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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 little kitty Jun 12. 2022

애매한 사람

어쩌면, stereotype을 벗어난 사람?

 우리 둘째 아이는 '훌륭한 사람' 대신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 하는데, 그럼 엄마는 어떤 사람일까? 혹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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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디서나 애매한 사람이었거든요. 충분히 예술적이지도 않고, 충분히 대중적이지도 않고...,
이미지 출처: https://youtu.be/OxVy7wAK0Jw


애. 매. 하. 다.


싱어게인 1에서 3라운드 <치티치티 뱅뱅>으로 심사위원들을 저격했던 이승윤이 다음 라운드에서 했던 말이다.

저렇게 특이한 사람이 애매하다고? 애매하다는 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건데.....

'나는 경계선에 있다'는 그의 말이 뇌리에 와서 콕 박혔다.나 역시 정체성으로 많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듣게 된 말이라 더 마음에 와닿았다.


애매하다는 것은 특정 집단에, 특정 범주에 속하지 못한다는 뜻인가 보다.

나는 그것을 stereotype이라고 불러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Stereotype

어떤 특정한 대상이나 집단에 대하여 많은 사람이 공통으로 가지는 비교적 고정된 견해와 사고.  

고정관념이라고 번역된다. 대개의 경우 뚜렷한 근거가 없고 감정적인 판단에 의거하고 있다.


인간이 왜 스테레오타입을 고집하느냐 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인간이 스테레오타입에 의존하지 않고는 일상생활의 모든 사물을 새롭게 지각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스테레오타입의 체계가 아이덴티티의 핵심이며 자아방위의 메커니즘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자연스러운 인지반응을 수용하지 않고 거부할 때 반도덕적·반사회적이라는 낙인과 함께 비난과 공격을 받게 된다. 또한 이러한 제재가 정당한 것으로 당연시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스테레오타입에 순종과 동조를 보인다.    


 스테레오타입 [stereotype]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나는 대부분의 의사들이 그렇듯이 매일 같은 시각 출근해서 정해진 공간에서 일한 뒤 퇴근하지는 않지만, 특정 기관에 소속되어 비상근직 근무를 하고 있다. 주부이긴 하지만 늘 이런저런 일을 달고 있어 전업주부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현악기를 취미로 하는데 바이올린도 비올라도 썩 제대로 하지 못한다. 브런치 작가로 글쓰기를 하지만 당장 출간 계획은 없다. (그리고 곧 글쓰기 알람이 울릴 때가 되어 압박감을 받으며 쓴다.) 단기 목표가 없는 여유로운 심리학 공부를 하고 있지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아니며, 상담사 또한 아니다.   


참, 설명하기 구차하다.


이런 나에게 용기를 준 것이 바로 이승윤이다.

애매한 그의 에너지는 생각보다 컸다. '애매하다'는 말의 파장도 컸다.

애매한 자신이 살아남았기에 어리둥절하다고 했고, 그래서 자신의 존재 의의를 구체화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결국 우승을 했다.


그래서 나 역시 존재 의의를 구체화해 보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존재 의의를 구체화할 수 있는 걸까?


 우선, 브런치 프로필 사진에 악기를 들고 있는 내 모습을 올려 보았다. 낯을 가리고 셀카도 싫어하는 내가 굳이 그 사진을 올린 이유는, 나 자신에게 압박감을 주려는 것이다. 저 사진을 볼 때마다 내가 악기를 6개월이나 놓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합주가 가능한 바이올린 학원에 등록을 했다.


5년 뒤, 10년 뒤 나는 어떤 사람일까?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진료실로 돌아가 평범한 의사의 삶을 살 것 같다는 말을 수없이 속으로 되뇌었지만, 이젠 왠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어떤 길을 가든 비전형적인 사람이 되어 살아갈지 모른다.

왜냐하면 우선 내가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고, 둘째 이젠 전형성이 없어도 예전처럼 불안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한 방향을 보며 나아가는 사고방식, 즉 '선형적 사고'에 익숙해져 있다. 시작점을 찍고, 그 점을 기준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직선을 그리며 우리 삶과 커리어의 방향을 잡는다. 이 패턴에서 벗어나면 바로 마음이 불편해지고, 왠지 모르게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 같고, 실패할 것 같은 불안감이 찾아온다. 하지만 꼭 직선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법은 없다. 때론 둥글게, 때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때론 새로운 점을 찍고, 때론 대각선을 그리며 가는 것이 우리의 삶일 텐데 말이다.

이소은,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 중에서


 이루어 놓은 게 없어서, 남들 다 하는 것을 하지 않고 있어서, 특정 집단에 속하지 못해서 불안하거나 마음이 답답한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다.

 꼭 직선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법은 없다고. 때론 둥글게, 때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때론 새로운 점을 찍고 때론 대각선을 그리며 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고.


 직선형 삶, 전형적인 삶, 다수의 삶에 속하지 못한 분들이 느낄,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 소외감, 불안, 자기 연민, 혼자 뒤처진 느낌, 특히 누군가에게 자랑이 되지 못하는 애매한 정체성에 가슴 한편이 타들어 갈 때, 이승윤과 이소은의 말을 떠올리며 용기를 내어 보자. 그 전형성이라는 것도 결국 처음 개척한 누군가에겐 비전형이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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