반면 집에서 사소한 집안일을 거드는 일, 소소하게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 내 표정이나 기분을 읽는 일들은 남편에게 어렵다. 밖에서 항상 최고의 선택과 실행을 해야 하므로 집에 오면 에너지가 없고. 당장 표 나지 않는 일에 투자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 나는 많은 물질적 뒷받침을 해 주셨으나 정작 웃으며 함께 시간을 보낸 적 없는 아버지가 떠오른다.


 처음에는 장점으로 인식했던 점이 결국은 단점으로 보이는 것이 결혼생활의 권태기 인지도 모른다. 권태기를 지나면서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바쁘다는 핑계로 갈등 상황을 피해 보지만 결국은 터지게 되어 있다. 시기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결국  아버지와 닮았다고 판단한 남편의 장점과 단점을 알게 되고 나니 나는 스스로가 측은하게 느껴졌다. 나는 화려한 조건을 원했던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 채우지 못했던 작은 소망을 이루고 싶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남편에게도 같은 사연과 원리가 적용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문제 해결의 열쇠는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의 사연에 대해 깨닫게 되면,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았듯 상대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 연민의 마음이 많은 오해를 풀고 거대한 분노를 녹인다.  역시 천천히 그 과정을 거쳤고, 이제는 미묘한 신경전 정도로 부부의 갈등을 마무리 지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마고 상담에서는 공감하고 반영하는 대화법을 중요하게 가르친다. 하지만 상담사를 찾아가 대화법을 배우고 정기적 상담을 함께 받을 수 있는 부부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려면 둘 다 강력한 관계 회복 의지도 있어야 하고, 시간과 비용을 들여 나를 바꾸어야 하는데 대개는 갈등이 곪아버려 분노로 가득찬 상태이기 때문이다.


 일단은 연민의 시으로 상대를 바라보는 시각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대화는 내 마음을 다독이면서 같이 연습하고 따라하면 된다.


 알코올 중독 부모의 자녀가 다시 알코올 중독 배우자를 만나는 이야기는 흔하다. 굳이 편한 길을 가지 않고 트라우마 속으로 들어가 그것을 치유하고자 하는 인간의 속성을 다음과 같은 글로 이해해 본다.


 폭풍우 속에서 가지가 꺾여 버린 나무는 (다른 부위가 아닌) 상처 입은 나무껍질 위로 다시 서서히 자라나는 회복 과정을 갖게 된다. 인간도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성장 과정 속에서 어떤 식으로든 억제되고 방해받은 것이 있다면,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려는 무의식적 열망을 가지게 된다.

릭 브라운, <이마고 부부관계 치료> 중에서


 그 이론에 따르자면 나는 시 태어나도 남편과 결혼할 거냐는 진부한 질문에 "그렇다." 고 답할 것이다. 다만 거기엔 단서가 붙는다. <남편을 만나기 전 내 가족과 인생이 지금과 똑같다면> 말이다.


<결혼과 이혼 사이>의 부부들의 방송 내용이 모두 진실이라는 가정하에, 그들에게 이렇게 추천하고 싶다.

결혼은 나의 과거를 알아가는 과정이고 거기에 해답이 있다고. 그러니 어떤 선택을 하든 나 자신에 대해 충분히 탐색하고 궁금해하고 알아가라고. 이 세상에 나에 대해 알아가는 것만큼 의미 있는 일은 많지 않으니 말이다.


덧붙이는 말


 저는 부부상담사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아닙니다. 미디어를 보고 나름 개인적 경험에 바탕하여 쓴 것이니 전문가의 입장처럼 보편적 원칙은 아닐 수 있습니다. 너그러이 양해 바랍니다. 또한 논란이 될 부분이 있다면 얼마든지 코멘트를 남겨주세요. 감사합니다.


커버 이미지 출처: 티빙 홈페이지

매거진의 이전글 글쓰기가 잘 안 되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