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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흥미진진한 독자 Jul 19. 2023

자린고비 남편은 진상인가? 환경운동가인가?

어디까지 아껴봤니?


남편의 절약정신은 스크루지영감도 울고 갈 수준이다. 연애할 때는 몰랐다. 그때는 맛집도 잘 가고 선물도 잘 사줬다. 나와 함께 하는 동안은 돈을 아낀다는 낌새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결혼을 하고 함께 살면서 남편의 '씀씀이 철학'에 놀랐다. 아니 경악하는 수준이었다.  인터넷에서 산 물건을 싸게 샀다고 생각 남편에게 이야기했는데  약10여분 뒤, 그 가격보다 50원 더 싼 상품을 찾아 링크를 보내주며 여기서 샀어야 했다며 구박 아닌 구박을 하는 것이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50원 때문에 이렇게 구박을 받아야 하는 것인가?



우리 집에는 구멍 난 옷이 몇 개 있다. 모두 남편의 옷이다. 목이 늘어나거나 뒷목이 해져 구멍 뚫린 옷이 몇 장 있다. 심지어 소매가 너덜너덜 한 옷도 있다. 잠옷으로 입을지언정 절대 버리지 않는다. 겨울에는 외투를 입기 때문에 소매가 너덜너덜한 옷도 입고 외출할 때가 있기도 하다. 솔직히 누가 볼까 무섭다. 만약 결혼 한 것을 안다면 와이프 욕을 할 것 같아 마음이 쓰이기도 했다.



남편이 '이거 나름 메이커 있는 옷인데 백화점 가면 수선해 주지 않을까?'라고 말하는데 이 말이 농담이 아니고 진담일 거라는 생각에 웃지 못했다.



실제로 백화점 가서 리폼받은  옷이 있었다. 남편 나이키 운동복 바지가 있었는데 오래 입은 옷이었다. 그래서 무릎이 해져서 구멍이 났다. 큰 구멍은 아니었지만 어른이 밖에 입고 돌아다니기는 민망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예상을 깨고 잘 입고 돌아다니는 남편!! 멘털이 강한 건지, 패션 테러리스트인지 모르겠다. 청바지도 일부러 찢어 입고 다니는데 이 옷은 자연스럽게 찢어져서 더 멋있다는 논리를 펴는 남편. 창의적인 발상이기는 한데 수용하고 싶지는 않다. 대단한 사람이라 느꼈다.



어느 날 남편이 백화점 쇼핑을 하러 가자고 한다. 웬일이지 싶었는데 나이키 바지를 챙겨 들고 가는 남편!! 정말로 매장에 가서 리폼이 되는지 물어보는데 너무 부끄러워서 매장에 들어가지 않았다. 위풍당당하게 물어보는 남편을 그냥 모르는 사람처럼 쳐다보지도 않았다. 매장 직원도 이런 문의는 처음이라는 표정이 멀리서도 느껴졌다. 어딘가에 전화를 하고 옷을 접수해 주었다.



몇 시간 뒤 전화가 왔고 최대한  나지 않게 자수를 박아줄 주 있다고 한다. 물론 공짜는 아니고 15천 원의 비용은 있다고 했다. 남편은 고민 후 자수를 하겠다고 했고 며칠 뒤 받아온 운동복 바지는 작은 별 모양 여러 개로 예쁘게 무릎에 자가 박힌 북두칠성 옷이 되어 돌아왔다. 남편도 만족하는 듯 잘 입고 다녔다. 멀리서 보면 티가 안 나지만 가이서 보면 뭔가 다른 느낌은 주었다. 기어 다니는 애기들 바지에 무릎보호가 된 옷 디자인은 본 적 있지만 어른 바지 무릎 부분에  조각이 달린 건 아마 대한민국에서 유일할 테다.



어느 날 남편이 이 옷의 단점이 있다고 말했다. 나의 예상으로는 남들의 시선이 아닐까? 입고 다니면 사람들이 쳐다봐서 싫은 걸까? 하고 성급하게 예측했는데, 남편 답변 역시 나의 예상을 빗나갔다. 자수가 무릎 부분에 있다 보니 움직일 때마다 까끌까글한 느낌이 무릎을 통해 전해 온다는 것이다. 정말 속으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15천 원 투자한 옷이기 때문에 몇 번을 더 입고 아주아주 아쉽게 그 옷과 이별했다.



환경보호 입장에서 본다면 남편의 자원 절약 정신은 그 누구보다 선진적?이며 실천적이다. 자연보호에 앞장서고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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