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가 두려워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만 오천 원을 천오백 원으로..."
공식적으로 띨띨이가 된 슬아가 회한 속에서 스티커를 붙이며 변명한다.
"같은 책을 계속해서 편집하다 보면 뭐가 뭔지 모르게 돼... 눈이 낡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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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든 책이든 뭔가를 창작하는 사람들은 정말이지 신중해야 한다. 그게 어디에서 얼마나 반복되고 복제될지 상상하면서, 나쁜 것을 대량 생산하지 않기 위해 힘쓸 의무가 있다. 슬아도 자신이 쓴 모든 글자와 숫자를 더 꼼꼼히 검토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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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잠 출판사를 처음 차릴 때만 해도 슬아는 책 만드는 일이 딱히 두렵지 않았다. 잘 몰랐으니까. 지금의 슬아는 그렇지 않다. 글쓰기와 출판이라는 작업이 갈수록 어렵게 다가온다. 책을 만들어 몇천 부씩 인쇄하는 것이 중대한 결정임을 알게 된 것이다.
이 점에서 할아버지와 슬아의 운명은 궤를 달리한다. 할아버지는 양면테이프를 두려워하는 사장이 아니었다. 이제 슬아는 책이 양면테이프보다 열 배는 두려운 무엇임을 안다. 그 두려움을 알게 된 것에 안도한다. 책을 사랑하는 동시에 두려워하는 자들이 출판사를 운영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일간 이슬아, '가녀장이 말했다.'> 16화 - 책을 사랑하고 두려워하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